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명에 대한 1000개의 궁금증이 발목을 붙잡습니다"

2023. 2. 4.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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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 발언] 이태원 참사 추모대회서 유가족들 "이상민 장관 물러나야"

[이대희 기자(eday@pressian.com)]
하루 뒤면 10.29 이태원 참사 발생 100일인 4일 오후, 서울광장에 참사 희생자의 유가족들이 직접 설치한 합동분향소가 마련됐다. 이를 기념해 열린 '이태원 참사 100일 시민추모대회'에서 유가족들이 다시금 마이크를 잡고 목소리를 높였다.

100일간 이어진 정부의 침묵과 모르쇠로 일관하는 고위 관직자들의 태도로 인해 유가족은 그 시간 투사로 변했다. 극단적인 정치 놀음에 취해 애를 끊는 유가족의 고통을 조롱하며 고인들을 모욕하는 이들의 인간 이하 태도도 유가족의 심장을 단단히 벼려 왔다.

이날 추모대회에서 유가족들의 발언을 요약 정리했다.

이종철 유가족협의회 대표

작년 10월 29일 이태원에 정부는 없었다. 100일이 가까운 지금까지 유가족에게도 정부는 없다. 왜 저희를 이다지도 외면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그래서 저희는 저희 목소리를 더 가까이 알려드리기 위해 광화문 시청광장 앞으로 나오기로 결심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공식 사과를 요구한다. 이상민 장관 파면을 요구한다. 국정조사에서 밝혀지지 않은 많은 사실이 있기에 저희는 독립된 진상조사기구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한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희가 반정부 단체입니까. 윤석열 대통령은 왜 저희를 외면하시나. 오늘 시청광장에 모이신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우리 아이들, 지한이를 비롯한 159명 아이들이 왜 저 영정속에 있어야 됩니까. 우리 이태원참사 유가족이 왜 여기에 와 있어야 됩니까. 저희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보통가정이다. 그런데 왜 저희를 여기까지 불러냅니까.

국민 여러분, 저희들이 궁금한 것이 많다. 왜 우리 아이들이 못 돌아왔는지, 112 신고가 11번이나 있었는데 정부는, 경찰은 무엇을 했는지 궁금하다. 참사 당일 윤석열 대통령은 보고를 받기나 한 겁니까. 이태원에 오셔서 어떻게 '뇌진탕'이란 말을 하시나(참사 다음날인 지난해 10월 30일 윤 대통령은 참사 현장을 찾아 "여기서 그렇게 많이 죽었단 말이야?" "압사? 뇌진탕 이런 게 있었겠지"라고 발언해 물의를 빚은 한편, 제대로 보고를 받지 못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낳았다.). 대통령실 관계자 여러분 윤석열 대통령 귀와 눈을 막지 마시라. 참모들이 똑바로 해야 나라가 잘 돌아간다. 이건 나라가 아닙니다. 어떻게 한 나라 대통령이 159명이나 죽었는데 어떻게 죽었는지 모르냐.

저희는 시청광장에서 앞으로 외로운 싸움을 시작하려 한다. 저희를 지켜달라. 저희의 눈과 귀가 되어달라. 저희의 입이 되어 전국민에게 비참한 사실을 똑바로 알려달라. 저희 유가족은 국민 여러분을 믿고 여기 시청광장에서 정부가, 윤석열 대통령이 저희 목소리를 들어주실 때까지 끝까지 투쟁을 할 것이다. 저희의 앞길은 험난할 것이다. 국민께서 저희 투쟁에 함께 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이종철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가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100일 추모대회 성사를 위한 호소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와 유가족들은 이태원 참사 발생 100일째가 되는 4일 광화문광장에서 추모대회를 열고자 했으나 서울시가 사용신청을 반려했다며 이를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159번째 희생자 이재현 군 어머니 송혜진

저희 아이는 열여섯살 고1 남학생이다. 여느 부모와 마찬가지로 저 역시 지금껏 아이를 키워오면서 크고 작은 병치레나 사고를 겪으며 지냈다. 10월 29일 밤 11시가 훌쩍 넘어 재현이에게 전화가 왔다. "나 너무 아파.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었어. 친구들이 보이지 않아." 하며 울먹였다. 그날 재현이의 소중한 두 친구는 허망하게 하늘로 갔다.

