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친상간·가학성교로 가득한 ‘이 소설’...프랑스가 60억에 사간 이유는? [사색(史色)]
[사색-7]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가장 불순한 이야기.”
소설은 꺼림칙한 소재로 가득합니다. 동물과 거리낌 없이 수간하고, 납치한 미성년자들을 상대로 강간과 윤간을 거듭하지요. 근친상간, 소아성애, 신성모독, 가학행위에 이은 엽기적 살해는 덤입니다. 세상 모든 성도덕을 부정하는 극단의 것들이 나열돼 있죠. ‘야설’로는 부족하고, 고어물 중의 고어물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입니다. 오죽하면 활자중독자들마저 “한 장 한 장 넘기기 힘들다”고 할 정도니까요.
5년 전이었습니다. 사드 후작이 쓴 ‘소돔 120일’의 육필 원고가 프랑스 파리 경매시장에 나왔습니다. 프랑스 문화부는 그 즉시 경매 중단을 명합니다. “프랑스의 보물”이 경매를 통해 외국으로 유출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프랑스 문화부는 450만 유로, 우리 돈 약 60억원에 이 작품을 사들입니다. 야설을 국고로 사들인 셈인데, 극악의 고어물을 거액에 사들인 배경은 무엇일까요. 사드 후작과 그의 변태적 작품인 ‘소돔 120일’에 어떤 가치가 있었던 걸까요.
“10대 소녀를 납치해 오게. 우리는 그들과 밤새도록 강제로 성교를 할 거야. 때론 때리면서, 때론 맞으면서. 가능하면 소년들도 데려오면 좋겠군. 남색이 주는 황홀경도 놓칠 수 없거든.”
이들의 가학성은 ‘크레센도’(점점 강하게)로 나아갑니다. 첫 모임 11월 한달 동안은 납치한 소년·소녀들을 대상으로 수음의 단계를 밟다가, 12월부터는 본격적인 강간이 시작됩니다. 종국에는 산 채로 아이들의 가죽을 벗기고, 배변을 먹이며, 임신한 여성의 배를 가릅니다. 가학성교로는 더 이상 만족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자인 사드 후작의 삶도 자신의 작품만큼은 아니지만 성적인 방종의 극치를 달린 인물입니다. 성매매 여성과 관계를 갖다가 채찍을 휘두르고 불에 달군 쇠로 가학행위를 했습니다. 그가 귀족 여성과 결혼한지 9개월 만이었습니다. 1786년에는 독일인 미망인 로즈 켈러를 “가사 노동자가 필요하다”고 꾀어 성폭행해 전국구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1785년 그가 바스티유 감옥에 있을 때, 두루마루 종이를 모아서 변태적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숨기곤 했습니다. 당국에 소설 내용이 전해지면 다시 처벌당할 것을 우려해서였죠. 실제로 나폴레옹은 “이 변태소설의 익명작가를 당장 체포하라”고 했을 정도로 사드의 작품을 혐오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소돔 120일’을 집필하고, ‘신 쥐스틴, 미덕의 불행’(1791년), ‘쥘리에트, 악덕의 번영’(1797년) 역시 탈고합니다. 성적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을까요
당대의 악동이었던 사드 후작은 20세기 들어 점점 지지를 얻습니다. 변태적 소설로 보이는 그의 텍스트에서 철학적 영감을 도출해내면서입니다.
‘소돔 120일’은 당시에는 변태 소설로 폄훼당했지만(물론 지금도 대부분 평이 그렇습니다), 한 세기가 지난 후 철학자들이 당대의 성과 도덕에 관한 모든 기준을 무너뜨렸다는 점에 주목하기 시작합니다. 기존 소설에서는 절대 볼 수 없었던 ‘희소성’도 사드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 중에 하나였죠.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가장 자유로운 영혼”(소설가 기욤 아폴리네르)이라거나 “사랑의 상상력을 해방시켰다”는 극찬도 나왔습니다.
프랑스 정부가 60억원의 거액을 쾌척한 배경에는 이같은 문화적 조류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기존에 없던 것이라고 해도, 소돔120일처럼 윤간·고문·근친 등 엽기적인 내용으로 가득한 소설이 높은 평가를 받다니요.
