올드바인으로 빚은 와인은 왜 깊은 맛이 날까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최현태 2023. 2. 4. 21:41
수령 오래될수록 뿌리 땅속 깊게 파고들어 여러 지층 다양한 미네랄 움켜줘/열매 적게 달려 응축미 뛰어난 포도 생산/‘호주 맥라렌 베일 와인쇼 여왕’ 떠오르는 와인메이커 엘레나 브룩스 단독 인터뷰
올드바인(Old Vine). 뒤틀리고 휘어지며 자란 모습과 어른 허벅지 두께의 몸통은 한눈에도 오랜 세월을 한자리에서 버틴 올드바인이란 사실을 말해줍니다. 보통 50살을 넘겨야하지만 100년은 돼야 진정한 올드바인 반열에 오릅니다. 신대륙 와인생산지에선 30년도 올드바인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와인샵에서 와인을 고르다 보면 레이블에 ‘Old Vine’으로 표기해 오랜 수령의 포도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와인을 만나게 됩니다. 프랑스 와인은 ‘Vieilles Vignes(비에이 비뉴)’로 표기하는데 역시 올드바인이란 뜻입니다. 올드바인은 일반 수령의 포도나무와 어떤 차이가 날까요.
◆뿌리 깊게 내릴수록 응집력 뛰어난 포도 생산
포도나무는 뿌리가 땅속 깊숙하게 파고들수록 복합미가 뛰어난 포도를 만들어 냅니다. 여러 지층의 마네랄과 다양한 성분을 끌어 올려 포도에 저장하기 때문입니다. 건조하고 영양분이 적은 척박한 땅일수록 포도나무는 수분과 영양분을 찾아 더욱 깊게 뿌리내립니다. 따라서 일부러 포도나무를 빽빽하게 심기도 합니다. 이러면 포도나무들이 생존을 위해 서로 경쟁하면서 뿌리가 땅속 깊숙이 파고들죠. 보통 유럽은 1ha에 5000~1만그루, 신대륙은 100~1500그루를 심습니다.
하지만 ‘과일의 천국’ 미국 캘리포니아의 나파밸리는 빽빽하게 심어도 별로 소용이 없습니다. 워낙 토양이 비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크롭(Crop)’으로 불리는 여러 작물을 포도밭에 함께 심는답니다. 그러면 표면의 영양분을 이런 작물들이 먹어치워 포도나무는 영양분을 찾아 땅속 깊숙하게 뿌리를 내립니다.
포도나무는 사람과 비슷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신진대사가 떨어져 생산량이 줄어듭니다. 올드바인은 절반 또는 3분의 1정도만 포도를 만들어 냅니다. 대신 적은 양의 포도송이에 한그루의 모든 성분이 집중됩니다. 따라서 올드바인으로 만들면 응축미와 복합미가 뛰어난 와인을 얻을 수 있답니다. 응축미가 뛰어난 포도를 생산하기 위해 가지치기로 싹을 잘라 일부러 한그루당 포도 생산량을 줄이기도 합니다. 이를 ‘그린 하베스트(Green Harvest)’라고 합니다. 대표적인 곳이 프랑스 부르고뉴입니다. 부르고뉴는 그랑크뤼, 프리미에 크뤼 등 등급에 따라 생산량이 달라지며 이를 철저하게 지켜야 합니다. 부르고뉴는 굉장히 밀도가 높게 빽빽하게 심어야 하기 때문에 재배방식은 꼬르동(Cordon) 방식보다는 기요(Guyot) 방식을 선호합니다. 기요가 보다 쉽게 생산량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꼬르동은 두꺼운 몸통에 양팔(꼬르동)을 벌린 모양으로 영구적인 꼬르동 위에 길이가 짧은 열매가지인 스퍼(Spur)가 자라고 여기서 2∼3개 싹이 납니다. 반면 기요는 얇은 몸통에 바로 붙은 기다란 줄기 캐인(Cane)에서 8~15개의 싹이 납니다. 따라서 생산량 많다 싶으면 원하는 곳에서 캐인을 적절하게 잘라 한방에 생산량 조절할 수 있습니다. 한그루에서 단 한병의 와인만 만들 정도로 생산량을 통제하는 와이너리도 있습니다. 생산량을 조절하면 당연히 뛰어난 포도를 얻을 수 있지만 가격이 비싸집니다.
