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죽었는데 영혼이 느껴져…“내가 영매인 걸까요?” [씨네프레소]

박창영 기자(hanyeahwest@mk.co.kr) 2023. 2. 4.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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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프레소-66] 영화 ‘퍼스널 쇼퍼’

※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 ‘퍼스널 쇼퍼’(2016)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죽음으로 떠나보낸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이 많이 하는 착각이 있다. 아직 그와 같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병약한 어머니가 집에서 자신을 기다릴 것이 걱정돼 모임에서 일찍 일어나던 도중 그녀의 죽음이 떠오르는 것이다.

또는 자녀를 잃고 난 뒤 애가 배고플까봐 허둥지둥 깨고 나서야 그가 더 이상 곁에 없음을 알게 될 수도 있다. 그들은 이제 엄마와 아이를 위해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적잖이 씁쓸한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주인공 모린은 쌍둥이 형제의 영혼이 자기 곁에 있다고 느낀다. /사진 제공=찬란
사별한 이들은 한편으로 이와 아주 상반된 경험을 하기도 한다. 그토록 소중했던 사람이 자신의 인생에 한때 존재했단 것이 과연 실제 사건이었는지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그들과 함께 했단 경험은 다 내가 만들어낸 기억이 아닐까. 그들은 죽음으로 내 곁을 떠났 게 아니라 처음부터 없었던 게 아닐까.

그토록 사랑했던 부모, 자녀, 배우자, 친구였는데도 그 존재가 남긴 감각이 빠르게 상실되는 경험에 인간은 당혹감을 느낀다.

모린은 루이스의 영혼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그게 다 자신이 만들어낸 허상은 아닐지 의심한다. /사진 제공=찬란
죽음으로 가까운 이를 떠나보낸 사람들은 이처럼 모순된 경험을 오가며 사별 이후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어떤 날엔 그 사람과 같이 살았단 사실을 전생처럼 희미하게 느끼다가도 어떤 날엔 여전히 함께 있는 것처럼 감각하는 것이다.

‘퍼스널 쇼퍼’(2017) 주인공도 그런 사람이다. 영매(靈媒)인 그녀는 오빠와 사별한 뒤에도 그의 존재를 깊이 느낀다. 한편으론 그 모든 게 다 자신이 만들어낸 환영이 아닌지 의심하면서 말이다.

퍼스널 쇼퍼 그녀, 형제의 영혼과 소통하다
영화는 퍼스널 쇼퍼(personal shopper)인 모린(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이야기다. 유명인사인 키라를 대신해서 명품 쇼핑을 해주는 그녀에겐 큰 고민이 있다. 심장마비로 죽은 남자 쌍둥이 형제 루이스와 영적으로 대화하는 일이다.

남녀 쌍둥이인 두 사람은 모두 영혼과 소통할 수 있는 영매인데, 한쪽이 먼저 죽으면 사후세계가 있는지 신호를 주기로 약속했다. 루이스가 사망했으니 모린은 그에게서 사인이 올 것을 기다린다.

키라가 모린을 퍼스널 쇼퍼로 고용한 것은 그녀 안목을 인정해서다. 모린은 자기 취향으로 남의 옷을 골라주는 삶에 서서히 지쳐간다. /사진 제공=찬란
루이스가 살던 집에서 모린은 실제로 영적 체험을 한다. 아무도 없는데 갑자기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온다든지, 벽에 십자 무늬가 새겨진다든지 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사인만으론 루이스가 사후세계로 넘어갔다고 확신하기엔 부족하다고 느낀다. 우연이거나 다른 영혼의 소행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루이스에게 보다 확실한 사인을 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한다.
‘트와일라잇’(사진)으로 유명한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이 작품을 비롯해 다수 아트하우스 영화에 출연하며 다채로운 필모그래피를 만들어냈다. /사진 제공=판씨네마
그녀가 강력한 신호로 해석할 만한 사건이 하나 발생한다. 자신이 살해당할 위기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살인범이 그녀를 협박하며 자기 동선으로 유인했으나 영적인 존재가 개입하며 둘의 만남이 어긋난다. 하지만 그때 역시 루이스의 음성을 명확히 들은 것은 아니다. 그녀가 영적으로 보다 집중할 수 있는 공간으로 들어가 루이스와의 소통을 시도하는 이유다.

영혼이 ‘쿵’ 소리를 한 번 내면 ‘응’이라고, 두 번 내면 ‘아니’라고 대답한 것으로 해석하기로 규칙을 정해놓고 모린은 그곳에서 자신을 기다리던 영혼과 대화한다. ‘안식을 찾았느냐’ ‘루이스가 맞느냐’ ‘장난 치는 거냐’는 질문에 모두 모호한 대답을 주던 영혼은 ‘아니면 그냥 나인가?’라는 질문에 긍정의 시그널을 보낸다.

우리는 사랑하는 이의 ‘이른 죽음’을 슬퍼한다
영적 체험을 하는 듯한 이 작품은 모호하다. 영화가 끝난 뒤 안개 속을 헤맨 것 같은 기분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이 영화에 대해선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건지 모르겠다는 혹평이 나오기도 한다. 아마 주인공인 모린조차 자신이 무엇을 봤는지 정확히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엔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는 명확한 스토리가 존재한다. 한 여성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슬퍼한다는 것이다. 모린의 형제는 심장에 특수한 기형을 갖고 짧은 삶을 마감했지만 그녀의 애도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 우주적 관점에서 봤을 때 어차피 인생이란 20년을 살든 100년을 살다 가든 전부 짧은 것이기 때문이다. 어제까지 같이 웃던 사람과 오늘부터 만날 수 없단 점에서는 모든 죽음이 같다. 모린이나 관객이나 사랑하는 사람의 인생이 이토록 일찍 끝난다는 것에 슬픔을 느낀다.