그날 이후 재현이는 예전과 다른 아이가 되어버렸다. 확연히 줄어들어버린 말수에 "잠들기가 어렵다"며 한번도 안 먹어본 수면제를 달라고 했다. 하루는 울먹이며 제게 말했다. "친구들이 너무 보고 싶어. 내 속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나만 살아남은 게 너무 미안해. 달리는 차에 뛰어들든 어떻게든 죽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하는 내가 너무 싫어." 이 잠깐의 대화가 10.29 이후 43일간 재현이가 제게 생각을 전한 유일한 말이었다.

참사 이후 재현이 앞에는 그 깊이도 높이도 가늠할 수 없는 벽이 놓였다. 제가 아무리 벽 너머 재현이를 향해 외쳐도 재현이의 눈은 어딘지 모를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그리고 재현이는 제게 사랑한단 말을 남기고 먼 길을 떠났다.

10월 29일 이후 재현이는 세상에 홀로 내던져져 있었다. 엄마아빠한테 자기가 겪는 고통을 넘겨주기 미안해서 혼자 안간힘을 쓰며 살아보려 하였다. 하지만 세상은 열여섯 어린 재현이 고통을 방치했고 무관심했다. 재현아, 지금 엄마 옆엔 엄마같이 소중한 아이를 갑자기 잃어버린 유가족들이 엄마손 잡아주고 계셔. 여기 엄마들은 서로의 존재만으로 서로에게 위로가 되기도 해. 재현아 내새끼 사랑한다. 시민 여러분 너무 감사합니다.

일본인 메이 씨와 태국인 나티샤 씨의 친구

두 친구를 알고 지낸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우리 인생에서 메이와 티샤는 매일 기억될거야. 너희의 얼굴, 미소, 웃음소리를 우리가 기억하고 있고 우리를 불러주는 너희 목소리도 아직 생생하게 들려. 하지만 우리가 지켜주지 못해 정말 미안해. 이런 결말이 없었으면 했지만, 비극적인 결말이 우리를 찾아왔어. 그때 너희 곁에서 손이라도 잡아줬어야 했는데 너무 후회가 돼.

서로 더 말할 기억이 있었으면, 함께 시간을 더 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요즘 받아들이기 어려운 건 삶이 계속된다는 거야. 그래서 너희에게 편지를 쓰고 생활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도 우리는 너희를 기억한다는 걸 전해주고 싶었어. 우리는 너희를 잃고싶지 않아. 너희와 한순간이라도 같은 길을 걸어서 영광이었어. 평생 우리의 마음 속에 너희는 자리할 거야. 사람들이 참사를 잊을지라도 우리 여기 있는 모두와 수많은 사람들이 너희를 절대 잊지 않을 거야. 너희들은 우리 모두에게 소중하고 마음 속에 같이 살아갔으면 좋겠어.

삶이 계속된다면 우리는 너희가 어디에 있든 행복하기를, 생전 인생에서 사랑받고 행복했던 것처럼 내일도 항상 행복했으면 좋겠어. 여기서 우리는 너희를 잊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조금 더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보려 해. 아프고 상처가 많이 나는 이 삶을 즐겁게 살아보려 해. 메이, 티샤 너무 보고 싶고 그립다. 그리고 사랑한다. 좋은 곳에서 쉬길 바라. 너희들의 친구

희생자 유연주 씨 언니

흐르는 시간을 붙잡지도 못한채 어느덧 참사 발생 100일을 하루 앞뒀다. 저희 시간은 10월 29일에 머물렀는데 월드컵, 성탄절, 설 등 수많은 날이 저희를 지나쳤다. 이쯤되니 누군가는 저희에게 그만하라고 한다. 잊고 살아라, 마음에 묻어두라고 한다. 저희도 떠난 가족이 더 힘들지 않도록 마음편히 놓아주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길 원한다.

