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공예품 선물 고르기…긴 편지 쓰는 일 같아

한겨레 입력 2023. 2. 4. 13:30 수정 2023. 2. 4.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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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박효성의 욕망하는 공예]박효성의 욕망하는 공예
기성품과 다른 의미 있는 작품
작가·사용자 연결하는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진심을 담은 선물
1. 케이시디에프(KCDF)갤러리숍 공예정원의 윈도갤러리에서 열리는 ‘행복의 사물들’ 전시. 그리드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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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아래 내가 받은/ 가장 큰 선물은/ 오늘입니다.// 오늘 받은 선물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당신입니다.’

나태주 시인의 시 <선물>의 한 구절로 가까운 지인을 만나러 가기 전 기도처럼 읊조린다. 선물처럼 공짜로 주어진 하루하루에 감사하며 응원과 위로의 마음을 주고받는 이들이야말로 진짜 선물임을 아니까. 귀한 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작은 선물을 자주 전하는 것도 시인의 조언 덕분인 듯하다.

누군가를 위해 선물을 고르고 준비하는 과정은 편지를 쓰는 것과 같다. 그 사람을 찬찬히 떠올리고 어떤 말과 의미를 담을지 곱씹다 보면 이윽고 나에게만 들리는 펜촉 소리가 사각사각 난다. 유난히 펜촉 소리가 잘 들릴 때가 있는데 공예품을 선물로 준비하는 경우다. 만든 이의 이야기와 정성스러운 손길을 느끼고, 이를 사용할 사람의 일상에서 요긴하고 아름답게 쓰일 것을 상상하다 보니 편지 내용이 풍성해져서이다. 공예품처럼 누가, 언제, 어떻게 물건을 만들었는지 고스란히 알 수 있는 것은 특별하다. 대개는 평소 알고 있는 작가의 작품을 선물 리스트로 떠올리지만 처음 본 작가라면 취재하듯 정보를 찾아보고 판매하는 숍의 직원에게 꼼꼼히 묻기도 한다. 이렇게 마음을 한 자 한 자 새겨 담은 선물을 준비하는 나 자신이 퍽 근사하기도 해서 이를 즐긴다.

소사요 흑유 고블릿 잔. 박효성 제공

공예로 쓴 나의 편지들

최근 서울 종로구 서촌 한옥에 집을 마련한 지인의 집들이를 위해 꽤 오래 고심하며 선물을 선택했다. 자연스럽고 수더분한 도자기를 만드는 ‘소사요’ 김진완 도예가의 흑유 고블릿잔(와인처럼 받침이 있는 잔)이다. 작고 단아한 모습부터 선물 받을 분을 닮았다. 차, 커피, 와인, 물 등 마실 것 구분 없이 사용할 수 있어 작은 한옥의 간소한 살림에 요긴하다. 검은색이지만 명도가 높아 따뜻하고, 흙의 질감을 느낄 수 있는 매트한 촉감은 매끈하고 반짝이는 도자기와는 다른 깊이를 선사한다. 모시 소재로 바느질 작업을 하는 분을 위한 선물이라 손에 닿는 감촉이 순했으면 싶었다.

깨진 그릇을 옻으로 수리하는 김수미 작가의 개인전을 축하하기 위해서 마련한 선물은 전통 공예 재료인 옻칠로 다양한 작업을 선보이는 ‘오트오트’의 옻칠반이다. 오트오트를 운영하는 김아람, 김나연 작가의 부드럽고 선한 미소가 선물 받을 김수미 작가와 무척 닮아 양측을 모두 아는 입장에서 신기했고, 옻을 다루는 이들의 인연을 이렇게나마 닿게 하고 싶었다. 오트오트 옻칠반은 트레이, 즉 쟁반으로 접시처럼도 사용할 수 있고 다채로운 색을 입혀 식탁 위에 생기를 더한다. 네 살배기 아들을 키우며 개인 작업과 수업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워킹맘인 그가 잠시 여유를 가지고 자신을 위한 디저트를 곱게 담아 즐기길 바라며 골랐다.

