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빌론’, 할리우드 시네마천국의 아찔한 매혹[MD칼럼]

2023. 2. 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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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명동의 씨네톡]

황홀하면서도 위태로운 고대 도시 '바빌론'에 비유되는 할리우드에서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1920년대 무성영화시대 당대 최고의 스타 잭 콘래드(브래드 피트). 누구나 잭과 같은 성공을 꿈꾸지만 아무나 이룰 수 없던 그 때, 화려한 데뷔를 위해 당차게 야망을 좇는 넬리 라로이(마고 로비)와 열정적인 청년 매니 토레스(디에고 칼바)가 영화 같은 삶을 꿈꾸며 할리우드에 입성한다. 그러나 1926년 유성영화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젝, 넬리, 매니의 삶은 격한 급류에 휩쓸린다. 영화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각자 고군분투하던 이들은 도도한 변화의 흐름에 맞서다 냉혹한 현실과 맞닥뜨린다.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영화는 언제나 ‘꿈과 현실’을 다룬다.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꿈을 이루기 위해 전력을 다하지만 남는 것은 씁쓸한 감정이다. ‘위플래쉬’의 앤드류(마일즈 텔러)는 최고의 드러머가 되려다 점차 광기의 스승 필레처(J.K. 시몬스)를 닮아간다. ‘라라랜드’의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은 재즈 뮤지션으로, 미아(엠마 스톤)는 배우로 각자의 삶에서 성공했지만, 그들은 사랑을 잃었다. ‘퍼스트맨’의 닐 암스트롱(라이언 고슬링)은 달에 최초로 착륙한 우주인으로 역사에 남았다. 그러나 그는 달 탐사라는 거대한 국가적 이벤트에 희생당하는 인물에 가까웠다.

‘바빌론’에서 무성영화 시절 최정상의 위치에 올랐던 잭은 사운드가 도입된 현실의 벽에 부딪혀 점차 활력을 잃어간다. 본능적이면서도 도발적인 연기로 순식간에 스타덤에 오른 넬리 역시 환락의 삶에 빠져 살다 위기에 몰린다. 가장 밑바닥부터 출발해 영화사 고위 임원까지 오른 매니는 넬리와 관련된 문제에 휘말려 벼랑 끝으로 몰린다. 셔젤 감독은 그것이 꿈이든, 사랑이든 온전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되뇌는 비관주의자에 가깝다. 그러나 그는 실패하는 인간들에 애정을 품는다. 결함을 지니고 실수를 저지르며 마지막에 후회와 탄식을 쏟아내는게 인간이니까.

이 영화는 ‘라라랜드’의 프리퀄처럼 보이기도 한다. 두 영화 모두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영화에 대한 꿈을 담고 있다. 재즈음악으로 영화를 감싸는 것도 닮았다. ‘라라랜드’에서 세바스찬과 미아는 ‘이유없는 반항’을 관람하다 갑자기 필름이 타버려 상영이 중단되자, 그리피스 천문대로 가서 영화의 한 장면을 재연한다. 그리고 부드럽게 하늘로 날아올라 왈츠를 춘다. 이들은 영화 속의 일부가 됨으로써 사랑을 확인했다. ‘바빌론’은 무성을 거쳐 유성으로 넘어오는 시기에 촬영장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변화를 박진감 넘치면서도 현란하게 담아낸다. ‘라라랜드’보다 먼저 이 영화를 구상한 셔젤 감독은 영화에 대한 낭만적인 러브레터를 화려한 필치로 써내려간다.

극 초반부, 언덕 위의 저택에서 광란의 파티가 끝난 후 잭, 넬리, 매니는 각자의 위치에서 촬영에 몰두한다. 필름 카메라가 고장나자 부리나케 전속력으로 차를 몰고 시내에 나가 카메라를 빌려온 매니 덕에 아름다운 석양을 배경으로 명장면이 탄생했다. 극의 마지막에 이르러 매니와 넬리가 춤을 출 때도 필름 카메라가 이들의 사랑을 담아낸다. 영화는 삶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이들과 함께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를 보고 누군가는 눈물을 흘린다. 가장 뜨거웠던 청춘의 한 시절에 모든 열정을 바친 영화는 아찔한 매혹으로 기억되는 시네마천국이다.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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