하지만 아직 밝혀지지 않은 159명에 대한 1000개의 궁금증이 저희 발목을 붙잡는다. 왜 그때에는 매년 실시하던 다중인파운집 관리 대신 경찰이 마약수사에 초점을 뒀는지, 왜 처절하게 외치는 부모님을 막고 주민센터에 가서 실종신고부터하라며 희생자와 부모를 분리했는지, 압사 신고전화에 왜 출동하지 않았는지, 병원에 수송된 희생자 옷은 왜 벗겼는지, 대통령은 왜 유가족과 만남을 피하는지, 왜 아직도 저희에게 유가족 명단을 공유하지 않는지. 지금 이 시간에도 저희의 수많은 질문이 대답없는 메아리로 남았다.

용산구청장은 비상대책회의를 열지도 않고 열었다는 허위보도자료를 냈고, 이에 대해 실무진 실수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얼마전 서부지검에 제출된 공소장에는 본인이 직접 이 보도자료를 확인하고 카톡으로 배포를 지시한 사실이 드러났다.

행안부 장관은 국정조사 당시 추모공간 설치, 유가족명단 공유, 소통공간 마련에 대해 즉시 지원하겠다 답했지만 국조 종료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행된 사안은 한 건도 없다. 그럼에도 이같은 사실을 보도하는 언론은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 언론은) 유가족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이용해 정부에 돈을 요구하는 파렴치한으로 그렸다. 제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숨김없이 전달해달라.

이 자리에서 단호히 말씀드린다. 우리 유가족이 원하는 것은 성역없는 진상조사와 원인규명이다. 책임자가 처벌되고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해서 떠난 가족이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저희에게 진상규명이 더 간절하고 절실하다. 그날 이태원 1번 출구 골목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녁 먹고 오겠다고 나간 동생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는지 알고 싶다. 동생이 떠난 이유와 경위를 알아야만 진정한 애도를 시작할 수 있다. 결코 무슨 짓을 해도 돌아오지 못할, 손조차도 잡아볼 수 없는 먼곳으로 떠난 가족을 다시 볼 수 없기에 진상조사로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하는 일은 여생을 살아갈 저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저는 2014년 당시 고2였다. 수학여행 일주일을 앞둔 시점에 세월호 참사로 먼 친구들을 잃었다. 수학여행이 취소됐다는 아쉬움보다 언제 어디선가 단짝으로, 동료로 만났을지 모를 친구를 떠나보낸 슬픔이 아직 생생하다. 그 아픈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저는 제 숨결같은 동생을 잃었다. 세월호 참사때도 그랬듯, 이번 10.29 참사에서도 저는 운좋게 살아남았다. 이렇게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저는 하루하루 제 생명을 운에 맡기고 살아가고 있다. 도대체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서바이벌식 생존해야 하느냐.

이번 참사 원인 규명은 재발 대책을 세우기 위함이다. 깨진 항아리의 물 새는 위치도 모르고 엉뚱한 곳을 메워 다시 쓰는 건 바보같은 짓이다. 우리는 이런 어리석음을 좌시해서 안 된다. 미래세대를 위해서도 무엇이 문제였는지, 이 참사가 왜 발생했는지 되짚어야 한다. 그렇기에 진상규명에는 여야가 없다. 보수와 진보 구분이 있어서 안 되며, 정치극단주의가 만연한 우리나라 색깔론은 절대 결부해서는 안 된다.

