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충격적인 '미끼', 그래서 더 마음이 아리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3. 2. 4.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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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꺼이 물고 싶은 미끼에 담긴 이 작품의 진심
‘미끼’, 진상규명 않는 사건, 피해자들이 느끼는 고통의 크기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그깟 사기가 살인하고 비교가 됩니까?" 구도한(장근석) 형사의 그 말에 천나연(이엘리아)는 발끈한다. "그깟 사기? 사기당해서 자살하는 사람이 살해되는 사람보다 더 많은 거 모르죠? 사기와 살인을 동급으로 보셔야 뭔가 보일 거예요." 구도한 형사와 피해자 가족 중 한 명인 천나연의 이 대화는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시리즈 <미끼>가 다루고 있는 다단계 사기사건을 보는 피해 당사자와 제3자의 시선이 얼마나 다른가를 드러낸다.

2010년 수만 명의 피해자를 만든 다단계 사기사건. 그 범행을 저지른 노상천(허성태)이 중국에서 사망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그렇게 사건은 유야무야되어 버리지만, 피해자들은 이를 믿지 못한다. 아니 믿을 수가 없다. 노상천이 죽었다면 피해자들은 아무런 보상은 물론이고 진상규명조차 되지 않은 채 오롯이 그 피해를 안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8년 후 연쇄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그 현장에 '노상천'이라는 이름이 적힌 쪽지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노상천이 절 죽이려 해요"라는 메시지가 그것이다. 죽은 사람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 그건 노상천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암시가 담긴 메시지다. 그런데 살인 현장에 나타났던 용의자가 하는 행동이 의뭉스럽다. 그 용의자는 노상천 때문에 삶이 망가진 피해자 단체에 있는 사람 중 한 명인데, 의도적으로 용의자가 되려하고 이 사건이 언론에 의해 더 알려지게 하려 한다.

용의자는 살인범이 아니라 이 사건을 통해 8년 전 유야무야 되어 버렸던 노상천의 사기사건을 다시 공론화하려는 의도를 보인다. 피해자 단체 역시 이 살인사건을 암묵적으로 공조하고, 기자인 천나연은 살인사건이 노상천의 다단계 사기사건과 연관되어 있다는 기사로 세상에 다시 '노상천'이라는 이름을 주목시키려 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러한 노력들은 계속 무위로 돌아간다. 누군가 힘 있는 자들(검경 수뇌부 같은)이 이 사건이 세상 밖으로 다시 나오는 걸 애써 막고 있어서다.

<미끼>가 보여주는 사건은 기상천외한 면이 있다. 그건 이미 과거에 '죽은 자'인 노상천이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는 것이 그렇고(물론 이건 누군가가 그렇게 꾸민 일일 테지만), 연쇄살인을 피해자 집단이 암묵적으로 돕는다는 상황이 그렇다. 게다가 8년이 지난 사건이지만 여전히 이 사건을 예민하게 생각하고 '노상천'이라는 이름이 다시 세상에 거론되는 걸 너무나 예민하게 생각하는 권력자들이 존재하는 상황도 그렇다.

사건 자체가 기상천외하고 상식적으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에 <미끼>는 범죄 수사물로서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사건 전개를 통한 장르적 재미를 선사한다. 또한 노상천이라는 한때 건달 정도에 불과하던 인물이 어떻게 수만 명의 피해자를 만드는 희대의 사기꾼이 되는가에 대한 '입지전적인(?)' 서사가 또 한 축을 이루고 있어 범죄 느와르적인 흥미 또한 자극한다.

하지만 이러한 장르적 재미와 흥미에는 이 드라마가 던지고 있는 묵직한 메시지가 더해져 있다. 즉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사건 전개가 주는 장르적 재미란 사실 정상적인 사회라면 반드시 이뤄졌어야 하는 '진상규명'과 '피해자 구제'가 범죄자의 사망 소식 발표로 덮어져버린 상황에서 발생한 일이다. 사건은 그렇게 유야무야됐지만, 피해자들은 그 시간에서 단 1분1초도 벗어나지 못한 채 그 고통 속에 수십 년을 살고 있다.

또한 그저 건달에 불과하던 노상천이 희대의 사기꾼이 되는 과정을 보면, "사기 당한 놈이 병신"이라는 경찰들의 이야기에 담긴 사기사건을 보는 엇나가 사회적 시선이 존재하고, 미끼 하나로 누구든 꿰는 게 용이한 한국사회의 취약함이 드러난다. 노상천은 이곳이 사기 치기 너무나 쉬운 곳이라고 공언한다. 사기를 치고도 경찰과 검찰 게다가 정치권까지 연결된 그들만의 카르텔 속에서 오히려 법의 비호를 받는 범법자들이 가능한 사회라니.

무엇보다 <미끼>가 다루는 다단계 사기사건은 그저 상상으로 그려진 허구가 아니라는 게 충격적이다. 작품이 굳이 내세우고 있진 않지만 시청자들은 <미끼>의 노상천을 보며 거기 겹쳐지는 이름 '조희팔'을 떠올릴 테니 말이다. 2004년 5만 여명의 피해자로부터 3조를 가로챈 다단계 사기사건의 주인공인 그는 드라마 속 노상천처럼 2008년 중국으로 밀항한 뒤 2011년 그 곳에서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 바 있다. 당시 뉴스는 조희팔의 장례식 영상을 공개했지만 화장을 한 탓에 시신도 DNA도 확보할 수 없었다. 그 죽음에 대한 의문은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다.

그런데 굳이 조희팔 같은 구체적인 이름을 떠올리지 않아도 <미끼>가 던지고 있는 상황들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졌던 무수한 피해자와 가족들을 만들었던 사건들을 떠올리게 한다. 최근 벌어진 이태원 참사는 물론이고 세월호 참사까지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고 그래서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과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가 없는 우리 사회의 현실들이 겹쳐진다. <미끼>는 그래서 그렇게 진상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아 사건은 사라져버렸지만 여전히 생존해 남은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겪고 있는 '고통의 크기'를 꺼내놓는 작품이다.

"당신들도 참 어지간하네. 아니 시간도 꽤 지났잖아?" 어디선가 실제 현실에서도 들었던 것 같은 <미끼> 속에 등장하는 이러한 대사를 들을 때면 그래서 마음이 아리다. 아직 그들의 현실을 절감하지 못해 그렇게 말하는 구도한 형사에게 천나연이 던지는 말은 그래서 더 가슴을 후벼 판다. "이보세요. 노상천이 가져간 건 우리 돈뿐 아니라 삶 그 자체예요." <미끼>는 그래서 진상규명 없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무수한 피해자들의 삶을 파괴했던 사건들을 다시 수면 위로 꺼내 올리는 '미끼' 같은 작품이다. 기꺼이 물고 진실을 마주하며 피해자들의 삶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드는 미끼.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쿠팡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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