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대표팀 세대교체 실패했다"? 정말 그런지 확인해 봤습니다

배정훈 기자 2023. 2. 4.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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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교체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순 없다


"언제까지 김광현, 양현종이에요. 이제 어린 선수들, 사실 재능 있는 선수들이 어마어마하게 많거든요. (대표팀에 뽑힌) 많은 선수들이 사실은 안 가는 게 맞고 또 새로 뽑혀야 되는 선수들은 더 많았어야 해요."

시작은 KBO리그의 맏형 추신수의 발언이었습니다. 미국의 한 한인 라디오 방송에 나와 WBC 대표팀 선발을 비판하며 세대교체의 필요성을 지적한 건데, 이 발언의 후폭풍은 일파만파로 커졌습니다. 추신수에게 '안 뽑혔어야 되는 선수' 중 하나로 지목된 김현수는 "모든 세대교체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면서 "(대표팀에는) 실력이 있는 선수가 나가는 게 맞다"고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고, 이강철 감독도 "이길 수 있는 선수들로 구성하려고 노력했다"면서 "(현재의 멤버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방송에서 추신수가 "한국에선 용서가 쉽지 않은 것 같다"며 '학폭 논란'으로 대표팀에서 제외된 안우진까지 두둔하고 나서는 바람에 여론의 지향은 한쪽으로 확 기울어졌습니다. 야구계의 대선배로서 지나치게 경솔한 발언을 했다는데 다수의 의견이 모아진 겁니다. 여기에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 혜택을 받은 뒤 국가대표로 뛰지 않은 '전적'은 물론, 미국 국적인 두 아들의 병역 문제까지 입길에 오르며 여론의 관심은 애초 추신수가 제기했던 문제 제기와는 전혀 다른 곳으로 번져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완전히 잊히기 전에 꼭 한 번 짚어봤으면 좋겠습니다. 추신수의 말처럼 이번 WBC 대표팀은 세대교체에 실패한 걸까요?
 

세대교체란 무엇인가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세대교체는 "신세대가 구세대와 교대하여 어떤 일의 주역이 됨"이라는 뜻입니다. 야구로 치환하면 베테랑 플레이어보다 젊은 선수들이 팀에서 더 중요한 역할을 맡는 상황을 의미할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세대교체가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까요? 가장 쉬운 방법, 대표팀 선수들의 평균연령을 통해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2023년 WBC 대표팀의 평균 나이는 29.4세입니다. 2000년 이후 가장 젊은 팀이었던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26.1세)과 금메달의 영광을 안았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26.5세)보단 많지만, 2017년 WBC 대표팀(30.9세), 2013년 WBC 대표팀(29.8세)보다는 젊고, 4강 신화를 썼던 2006년 WBC 대표팀(29.1세)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물론 타자들의 경우 역대 최고령 라인업(31.7세)이 꾸려진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투수진(27.1세)은 2008년 베이징(24.6세), 2000년 시드니(26.3세)에 이어 세 번째로 젊습니다. 정리하자면, 평균 나이로만 봤을 때는 특히 이번 WBC 대표팀이 세대교체에 실패했다고 할 만큼 '튀는 값'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추신수는 대체 무엇을 보고 '대표팀에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했을까요. 어쩌면 이번 WBC 대표팀 구성에 숨어있는, '평균'으로는 보이지 않는 특이성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전성기 세대의 실종


야구 선수의 전성기는 언제일까요? 포지션에 따라, 또 개별 선수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략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프로에 데뷔해 점점 경험과 기술을 쌓아가는 20대 초반을 지난 뒤 전성기를 맞고, 이후 운동능력이 떨어지며 점차 위력이 쇠퇴하는 흐름, 이른바 '에이징 커브'가 존재한다는 겁니다. 당연히 대표팀에 뽑히는 선수들의 나이도 이 나이대가 가장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 2023년 WBC 대표팀의 경우는 조금 달랐습니다.


이른바 '전성기 나이'라고 할 수 있는 26세에서 32세 구간은 항상 대표팀에서 가장 절대다수를 차지했습니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세 대회 동안은 28명 가운데 19명, 그러니까 로스터의 2/3를 이 나이대 선수들이 채웠고, 가장 젊은 대표팀을 꾸렸던 2000년 시드니에서도 9이닝 1실점 완투승으로 동메달을 이끌었던 구대성(당시 31세)을 비롯해 선수단의 절반이 26~32세 선수들로 채워졌습니다.

이런 흐름은 2년 전 도쿄 올림픽부터 꺾이기 시작합니다. 여전히 절대다수이긴 했지만, 2000년 이후 처음으로 50%의 벽이 무너졌습니다. 33세 이상 선수 비중이 1/3을 넘은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올해 대표팀에 와선, 전성기 나이대 선수는 가장 보기 어려운 희귀종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이번 WBC 대표팀에 뽑힌 26~32세 선수는 모두 7명. 그중 한 명은 차출 여부가 불확실해지며 대체 선수 발탁이 검토되고 있는 최지만(32세)이고, 또 한 명이 사상 최초로 대표팀에 합류한 한국계 미국인 토미 에드먼(28세)라는 점을 감안하면 고영표(32세), 김원중(30세), 박세웅(28세), 김하성(28세), 구창모(26세) 딱 다섯 명만 남게 됩니다. 대신 25세 이하 유망주(11명, 36.7%)가 잔뜩 뽑혔고, 33세 이하 베테랑(12명, 40%)들도 유례없이 대거 발탁됐습니다.
 

'골짜기 세대'와 대표팀 구성


'전성기 선수'가 실종된 대표팀 구성을 보니 추신수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는 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대표팀의 세대교체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근거는 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 KBO리그에서 뛰는 26~32세 선수들이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분 축구 붐의 영향을 받은, 이른바 '골짜기 세대'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 관련 기사 : 132억 원 계약 구창모... NC의 투자는 합리적인가
[ https://premium.sbs.co.kr/article/_Uog5fI3PA ]

2015~2016년 KBO리그 역대 최저점을 찍었던 25세 이하 선수들은 7년이 지난 지금 26~32세 전성기 구간에 '딱' 진입했습니다. 지난해 이 선수들이 KBO리그에서 만들어낸 대체 선수 대비 승리기여도(이하 WAR) 합계는 111.85였습니다. 역대 같은 나이 선수들이 찍은 WAR과 비교해 사상 최저치입니다. 현재와 같은 144경기 체제가 시작된 2015년의 절반 수준에 그쳤고, 심지어 80경기만 치렀던 프로 원년의 동 나이대 선수들에게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WAR은 경기를 더 많이 치를수록 더 높은 값이 누적되는 성적인데도 말입니다.

※ 25세~31세 선수 기준

결국, 전성기 나이 선수들의 재능 총량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강철 호는 어린 선수와 베테랑들을 더 뽑음으로써 대표팀의 역량을 더 높이려 한 셈입니다. 전성기 나이의 선수들이 부족하다고 해서 대표팀 세대교체가 지지부진하다고 쉽게 말할 수 없는 건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진짜 세대교체를 위해서는…


물론, 세대교체가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닙니다. 이번 대표팀의 주축으로 활약할 김광현(35세), 양현종(35세), 박병호(37세), 김현수(35세)는 언제 대표팀에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선수들입니다. 점점 젊은 세대에게 외면받고 있는 야구의 흥행을 위해서는 이들을 대신할 후배들이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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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premium.sbs.co.kr/article/pq0rmH8aT4 ]

※ 선수의 나이는 KBO에 등록된 공식 생년월일을 바탕으로 산출했습니다.

자료 출처 : 스탯티즈

배정훈 기자baejr@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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