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짭짤한 잠봉에 부드러운 마스카르포네, 무조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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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한국에 유행하는 음식이 뭔지 알고 싶으면 인스타그램을 돌려보면 된다. 제일 많이 나오는 사진이 대체로 유행이다. 사용자들은 가장 유행하는 음식을 올리려고 한다. 1등은 아니지만 잠봉뵈르가 눈에 띈다. 잠봉은 돼지 허벅지, 뵈르는 버터. 프랑스 사람들이 제일 많이 먹는 샌드위치 조합이다. 바삭한 바게트에 잠봉 슬라이스를 주름지게 한장 올리고 버터를 얹어 먹는다. 끝내준다.
프랑스의 수많은 샌드위치 중에서 대략 절반의 비중을 차지하는 중요한 구성이다. 단연 압도적이다. 이런 ‘건조한’ 라틴 유럽식 샌드위치, 그러니까 단순한 재료 한두 가지를 중심으로 소스를 뿌리지 않고 만드는 음식은 종류가 꽤 된다. 토마토와 모차렐라 샌드위치도 그중 하나다. 샌드위치 재료 중에는 햄이 가장 흔하다. 미국의 햄버거도 원래는 햄을 넣은 샌드위치의 아종이라고 할 수 있다. 햄은 탄수화물인 빵과 기막히게 잘 맞는다. 짭짤하고 적당히 기름지며 무엇보다 ‘고기’ 아닌가. 여기에 버터를 얹었으니 완벽하달 수밖에. 영양적으로 채소가 빠졌느니 이런 말은 하지 말자. 채소는 따로 드시면 된다.
침샘 자극하는 짭짤한 풍미
햄은 원래 돼지 엉덩이(에서 허벅지에 이르는)를 뜻한다. 그 부위를 통째로 절여서 삶거나 찌거나 훈제하는 게 원래 햄이었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자투리 고기와 지방을 섞어 모양을 만든 것도 다 그냥 햄이라고 부르게 됐다. 닭고기나 칠면조를 쓴 것도, 생선을 넣은 것도 햄이라고 불러도 불법이 아니다. 상업적으로 얄팍한 수에서 나온 대체품의 역사다.
잠봉은 이탈리아나 스페인으로 치면 프로슈토나 하몽이다. 날것도 있고 익힌 것도 있다. 잠봉뵈르는 주로 익힌 걸 쓴다. 돼지 엉덩이와 허벅지(한국에서 후지라고 부른다)를 통으로 소금에 절인 후 낮은 온도로 천천히 익힌다. 그래야 예쁜 분홍색이 나오고 풍미도 좋다. 한 5㎏ 이상 가는 큰놈을 통째 팔기도 하고, 얇게 저며서 소량씩 포장해서 팔기도 한다. 프랑스 거리의 샌드위치 가게에서 볼 수 있는 멋진 장면. 잠봉을 통으로 사서 저민 후 빵에 척척 얹어 샌드위치를 만드는 걸 보면 침이 넘어간다. 아무것도 더하지도 않고 오직 빵, 잠봉, 버터의 조합이다. 단순할수록 재료의 맛이 중요하다. 좋은 잠봉은 비싸다.
한국에서 30년간 유럽산 햄은 프로슈토와 하몽이 유행을 이끌었다. 작년부터 ‘잠봉’이란 말이 나오고 유행하기 시작했다. 프로슈토와 하몽은 날것, 잠봉은 익힌 것이라는 오해도 생겼다. 실제로 그렇게 설명되며 팔리기 때문이다. 사실은 다르다. 프로슈토=하몽=잠봉이고 모두 날것과 익힌 것이 각기 있다. 잠봉뵈르를 만들 때 익힌 걸 쓰다 보니 그런 오해가 생겼다.
