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매수로 K주식에 다시 훈풍 불까 [재테크_금융]

이종우 이코노미스트(전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2023. 2. 4.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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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들, 1월 한 달 동안 7조원 가까운 주식 사들여
과거 사례 볼 때 영향력은 상황 따라 달라

(시사저널=이종우 이코노미스트(전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2023년이 시작되자마자 외국인들이 주식 매수에 나섰다. 새해 첫날부터 1월27일까지 18거래일 동안 6조8000억원 순매수를 기록했을 정도다. 이 중 삼성전자가 전체의 37%인 2조5000억원을 차지했다.

외국인 매수가 시장을 움직이는 동력으로 자리 잡자 왜 외국인이 매수에 나섰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다. 환율에서 원인을 찾는 사람이 많다. 코로나 팬데믹이 발생하고 2년 동안 외국인은 70조원어치의 우리 주식을 시장에 내다 팔았다. 당시에도 많은 사람이 환율에서 외국인 매도의 원인을 찾았다. 원화가 약세여서 환 손실을 피하기 위해 주식을 매도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반대다. 한때 1400원대 중반까지 올라갔던 원-달러 환율이 1200원대 초반으로 떨어지면서 외환에서 초과수익을 올릴 수 있는 여지가 생겨 외국인이 주식 매수에 나섰다는 것이다.

코스피가 외국인과 기관투자가의 동반 순매수에 2.6% 이상 급등하며 단숨에 2350대로 뛰어오른 1월9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한 직원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외 증시 주가 상승이 중요 요인인 듯

일리 있는 얘기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만약 환율 때문에 주식을 사고판다면 채권도 그냥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 채권은 주식보다 환율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 상품이다. 주식은 하루 상·하한가 폭이 30%여서 환율로 인해 발생한 변동을 흡수할 공간이 많지만, 채권은 1년에 금리가 4%도 되지 않아 환차손을 입으면 회복이 어렵다.

환율보다 연초 이후 국내외 주가가 꾸준히 상승하고 있는 게 외국인 매수를 촉발한 요인이 아닌가 싶다. 외국인 매수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를 조사해 보면 미국 주가의 역할이 가장 큰 걸로 나온다. 우리도 국내시장이 좋을 때 해외 투자가 덩달아 늘어나는 것처럼 외국 투자자들도 자국 주가가 오를 때 해외 투자가 늘어나는 것이다. 작년에 크게 하락했던 나스닥까지 상승장에 동참할 정도로 시장이 좋기 때문에 외국인 매수가 늘어나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외국인이 우리 주식을 집중적으로 사들인 경우가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외국인 매수 허용 초기인 1990년대 초반이다. 당시 외국인 매수는 정해진 날짜에 허용된 보유 비율만큼을 채우는 형태로 진행됐다. 예를 들면 기존에 10%로 제한돼 있던 외국인 보유 한도가 7월1일부터 12%로 높아질 경우, 늘어난 2%만큼을 7월1일 이후에 채우는 방식이다. 지금은 외국인에게 우리 주식시장이 100% 개방돼 원하는 주식을 얼마든지 사고팔 수 있지만 초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외국인 보유 한도를 10%로 정하면, 외국인이 삼성전자 전체 주식 중 10%밖에 살 수 없는 구조였다. 주식시장 개방 초기에 외국인이 우리 주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보유 비율이 높아질 때마다 외국인들의 매수가 늘어났다.

또 한 번은 2000년대 초반이다. 외환위기 직후 기업 구조조정이 가닥을 잡아가던 때다. 외환위기와 미국의 IT버블 붕괴로 주춤했던 외국인 매수가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서 다시 늘어났다. 기업이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면서 이익 규모가 달라질 거란 기대가 작용한 결과다. 우리 기업의 미래를 보고 외국인이 투자에 나선 건데, 이렇게 오랜 시간 매수가 이뤄질 경우에는 외국인 매수가 주가를 끌어올릴 수 있다.

반면에 일시적으로 매수가 몰릴 때는 영향이 제각각이다. 2003년 6월 외국인이 3개월에 걸쳐 시가총액의 3.4%에 해당하는 주식을 매수한 적이 있다. 지금 시가총액으로 따지면 70조원 가까운 돈이다. 주가는 외국인이 매수하는 동안 623에서 767까지 23% 상승했다. 2009년 5~7월에도 시가총액의 2.7%, 총 20조원에 달하는 순매수를 했다. 그 덕분에 코스피가 1400에서 1700까지 300포인트 가까이 상승했다.

당시 주가가 상승한 건 시가총액의 3%에 가까운 순매수가 이루어진 데다, 대세 상승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이 상승이 외국인 매수 덕분인지, 대세 상승 덕분인지 정확하게 구분하긴 힘들다. 외국인 매수가 끝난 후에도 주가 상승이 계속됐던 것을 보면 대세 상승의 영향이 큰 걸로 보인다.

외국인 매수세, 언제까지 계속될까

대세 상승이 아닌 경우에는 외국인 매수의 영향력이 미미했다. 2001년 외국인이 주식 매수에 나서 한 달 동안 시가총액의 1.5%에 해당하는 2조9000억원어치의 주식을 사들인 적이 있다. 외국인이 매수하는 동안 코스피가 520에서 600까지 상승했다가 매수가 끝나고 한 달 만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외국인 매수가 주가를 잠깐 끌어올리는 데 그친 것이다. 아직까지 외국인 매수는 대세 상승이 아닌 상태에서 일시적으로 유입되는 형태로 보인다. 그만큼 주가를 움직이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외국인에게 우리 시장은 매력적인 곳이 아니다. 우리 경제가 이미 성숙 단계에 들어가 신흥국처럼 초과 성장을 누릴 수 없기 때문에 주식시장에서도 높은 프리미엄을 기대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우리 시장이 선진국처럼 안정된 곳도 아니다. 선진국과 이머징 마켓 사이에 어중간하게 끼어있는 형태다. 보유 주식이라도 적으면 희소성 때문에 주식을 매수할 텐데 주식도 많이 가지고 있다. 한때 30% 중반까지 올라갔던 외국인 지분율이 28%로 떨어졌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여전히 높다. 일시적인 수준 이상의 외국인 매수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의미가 된다.

외국인 매수가 1월만큼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똑같은 돈이 들어와도 주가에 따라 수급의 영향이 달라지는 게 일반적이다. 코스피 2000일 때 외국인이 1조원어치를 순매수하는 것보다 2500일 때 1조원어치를 순매수하는 게 위력이 약하다. 주가가 올라가면 똑같은 돈으로 살 수 있는 주식의 양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외국인 매수가 몰렸던 종목의 주가가 상승한 것도 추가 유입에 걸림돌이 된다. 1월 한 달 동안 외국인 매수의 40% 가까이가 삼성전자 한 종목에 몰렸다. 그 덕분에 주가가 6만원대 중반까지 상승했다. 시장에서는 반도체 경기 회복 기대로 주가가 올랐다고 얘기하지만, 이는 주가가 상승하기 때문에 나온 논리로 보인다. 이제 반도체 주가가 오르기 위해서는 단순한 기대감 그 이상이 필요하다. 실제로 경기가 좋아지는 모습이 나타나지 않으면 반도체에 대한 외국인 매수가 줄어들 것이고, 이 상태에서 외국인 매수를 유지하려면 반도체를 대신할 종목이 나와야 한다. 우리 시장에서 그 어떤 종목도 삼성전자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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