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죽었는데 영혼이 느껴져…“내가 영매인 걸까요?” [씨네프레소]
[씨네프레소-66] 영화 ‘퍼스널 쇼퍼’
사랑하는 이를 죽음으로 떠나보낸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이 많이 하는 착각이 있다. 아직 그와 같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병약한 어머니가 집에서 자신을 기다릴 것이 걱정돼 모임에서 일찍 일어나던 도중 그녀의 죽음이 떠오르는 것이다.
또는 자녀를 잃고 난 뒤 애가 배고플까봐 허둥지둥 깨고 나서야 그가 더 이상 곁에 없음을 알게 될 수도 있다. 그들은 이제 엄마와 아이를 위해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적잖이 씁쓸한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토록 사랑했던 부모, 자녀, 배우자, 친구였는데도 그 존재가 남긴 감각이 빠르게 상실되는 경험에 인간은 당혹감을 느낀다.
‘퍼스널 쇼퍼’(2017) 주인공도 그런 사람이다. 영매(靈媒)인 그녀는 오빠와 사별한 뒤에도 그의 존재를 깊이 느낀다. 한편으론 그 모든 게 다 자신이 만들어낸 환영이 아닌지 의심하면서 말이다.
남녀 쌍둥이인 두 사람은 모두 영혼과 소통할 수 있는 영매인데, 한쪽이 먼저 죽으면 사후세계가 있는지 신호를 주기로 약속했다. 루이스가 사망했으니 모린은 그에게서 사인이 올 것을 기다린다.
영혼이 ‘쿵’ 소리를 한 번 내면 ‘응’이라고, 두 번 내면 ‘아니’라고 대답한 것으로 해석하기로 규칙을 정해놓고 모린은 그곳에서 자신을 기다리던 영혼과 대화한다. ‘안식을 찾았느냐’ ‘루이스가 맞느냐’ ‘장난 치는 거냐’는 질문에 모두 모호한 대답을 주던 영혼은 ‘아니면 그냥 나인가?’라는 질문에 긍정의 시그널을 보낸다.
그렇지만 이 영화엔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는 명확한 스토리가 존재한다. 한 여성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슬퍼한다는 것이다. 모린의 형제는 심장에 특수한 기형을 갖고 짧은 삶을 마감했지만 그녀의 애도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 우주적 관점에서 봤을 때 어차피 인생이란 20년을 살든 100년을 살다 가든 전부 짧은 것이기 때문이다. 어제까지 같이 웃던 사람과 오늘부터 만날 수 없단 점에서는 모든 죽음이 같다. 모린이나 관객이나 사랑하는 사람의 인생이 이토록 일찍 끝난다는 것에 슬픔을 느낀다.
어쩌면 현생에 대한 불만족이 그녀로 하여금 사후세계를 갈망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녀는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모린은 자신의 고객이 산 고가의 옷을 몰래 입어보며 다른 인생을 상상해본다. 그러나 남의 의상을 몰래 입거나 스토커와 은밀한 대화를 이어가는 것만으로는 다른 삶을 살 수 없다는 걸 곧 깨닫는다. ‘다음 생’의 존재만큼 ‘다른 생’에 대한 확실한 보장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은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서 영생한다’는 것이다. 모린이 살인범에게서 벗어나는 장면은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이자 가장 모호하게 표현된 부분이다. 마치 모린이 영혼의 개입을 통해 살인범과의 대면을 피한 것처럼 그려졌지만 모린이 실제로 목격한 것이 무엇인지, 그 영혼은 루이스였는지 분명히 나타나지 않는다.
아마 모린이 기묘한 엇갈림으로 살해 위기에서 벗어난 뒤 그 모든 게 루이스의 도움 덕분이라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우리가 위험을 피한 뒤 ‘할머니가 도와주셨나 보다’라며 죽은 자를 떠올리듯 말이다. 실제 우리를 사랑했던 그 사람들이 여전히 우리 삶에 개입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면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우리를 안전하게 지켰으리라 믿는 것이다.
‘퍼스널 쇼퍼’는 사랑하는 이와 사별했거나 사별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위로를 담고 있다. 다시 말해 모든 관객을 위한 위로다. 사별만큼 모든 이의 인생에서 확실하게 일어날 사건은 없기 때문이다. 그가 먼저 떠나든지 당신이 먼저 떠나든지 마냥 슬퍼만 할 일은 아니라고 영화는 다독인다. 당신은 그의 추억 속에서, 그는 당신의 추억 속에서 계속해서 살아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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