건강이 조금 안 좋아진 지인을 응원하기 위해서는 삼청동에 있는 ‘규방도감’의 ‘무명 자수타월’을 준비했다. 바느질 작가 우영미 선생님이 운영하는 이곳의 무명은 화학 표백제를 사용하지 않고 수차례 삶고 말리며 두드리는 방식으로 하얗게 만든다. 목화 실로 짠 도톰한 무명에 전통 문양을 수놓아 고운 멋을 더했다. 일반 타월이나 광목보다 흡수와 건조가 빠르고 일체의 화학 성분이 없는 깨끗한 무명수건이 그의 병도 말끔하게 닦아줄 거라는 믿음을 담았다. 약소하게 한장을 선물한 것이 내내 걸렸는데 역시나 사용해보니 좋아서 몇장 더 사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덧붙이자면 수건만큼 자주 사용하고 피부에 직접 닿는 이불을 규방도감의 무명 소재 커버와 목화솜으로 바꾸는 것이 곧 이루고 싶은 나의 꿈이자 계획이다.

오트오트의 옻칠반. 오트오트 제공
규방도감의 무명 자수타월. 규방도감 제공

갤러리 같은 공예 선물 가게

공예품은 선물로서 특별한 가치가 있지만 고르고 사는 일이 쉽지 않다. 게다가 선물을 급히 마련해야 할 경우도 있어 긴 편지를 쓰듯 시간과 정성을 들이기 어렵다. 이럴 땐 믿고 찾는 공예 선물 가게로 향한다. 다양한 분야의 공예품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고, 가격대도 폭넓어 부담스럽지 않은 선물을 마련할 수 있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갤러리처럼 공예품을 감상하며 쇼핑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서울 인사동에 있는 ‘케이시디에프(KCDF) 갤러리숍 공예정원’은 앞서 언급한 기준에 가장 부합하는 곳이다. 한국공예디자인진흥원에서 운영하는 이곳은 기존 공예 작가들의 작품을 비롯해 전통 공예의 계승을 위해 현대적인 디자인을 더하고 발전시키는 프로젝트를 통해 개발된 공예품을 소개한다. 외부 쇼윈도를 갤러리처럼 활용해 기획전시를 하는데 2월19일까지 ‘행복의 사물들’이란 제목으로 금속, 도자, 유리, 섬유, 옻칠 공예가들이 만든 아름다운 물건을 소개한다. 효자동에 자리 잡은 ‘솔루나리빙’에서는 심도 있는 완성도와 예술적 가치가 높은 공예품을 선보인다. 한국을 대표하는 공예가들과 함께하는 이곳의 작가 라인업만 제대로 알아두어도 공예 분야의 안목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젊은 활기가 넘치는 동네, 서울 성수동에는 ‘갤러리 까비넷’이 있다. 이름처럼 갤러리와 쇼룸을 운영하는 곳으로 전시도 훌륭하지만 쇼룸에서 판매하는 공예가들의 그릇이 풍성하다. 이밖에 서울공예박물관 아트숍과 리움미술관 아트숍도 빼놓기 아쉬운 선물 가게다. 특히 리움미술관 아트숍은 현재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한국 공예가들의 작품을 망라해 명쾌한 답안지 같다.

공예숍이 다른 편집숍이나 매장과 다른 점은 작품과 제품에 이름이 적혀있는 것이다. 진짜 명품은 바로 만든 이의 이름을 알 수 있는 것 아닐까? 2023년 한 해 동안 어떤 명품과 만나 어떤 사연을 담은 선물을 하게 될지 기대가 부풀며 이 이야기만 모아도 책을 만들 수 있겠다는 설레발과 설렘으로 요란스러운, 아직 새해다.

박효성 리빙 칼럼니스트

잡지를 만들다가 공예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우리 공예가 가깝게 쓰이고 아름다운 일상으로 가꿔주길 바라고 욕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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