이 시대 살아가는 우리는 오늘도 일터에 나가 죽지 않고 돌아와야 하고, 친구를 만난 장소에서 집에 돌아올 수 있어야 한다. 이 세상 누구도 번화가에서 술 마시고 논다고 해서, 놀러나갔다고 죽어마땅한 사람은 없다. 도구나 폭행으로 인한 물리적 살인만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 사람이 죽었다면 그또한 살인이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안전한 삶을 보장받아야 하고 이는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녹사평 분향소에 오셔서 함께 슬퍼하며 위로해주신 분들, 100일 추모제인 오늘 거리로 나와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외쳐주신 분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영정사진 앞에서 함께 눈물 흘려주신 분들, 이 참사에 관심을 갖고 지켜봐주시는 모든 국민께 감사 말씀 드린다. 사회의 감시자로서 돈과 권력의 횡포를 뛰어넘어 올바른 목소리 내주시는 언론인들과 정치인들, 애꿎은 날씨에도 저희 손과 발이 돼 주시는 시민대책회의 분들과 자원봉사자 분들, 참사당일 발로 뛰며 구조활동에 땀흘리신 소방, 경찰분들, 이태원 상인들께도 감사 말씀 드린다. 국민 한 사람으로서 하루 빨리 참사 원인이 규명되고 이태원에 활기찬 날이 오길 소망한다.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부대표

오늘 황금같은 주말 오후에 참사 100일을 맞아 우리 희생자 넋을 기리고 유가족 호소를 들어주시기 위해 자리해주신 많은 시민과 정계, 종교계에 깊은 감사 드린다. 많은 분이 우리와 함께함을 확인한 오늘 저는 가슴 깊이 뜨거운 감동과 고마움에 그간 가진 서글픔과 외로움을 모두 털어낼 수 있을 것 같다.

마치 무인도에 고립된 듯 철저히 외면당하고 무시당하며 자식도 잃고 국가도 외면하는 이 서글픈 현실에 괴로워서 몸부림쳐야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제가 생각을 잘못했다. 우리가 무인도에 버림받고 버려진 것이 아니라, 이 정부가 황량한 무인도에 버림받고 버려졌음을 알았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무인도에 버려졌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시민 여러분, 소중한 생명이 무려 159명이나 희생됐다. 그러나 정부는 자신은 책임이 없는 듯 모른채하고 있다. 모든 책임을 현장 책임자에게만 돌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법의 잣대로만 이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한다. 그래서 책임있는 자리에 면죄부를 주려 한다. 과연 그것이 올바른 판단일까요. 제가 감히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충고한다. 그런 판단은 검찰총장 때나 가능하다. 지금은 대통령이다. 국민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대통령이다. 국가 운영 책임자들은 자신의 권력과 지위만큼 책임이 따른다. 책임의 범위는 단지 법적 잣대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무한하다. 그 책임이 두려우면 국가와 국민을 위해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윤희근 경찰청장에게 고한다. 당시은 국민 생명이 사라져갈 때 어디서 뭘 했습니까. 그 많은 경찰은 어디서 뭘 했습니까. 지금 보십시오. 억울하게 세상 떠난 국민을 추모하는 자리에 이렇게 많은 경찰이 나와 있다. 어디 있다가 이제 나왔나. 여러분도 잘못을 인정하고 추모하러 나왔나. 그렇다면 그곳에 있지 말고 저희 분향소에서 진심어린 마음으로 추모하십시오.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고한다. 밤새 우리 막을 준비하느라 고생하셨다. 이 모든 행위가 마치 시민을 위한 것인양 속이려하지 마시라.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이렇게 많은 희생자가 나왔는데 지자체 수장으로서 부끄럽지도 않나. 제대로 된 추모 지원은 못할망정 오히려 방해하다니요.

이상민 장관에게 고한다. 당신에게는 우리 유가족의 간절한 마음을 전한다. 그 자리는 당신이 서야 할 자리가 아니다. 너무 어색하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 유가족으로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중히 부탁드린다. 이상민 장관, 제발 꺼져 달라.

[이대희 기자(eday@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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