잠봉은 안주로 최고다. 그냥 맛있는 햄이니까. 요리를 해도 된다. 혹시 유럽 여행을 할 때 부대찌개가 먹고 싶다면 나를 따라 해보시라. 우선 유럽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잠봉이든 프로슈토든 있다. 그걸 익힌 거로 산다. 마트에서는 얇게 저며서 딱 알맞게 포장해서 판다. 정육점에 가면 아저씨가 얇게 기계로 저며서 기름종이에 싸서 달아 판다. 후자의 경우가 정말 멋진 과정이다. 잠봉의 질도 더 좋다. 그다음엔 마트에서 사워크라우트(자우어크라우트)를 산다. 독일식 양배추 절임이다. 소시지도 사서 세 가지를 넣고 양파와 파, 마늘을 재량껏 넣는다. 비행기에서 나눠준 고추장 튜브나 가져간 고추장을 몇 숟갈 넣고 끓이면 부대찌개 맛이 난다. 하기야, 요즘은 현지 한국식품점에는 냉동 부대찌개도 판다니까 뭐.
잠봉은 인터넷 쇼핑으로 쉽게 살 수 있다. 짭짤한 크래커(아이비나 참 크래커)와 잠봉 슬라이스, 버터가 있으면 된다. 잠봉은 얇게 저밀수록 맛이 좋다. 얇아야 살살 녹는다. 혀에 닿는 촉감도 좋다. 보통 인터넷 쇼핑에서 얇게 저민 상태로 판다. 이걸 한장 접시에 펼치고 차가운 버터(딱딱한 버터)를 툭툭 잘라서 던져 올린다. 보자기처럼 싸서 크래커랑 먹는다. 누구는 꿀이나 딸기잼에 찍어 먹는 것도 봤는데 그것도 괜찮다. 냉장고 문짝 안쪽에 보면 일회용 잼이 굴러다니곤 한다. 한번 뒤져봐라. 있을 거다.
잠봉 최고의 짝꿍은 이것
그런데 잠봉과 버터의 조합과는 다른 조합을 하나 추천한다. 마스카르포네다. 티라미수 만들 때 쓰는 오리지널 치즈다. 흔히 치즈라고 부르지만 실은 크림이라고 해야 한다. 발효나 숙성을 하지 않은 신선한 식품인 까닭이다. 유지방이 절반쯤 되는 이탈리아 북부의 유가공식품이다. 마스카르포네는 열을 가하면 지방이 분리되어 맛이 없어진다. 차가운 상태가 좋다. 잠봉(프로슈토 코토라고 부르는 이탈리아의 익힌 햄도 좋다)을 한장 깔고 마스카르포네를 두툼하게 대충 바른다. 피스타치오나 아몬드를 올려서 돌돌 말아서 안주로 내도 좋다. 단, 마스카르포네가 차가울 때 먹어야 맛있으니까 빨리 먹어야 한다. 와인 안주로 정말 끝내주고, 맥주에도 좋다. 하이볼이나 얼음 넣은 위스키에도 잘 맞는다. 최근에는 그냥 소주에 얼음과 달지 않은 탄산수를 타서 같이 먹었다. 그것도 좋았다. 값도 싸게 먹히고.
잠봉은 장봉이라고도 발음하는데, 인터넷 쇼핑을 할 때는 꼭 잠봉이라고 써야 한다. 장봉을 검색하면 무술이나 필라테스용 장봉, 즉 기다란 막대기가 나온다. 익힌 잠봉은 불어로 ‘잠봉 블렁’(블랑·흰색)이라고 하니, 그렇게 검색해도 나온다. 가격은 대체로 100g에 5천원~1만원선. 대량으로 사면 싸다. 잠봉은 냉동 보관해도 맛이 떨어지지 않으니 한꺼번에 많이 사는 게 유리할 수도 있다. 잠봉 대신 이탈리아의 햄 종류인 모르타델라도 좋고, 그냥 한국의 국산 햄(로인 햄이라는 이름으로 팔린다)을 사서 얇게 저며서 써도 된다. 얇아야 맛있으니 날카로운 칼로 가능한 한 잘 저며야 한다는 걸 염두에 두자. 마스카르포네는 인터넷에서 500g짜리가 1만원선이다. 유통기한이 짧고 냉동하면 안 되는 것이니 필요할 때마다 소량씩 사는 게 좋다. 250g짜리 포장도 있다.
요리사 겸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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