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사기꾼의 화법’ 조심하라, 잠 못드는 밤 피하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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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으로 괴로워하는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은 타인을 신뢰하는 편인가, 아닌가. 나는 나 자신이 어떤지 모르겠다. 정초부터 왜 잠꼬대 같은 소릴 하느냐. 여느 때처럼 잠 못 드는 밤이었다. 유튜브로 보게 된 <찐경규: ‘불면증’ 편>에서 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그랬다. 불면에 취약한 성격 유형이 있다고. 세상을 믿지 못하는 성향이 그중 하나라고.
동창 한 명이 구속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대기업 증권사를 퇴사하고 파생상품거래를 해왔다. 지금은 50억원대 폰지 사기(다단계 금융 사기)를 벌인 혐의를 받는다. 1년 전쯤이었나. 나도 그 애 전화를 받았다. 옵션매매를 하는데 매매 특성상 손해라는 건 있을 수 없고, 3배는 불려줄 테니 내 돈은 물론 지인들 돈까지 은행에 썩히지 말고 투자하라더라. 그래 그래, 난 여윳돈 없으니 주변에 물어볼게, 하고 듣는 시늉만 했다.
돈 벌게 해준다는 타인을 믿지 않는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그렇다. 누구든 그런 말을 꺼내면 사람 됨됨이까지 의심하게 된다. 투자법 자체는 타인에게 배울 수 있어도, 투자를 일임하라거나 알짜배기 정보를 준다는 부류는 ‘믿거’(믿고 거른다) 한다. 그렇게 쉽게 벌 돈이면 본인이나 실컷 벌라지, 같은 생각이 있다.
매수와 매도 타이밍이 기똥차게 들어맞는 주식 정보? 개발 호재가 낀 국가기밀급 부동산 정보? 그런 건 없다. 100% 확실한 정보를 왜 밖으로 흘리나. 성인군자도 아닌데. 성인군자는 인류의 1% 미만일뿐더러 참선하고 도 닦기 바빠 돈에는 관심 없다. 그 투자처가 진짜 노다지면 신용대출이든 사채든 죄다 끌어다 넣는 게 보통의 인간이다. 본인 명의로 올인한다는 뜻이다.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가 닥쳐오자, 몇조 원에 육박하는 전 재산을 몽땅 달러로 바꾼 ‘확신의 송중기’처럼 말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내가 불면인답게(?) 불신의 아이콘 같겠지만, 나라고 원래 이랬으랴. 서로 다 아는 해안가 소도시에서 자라서일까. 나는 오히려 경계심이 없는 편이었다. 좋게 말하면 오픈 마인드였달까. 오랜 세월 내 삶은 깍쟁이라든지 약아빠졌다는 소릴 듣는 것과는 정반대 지점에 있었다. 오죽하면 동창 사기 사건이 불거졌을 때도 한 친구가 제일 먼저 찾은 게 나였다. “야, 너 ○○○한테 당한 거 아니지?”
계기가 있었다. 금전 때문에 신뢰 관계가 박살 난 일들이었다. 오래전 다른 동창이자 선배한테 투자 사기를 당한 일. 어릴 적부터 절친했던 친구한테 빌려준 돈을 떼인 일. 그들은 준다, 준다, 하더니 주긴 개뿔. 연락만 끊었다. 인연이 이렇게 산산조각이 나다니. 고통스러웠다. 단순히 돈을 잃어서라기보다는 내가 진심으로 아낀 이들이 나를 배신했다는 사실에 실망과 슬픔, 분노가 들끓었다. 당연히 잠도 못 잤다. 세상에는 선의를 악의로 되돌려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의 성실함이나 측은지심을 악용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찐경규: ‘불면증’ 편>에 나온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말했다. 배신이나 트라우마로 생긴 불신도 불면을 유발하는 한 요인이라고. 불면의 밤을 피하고 싶다면 사기꾼들이 쓰는 화법을 주의해야 한다. ‘너니까 알려주는 거야.’ ‘네가 잘 됐으면 해서 이러는 거야.’ 여기에 확신범 멘트가 더해진다. ‘좀만 더 기다려줘.’ ‘XX배 수익은 확실해!’ 그들은 남에게 피해를 줘도 자책하지 않는다. 당신을 정서적으로 학대하는 반사회적 성격장애 소유자일 수 있으니 거리를 두시라.