◆필록세라를 피한 호주 올드바인
그렇다면 100년이 넘는 올드바인은 어떻게 존재할까요. 바로 포도나무 뿌리를 썩게 만드는 필록세라를 피했기 때문입니다. 1860년대 필록세라가 전 세계를 휩쓸면서 포도밭은 황폐화되는데 이를 피한 곳이 전세계에 몇곳 있습니다. 대표적인 곳인 남호주입니다. 호주 와인 역사는 유럽 이민자들이 정착하면서 만든 가장 큰 도시인 시드니 인근 뉴사우스웨일즈에서 시작됩니다. 이곳은 아열대 기후로 포도 생산에 적합하지 않아 생산자들은 서늘한 기후를 찾아 남쪽인 빅토로아주로 내려갑니다. 하지만 필록세라 피해로 와인 산업이 무너지면서 다시 서쪽인 남호주로 이동해 호주 와인 산업이 꽃을 피웁니다. 덕분에 바로사 밸리(Varosa Valley), 애들레이드 힐(Adelaide Hills), 맥라렌 베일(McLaren Vale), 클리어 밸리(Clare Valley), 에덴 밸리(Eden Valley), 쿠나와라(Coonawarra) 등 호주를 대표하는 와인산지들이 모두 남호주에 몰려 있습니다. 특히 남호주에는 필록세라를 피한 곳이 많아 50년은 물론 100년이 넘은 올드바인드이 즐비합니다.
◆‘맥라렌 베일 여왕’이 빚는 올드바인 와인 단델리온
단델리온 빈야드(Dandelion Vineyards)는 모든 와인을 올드바인만 고집하는 남호주의 대표 와이너리입니다. 한국을 찾은 오너이자 와인메이커 엘레나 브룩스(Elena Brooks)과 함께 심오한 맛을 선사하는 올드바인의 매력을 따라갑니다. 엘레나는 남편 자르 브룩스(Zar Brooks)와 함께 시스터스런 와인 컴퍼니(Sister’s Run Wine Company) 와인도 생산하며 두 와이너리 와인은 비노킴즈에서 수입합니다.
단델리온 파이어호크 팜 맥라렌 베일 쉬라즈(Firehawk Farm McLaren Vale Shiraz)는 애들레이드 인근 맥라렌 베일에서 자라는 100년 수령의 쉬라즈 100% 와인입니다. 검은 자두와, 블랙베리 등 잘 익은 과일향과 육두구, 오렌지 제스트. 화이트 초콜릿이 어우러지고 깊은 흙내음과 모카향이 긴 여운을 남깁니다. 목넘김이 매우 부드러운 실키한 탄닌이 돋보이고 잔을 흔들면 프렌치 오크에서 만들어진 은은하고 우아한 오크향과 스파이시한 향도 피어오릅니다. 파이어 호크 팜은 단델리온을 대표하는 맥라렌 베일의 포도밭으로 이곳에 60에이커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석회암과 아이언스톤 토양으로 이뤄져 포도는 뛰어난 미네랄을 움켜 줍니다. 파이어호크는 이 지역의 토종 맹금류 이름이랍니다. 2022년 2월부터 바이오다이내믹 인증을 받았습니다.
엘레나는 와인을 설명하면서 빨간 망토를 입고 왕관을 쓴 자신의 사진을 한장 내밉니다. 2021년 11월에 열린 ‘맥라렌 베일 와인 쇼(McLaren Vale Wine Show)’에서 ‘맥라렌 베일 와인 퀸’에 해당하는 ‘부싱 모나크(Bushing Monarch)’에 선정됐다고 하네요. 남호주를 대표하는 도시 애들레이드에서 매년 열리는 맥라렌 베일 와인쇼는 1973년부터 시작됐으며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와인을 만든 와인메이커를 부싱 모나크로 선정, 다음해 대회가 열릴 때까지 ‘Bushing King’ 또는 ‘Bushing Queen’로 ‘왕좌’를 유지하게 됩니다. 엘레나의 와인은 심사들이 출품된 400여개의 와인을 블라인드로 테이스팅한 결과 96점을 얻어 1위로 선정됐습니다. Bushing은 1500년대 엘리자베스 시대때 새로운 빈티지 와인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문에 상아색 ‘홀리 부시(Holy Bush)를 내걸던 관습에서 유래됐습니다. 당시 와인 생산자들 새 빈티지 와인을 축하하는 축제를 시작하기 위해 ‘축제의 왕’을 선정했다고 하네요.
엘레나를 여왕에 등극시킨 와인은 라이온스 투스 맥라렌 베일 쉬라즈 리슬링(Lion’s Tooth of McLaren Vale Shiraz Riesling)입니다. 쉬라즈에 리슬링을 소량 섞었는데 아주 독특한 블렌딩이네요. 단델리온은 영어로는 민들레라 뜻이지만 프랑스어로는 ‘사자의 이빨’이란 뜻이어서 이런 와인 이름을 붙였습니다. “쉬라즈와 리슬링은 매우 독특한 블렌딩으로 보이지만 1950년대까지 사용하는 전통적인 호주 와인 스타일이랍니다. 나이 많은 분들에게 왜 두 품종을 섞느냐고 물어보면 당연히 이렇게 섞어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올 정도죠. 프랑스 북부론 꼬뜨로티에서 시라와 비오니에를 섞어 좀더 볼륨감이 두툼하고 우아한 아로마와 과일향이 풍성한 와인을 만드는 것과 비슷해요. 다만 호주 쉬라즈는 이미 볼륨감이 있기에 비오니에를 섞으면 맛과 향이 너무 과도한 와인이 만들어집니다. 이에 비오니에 대신 산도가 좋은 리슬링을 섞어 만듭니다. 리슬링은 한 5∼8% 정도 들어갑니다.”
