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와인] ‘복제 불가능한 바이올린 선율’을 표현한 와인… 바바 랑게 네비올로

유진우 기자 2023. 2. 4.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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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는 프랑스와 전 세계 와인 생산량 1위 자리를 놓고 매년 엎치락 뒤치락하는 사이다.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 국제와인기구(OIV)에 따르면 2021년 이탈리아 와인 생산량이 직전 해보다 2% 늘어난 5020만헥토리터로 집계된 반면, 프랑스 와인 생산량은 이전해보다 19%가 줄어든 3760만헥토리터에 그쳤다. 두 나라 사이 생산량 차이가 이렇게 크게 벌어진 것은 최근 10여년 만에 처음이다.

그러나 여전히 세계 최고가 와인은 프랑스 와인의 전유물이다. 대중들이 으레 흥미로 뽑는 ‘세계 최고의 와인’ 리스트에서도 이탈리아 와인은 프랑스 와인에 밀리기 일쑤다.

생산량은 물론 품질에서도, 와인을 만들어 온 역사에서도 프랑스에 뒤처질 부분이 없는 이탈리아 와인 생산자과 소비자들로서는 은근히 부아가 치밀 노릇이다.

이런 이탈리아가 자신있게 프랑스보다 앞선다고 내세우는 분야가 있다면 바로 클래식 음악이다. 전 세계적으로 두루 쓰이는 와인 관련 용어가 프랑스어인 것처럼, 이탈리아는 클래식 음악 악보를 장악했다.

안단테, 포르테, 피아니시모, 크레센도, 칸타타, 스타카토를 포함해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만국 공통어 ‘도레미파솔라시도’를 만든 인물도 이탈리아 수사(修士) 귀도 다레조다.

비발디, 베르디, 로시니, 푸치니처럼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무수히 많은 작곡가들, 이탈리아에서 쓰여진 수많은 오페라들은 굳이 한 사람 한 작품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화려하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북쪽 피에몬테 지역에서 와인을 만들어 온 ‘바바(BAVA)’라는 와이너리는 클래식 음악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본인들이 만드는 와인에 투영한다.

작곡가는 음표로 악보를 그려서 즐거움이나 노여움 같은 악상을 표현한다. 이 와이너리는 와인을 ‘하늘과 토양이 그려낸 음악’이라고 여긴다. 그 해, 그 지역 자연이 연주한 결과물이 와인이라는 믿음이다.

그래픽=손민균

무슨 말인가 싶다면 이 와이너리에서 만드는 대표적인 와인들 겉표지를 보는 편이 좋다. 바바 와이너리 사장 로베르토 바바(Roberto Bava)는 1980년부터 40년이 넘게 이 와이너리 경영을 맡고 있다. 그는 관악기가 가진 음율은 화이트 와인이 품은 이미지와 잘 어울리고, 현악기에서 나는 소리는 레드 와인 특성과 맞아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이 와이너리를 대표하는 ‘바롤로 스카로네(Barolo Scarrone)’ 와인에는 콘트라베이스 악기가 커다랗게 그려져 있다. 콘트라베이스는 서양음악에 쓰이는 현악기 가운데 가장 클 뿐 아니라, 가장 음역대가 낮다. 이 와인이 그만큼 무게감 있고, 입 안에서 가득 차는 느낌을 주는 와인이라는 의미를 악기로 표현한 것이다.

식전에 가볍게 마시기 좋은 화이트 와인 코르 드 샤세(Cor de Chasse)에는 관악기 사냥 나팔을 그려 넣었다. 이 와인은 안정감 있고 우아하지만, 약간의 긴장감을 자아내는 사냥 나팔 소리를 닮았다. 본격적인 음식이 나오기 앞서 식사 분위기를 끌어올리기에 적합하다.

포도 농사가 풍년인 해에만 한정적으로 나오는 이 와이너리 최고 제품에는 ‘스트라디바리오(Stradivario)’라는 이름을 붙였다. 스트라디바리오는 이탈리아 크레모나 출신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가 만든 바이올린 명기(名器)다. 흔히 라틴어 이름 ‘스트라디바리우스’로 불린다.

이 바이올린은 독특한 목재 처리 방식과 디자인 덕분에 복제가 불가능한 특유의 소리를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웅장하면서도 화려한 이중적인 음색을 동시에 뿜어내는 이 바이올린 매력에 정경화, 정명화 같은 한국 음악인 뿐 아니라 내로라 하는 세계적인 연주가들이 매료됐다.

좀처럼 경매에 나오는 일도 없지만, 나오면 수백억원을 호가할 만큼 비싼 악기기도 하다. 1721년에 만든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지난 2011년 1590만달러(약 200억원)에 팔렸다.

바바는 스트라디바리우스가 가진 음색을 바르베라(Barbera)라는 이 지역 토착 품종 포도로 풀어냈다. 이 포도 품종으로 만드는 와인은 대체로 초기에는 복합적인 맛과 향이 부족하고, 오래 보관하면 과실이 가진 향기가 사라져 주로 저렴한 테이블 와인으로 팔렸다.

하지만 바바는 좋은 해에 햇빛을 듬뿍 받기 좋은 남향 포도밭에서 수확한 바르베라 품종 포도 알맹이를 선별해 1년 반 동안 참나무통에서 숙성해 내놓는 방식으로 이 포도가 가진 한계를 넘어섰다.

바바 랑게 네비올로(Langhe Nebbiolo)는 이 와이너리에서 키우는 포도나무 가운데 가장 최근에 심은 포도나무에서 딴 포도로 만드는 와인이다. 기본급 와인에 해당해 겉표면에 그려진 악기는 없지만, 웅장함 대신 생생함을 갖췄다.

가격도 콘트라베이스를 표현한 바롤로 스카로네 혹은 스트라디바리오에 비하면 3분의 1에도 못 미칠 만큼 저렴하다. 원숙한 연주자들의 콘체르토(협주곡) 대신 신인 연주가의 독주(獨奏)라고 생각하면 마시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이 와인은 2022 대한민국주류대상 레드와인 구대륙 3만~6만원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다. 수입사는 하이트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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