이미 사달이 났다면 어째야 하는가. 처음엔 원망뿐이겠지만, 그래 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남 탓은 쉽고 편한 방법이지만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다. 타인이 변하지 않으니 내가 변해야 한다. 잘못된 과거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내 탓을 해야 한다. 그때 내게도 문제가 있었다. 투자 건에서는 욕심을 부리면서도 일일이 공부하기 귀찮은 마음에 타인에게 의존하려 들었다. 차용 건에서는 남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받음으로써 내 자아상을 높이려는 허영을 버리지 못했다. 내 삶의 중심을 내 안에 두지 않은 것. 재화건 나 자신이건 간에 가치평가 주체를 타인에게 의탁하려 든 것. 그것이 불운의 시작이었다.
판단할 권한을 외부에 양도하지 않으려면 머리와 마음 근육을 더 키우는 수밖에. 그때 나는 투자법을 독학하면서 데일리 트레이딩을 했고, 차트 매매와 기업 및 수급 분석은 웬만큼 하게 되었다. 돈을 빌려줄 때도 빌려준 돈은 내 돈이 아니라고 여겼다. 못 받는 걸 디폴트로 치니 분수껏 도울 수 있었고, 마음도 편했다. 이윽고 인도인들의 해괴한 도덕관도 납득하게 되었다. 인도여행하면서 그걸 접한 게 10여 년 전이었다. 인도에는 ‘도덕’이라는 과목이 없었다. 인도인들은 사기 친 친구끼리도 우정을 유지했다. 사기는 친 사람이 아니라 당한 사람이 잘못이라는 인식. 사기당한 사람을 우둔하게 보는 문화. 과거의 나야말로 그걸 궤변으로 여겼다.
공교롭게도 <찐경규: ‘불면증’ 편>에 나온 불면증 동지들, 이경규, 가수 타블로, 배우 류승수도 모두 사기당한 경험이 있었다. 불신은 배신의 경험이 축적된 결과일까, 아니면 아무리 경계해도 배신은 불가피한 인간사일 뿐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불신은 세상에 적응하는 가장 쉬운 방법일지 모른다. 실망으로 인한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되니까. 나는 여전히 사람들을 믿고 싶다.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느끼는 다정함과 친밀함을 누리고 싶다. 와중에 방송에서 의사가 한 도발적 선언은 흥미롭다. “불면증 환자들은 번지점프 못 할 거예요.” 나를 내려놔야 하는데, 불면인들은 그게 안 될 거란다. 아니나 다를까, 불면증 동지들은 번지점프 줄을 못 믿겠다느니, 업체를 못 믿겠다느니, 직원들 안전교육이 우려된다느니, 줄줄이 의심을 쏟아냈다.
거참, 신통방통하네. 나도 번지점프 안 해봤는데. 이참에 한 번 도전해봐?
△이주의 ‘불면 극복’ 솔루션 ★★★★★
강촌이나 임진강에서 번지점프를 해보자. 불면증 환자들은 번지점프를 못 한다니 거꾸로 해버리고 나면 더는 불면증 환자가 아니지 않겠나. 도저히 못 하겠다면? 될 때까지 해보자. 모든 불신을 벗어던지고 번지점프대에서 뛰어내리는 날이 바로 당신이 불면증을 극복하는 날이 될 것이다.
강나연 <허프포스트코리아>·<씨네플레이> 편집장
방송기자를 거쳐 디지털 뉴스매체, 디지털 영화매체를 맡고 있다. 엠비티아이(MBTI) 중 파워 제이(J) 성향이지만, 10년 이상 장기계획은 세우지 않는다. 책, 영화, 명상이 에너지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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