◆호주 와인 메이커의 신성으로 뜨다
단델리온을 설립하지 20년이 된 엘레나는 이처럼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양조기법으로 호주를 대표하는 와인메이커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특히 포도나무 수령 100년의 올드바인으로 만들어 ‘오래된 포도밭과 젊은 와인메이커의 조합’으로 각광받으면서 2014년 제임스 할리데이 호주와인 컴피티션에서 최고등급인 별 5개를 받았습니다. 또 2007년부터 영국에서 시작된 가장 중요한 온트레이드 와인 컴피티션 ‘소믈리에 와인 어워즈’에서 ‘2020년 올해의 뉴월드 와인 프로듀서’로 선정됐는데 이는 호주 와인 생산자중에서는 처음입니다. 또 남반구와 북반구는 수확 시기가 정반대라 스페인과 이탈리아를 오가며 ‘플라잉 와인메이커’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우아하면서도 모던한 스타일을 추구합니다. “단델리온은 모던하면서도 우아하게 만들어요. 과일향이 풍부해 음식과 함께하기 가장 좋은 스타일로 만들죠. 시스터스런은 가성비 좋은 밸류 와인이에요. 트렌드에 맞아 사람들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와인입니다. 또 항상 음식과 함께할 때 가장 잘 어울리는 와인을 만듭답니다.” 포도나무가 100년이 넘기에 양조때 최소한의 터치만 한다는 군요. “포도나무를 최대한 존중해 그대로 표현하려고 해요. 뭔가 인위적인 것을 하지 않죠. 프렌치 오크를 많이 쓰고 세이보리한 과일향을 잘 내기 위해 송이째 압착하는 홀번지 양조기법을 사용합니다. 호주 과일들은 영할 때 과일향과 풍미가 좋고 여름동안에 과숙해버리기 때문에 여름전에 빨리 병입합니다.”
◆단일지역 포도로 떼루아를 담다
호주에선 민들레를 “후∼”하고 불며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풍습이 있습니다. 와이너리 이름을 단델리온으로 지은 것은 이 때문입니다. 이름 덕분인지 엘레나의 포도밭은 민들레 씨앗처럼 남호주 전역에 퍼져 맥라렌 베일, 애들레이드 힐스, 바로사 밸리, 이든밸리, 쿠나와라 등 주요 생산지로 퍼졌습니다. 호주 와인은 대부분 여러 지역의 포도를 섞는 ‘멀티 리즌’ 블렌딩으로 많이 만드는데 단델리온 와인은 모두 단일 지역 와인만 고집합니다. 그 지역 떼루아 고유의 캐릭터를 와인에 담아내기 위해서죠.
애들레이드 힐스에선 트와일라잇 아들레이드 힐즈 샤도네이(Twilight of the Adelaide Hills Chardonnay)를 선보입니다. 복숭아, 배, 패션프루트 등 신선한 과일 풍미가 비강과 입안을 가득 채우며 신선하고 부드러운 산미가 하루의 피로를 싹 가시게 만드는 매력을 지녔습니다. 잔을 흔들면 부르고뉴 마을단위 샤르도네에서 느낄 수 있는 우아한 오크향이 피어 오르며 긴 여운을 남깁니다. 애들레이드 힐즈는 이름처럼 고도가 높아 서늘한 기후를 띠고 일조량이 뛰어나면서 일교차가 커 당도와 산도 밸런스가 아주 좋은 샤르도네가 재배됩니다.
바로사 밸리 바로 북쪽의 클래어 밸리(Clare Valley)와 바로사 밸리 동쪽에 딱 붙어있는 이든 밸리(Eden Valley)는 해발고도 500m의 쿨클라이밋 지역으로 샤르도네 함께 미네랄이 뛰어난 리슬링으로 아주 유명합니다. 특히 평범한 돌맛이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미네랄이 돋보여 와인 전문가들의 극찬이 쏟아집니다.
단델리온는 독특하게 이곳에서 쉬라즈를 선보이고 있는데 레드 퀸 이든밸리 쉬라즈(Red Queen of the Eden Valley Shiraz)입니다. 토양은 석회암인데 특히 붉은 석영이 많아 레드 퀸이란 이름을 얻었습니다. 검고 붉은 자두, 블랙베리, 블랙체리 등 과일향과 월계수잎, 백리향, 세이지 등의 허브향이 어우러지고 잔을 흔들면 버섯, 다크초콜릿도 피어납니다.
단델리온 프라이드 플레우리우 카베르네 소비뇽은(Pride of the Fleurieu Cabernet Sauvignon)은 애들레이드 힐 남쪽 산지 플레우리우 반도(Fleurieu Peninsular)에서 생산된 카베르네 소비뇽 100% 와인입니다. 바다와 가까운 산지라 독특하고 솔티한 미네랄을 가득 담고 있습니다. 블랙커런드, 박하, 바이올렛 등 허브의 아로마가 넘쳐나고 매끄러운 탄닌이 돋보입니다.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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