그녀는 쌍둥이 형제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루이스에 의해 사후세계가 증명된다면 그녀는 죄의식을 조금 덜어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듯하다. /사진 제공=찬란
모린은 심장마비로 허무하게 죽어버린 쌍둥이 형제의 삶이 거기서 끝이 아니길 바란다. 그렇기에 그녀는 ‘사후세계가 존재하는가’란 질문에 객관적인 대답을 내려줄 수 있는 탐구자로선 실격인지 모른다. 그녀는 사후세계가 존재하길 누구보다도 강력하게 바라기 때문이다. “루이스의 영혼에게 자신이 옳았다는 걸 증명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하는 그녀는 누구보다도 그 증명이 성공하길 갈망하고 있다.
‘다른 삶’을 살고 싶은 욕망, ‘다음 삶’에 대한 소망
사후세계를 보고자 하는 그녀의 열망을 지탱하는 한 축이 고인에 대한 사랑이라면 또 다른 축은 자신의 죽음에 대한 염려다. 쌍둥이인 두 사람은 심장에 같은 기형을 갖고 태어났다. 그렇기에 그녀 삶도 아마 짧게 끝날 가능성이 다분하다. 루이스 영혼이 안식을 찾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그녀 마음엔 자신의 죽음 이후를 그려보고 싶은 욕망이 존재할 수 있다.

어쩌면 현생에 대한 불만족이 그녀로 하여금 사후세계를 갈망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녀는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모린은 자신의 고객이 산 고가의 옷을 몰래 입어보며 다른 인생을 상상해본다. 그러나 남의 의상을 몰래 입거나 스토커와 은밀한 대화를 이어가는 것만으로는 다른 삶을 살 수 없다는 걸 곧 깨닫는다. ‘다음 생’의 존재만큼 ‘다른 생’에 대한 확실한 보장은 없는 것이다.

때때로 모린은 의상의 주인인 키라보다 옷과 더 잘 어울린다. 그렇다고 그게 자기 옷이 되는 건 아니다. 모린은 그녀 옷을 몰래 입어보고 싶다는 욕망을 품게 된다. /사진 제공=찬란
모린이 쌍둥이인 루이스의 죽음을 통해 자기 죽음을 상상한 건 그와 같은 심장 질환을 공유했던 특수한 상황 때문이지만, 주변 사람 죽음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그려보는 건 인간의 보편적 경험이다. 우리가 주변 사람과 확실히 공유하는 한 가지 운명은 바로 죽음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인간은 왜 사후세계를 믿는가’란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봤을 때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삶이 여전히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내 인생도 이번이 끝이 아니길 기대하는 소망이다.
인간은 타인의 추억 속에서 영생한다
이렇게 보면 주인공 모린이 자꾸 영적 체험을 하는 이유는 확실하다. 루이스와의 소통을 통해 사후 세계를 확인하길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영혼은 그리움이 만들어낸 환영에 불과하다’는 냉소를 담는 건 아니다. 외려 사후세계에 대한 따뜻한 긍정이 읽힌다.

그것은 ‘인간은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서 영생한다’는 것이다. 모린이 살인범에게서 벗어나는 장면은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이자 가장 모호하게 표현된 부분이다. 마치 모린이 영혼의 개입을 통해 살인범과의 대면을 피한 것처럼 그려졌지만 모린이 실제로 목격한 것이 무엇인지, 그 영혼은 루이스였는지 분명히 나타나지 않는다.

아마 모린이 기묘한 엇갈림으로 살해 위기에서 벗어난 뒤 그 모든 게 루이스의 도움 덕분이라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우리가 위험을 피한 뒤 ‘할머니가 도와주셨나 보다’라며 죽은 자를 떠올리듯 말이다. 실제 우리를 사랑했던 그 사람들이 여전히 우리 삶에 개입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면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우리를 안전하게 지켰으리라 믿는 것이다.

모린은 정체불명의 사람과 텍스트 메시지로 소통을 이어간다. 스토커로 여겨 신고하는 게 일반적 반응이겠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신원이 불분명한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루이스와의 소통을 상상했는지도 모른다. /사진 제공=찬란
모린은 루이스가 어디 있는지 헤매고 다녔지만 사실 루이스는 줄곧 모린 곁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녀 머릿속에 말이다. ‘루이스였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상상하며 루이스의 생각을 자기 삶에 접목할 때 루이스는 그녀 삶의 일부로 계속 살아나간다. 그렇기에 루이스의 영혼과 소통을 시도하다가 모린이 던지는 질문, ‘이건 루이스인가. 그냥 나일 뿐인가’에 대한 답변은 둘 다 ‘그렇다’가 된다. 루이스는 살아 있을 때 함께했던 추억으로 형제에게 계속 온기를 주며 그녀의 일부분으로 영생하는 것이다.

‘퍼스널 쇼퍼’는 사랑하는 이와 사별했거나 사별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위로를 담고 있다. 다시 말해 모든 관객을 위한 위로다. 사별만큼 모든 이의 인생에서 확실하게 일어날 사건은 없기 때문이다. 그가 먼저 떠나든지 당신이 먼저 떠나든지 마냥 슬퍼만 할 일은 아니라고 영화는 다독인다. 당신은 그의 추억 속에서, 그는 당신의 추억 속에서 계속해서 살아나갈 것이다.

‘퍼스널 쇼퍼’ 포스터. /사진 제공=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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