이상성욕자였지만 그에겐 고립주의(isolisme)라는 철학이 있었습니다. 고립주의란 “이 세상은 모두 고립된 존재기 때문에, 타자의 극심한 고통은 나 자신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는 반면, 스스로가 경험하는 아주 미미한 쾌감은 큰 감동을 준다”는 명제였지요. 그의 작품 속 캐릭터들이 타인의 고통에 공감없이 극단적인 쾌락만 추구하는 이유였습니다.
인류 역사를 봐도, 고립주의적 해석에 힘이 실리는 사례가 많습니다. 나치가 웃는 모습으로 유대인을 학살하는 장면을 떠올려 보십시오.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에 저지른 잔혹한 모습은 또 어떻고요. 광기의 폭력에 침묵한 선진국들의 위선도 빼 놓을 수 없겠지요.
사드 작품의 놀라운 점은 페미니즘적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표작인 ‘신 쥐스틴’과 ‘쥘리에트’가 그렇습니다. 간단히 줄거리를 보겠습니다. 자매인 쥐스틴과 쥘리에트는 선과 악을 대표하는 정반대의 인물이죠. 쥐스틴은 착하고 예의 바르며, 총명한 사람이었습니다. 반면 언니인 쥘리에트는 품행이 방정맞고, 색욕에 가득한 여성이었죠.
“입으로 들어간 번개가 질을 통해 나왔다. 하늘의 불이 휩쓸고 지나간 두 갈래의 길 위로 끔찍한 빈정거림이 지나간다.”
사드 후작의 작품의 창녀들은 당대의 여성관을 완전히 전복해 버립니다. 그들은 배신이나 유혹을 당한 것도, 교활한 포주에게 속아서 악의 세계로 들어온 성관계 경험이 전무한 시골 처녀도 아니었습니다. 당당히 자신의 의지와 욕구로 창녀가 되길 원하는 존재들이었죠. ‘쥘리에트’의 대사는 새로운 여성관을 여실히 대변합니다.
“내가 창녀였다고 공개적으로 선언되었으면 좋겠어.내 몸을 파는 것을 금지하는 그 비위에 거슬리는 서약을 깼으면 해.”
포르노가 여성의 육체를 대상화한다고 반대한 입장과는 달리, 오히려 포르노 작품을 통해서 전복적인 여성상을 구현해냈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페미니스트인 안젤라 카터는 “사드적 여성”이란 이름으로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합니다.
작품에서 여주인공 사라는 자신의 쾌락을 위해 여러 남성 때로는 여성과도 잠자리를 가집니다. 자신의 파트너가 죽었는데도 심리적 충격을 받지 않는 존재로 그려지죠. 그리곤 다시 새로운 잠자리 상대를 찾아 나섭니다. 기존 문학이 그린 여성상을 거부했다는 점에서 그는 사드를 닮았습니다.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 20년 후, 대한민국 간행물윤리위원회가 ‘소돔 120일’의 번역본을 음란하다는 이유로 배포 중지와 수거 결정을 내렸습니다. 마치 평행이론처럼 말입니다. (마광수와 사드의 사유는 무신론, 반금욕주의 등 여러 분야에서 공유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문학은 백성들을 가르치고 순치시키는 도덕교과서가 되어서는 안된다. 문학이 근엄한 교사, 또는 사상가의 역할까지 짊어져야 한다면 문학적 상상력과 표현의 자율성은 질식하고 만다. 문학의 참된 목적은 지배 이데올로기로부터의 탈출이요, 창조적 일탈이다.”
ㅇ쟝-자끄 뽀베르, <살아있는 사드>, 문학세계사, 1993년
ㅇ샹탈 토마, <사드, 신화와 반신화>, 인간사랑, 1996년
ㅇ린 헌트 외, <포르노그라피의 발명>, 책세상, 1996년
ㅇ김혜영, <향유의 주체되기: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에 출현한 사드적 여성>, 국제한인문학23집, 2019년
<네줄요약>
ㅇ가학성애를 일컫는 ‘사디즘’의 주창자 사드는 소돔120일 등 변태 소설로 유명했다.
ㅇ20세기 초부터 그의 소설이 철학적으로 ‘복권’되기 시작했다. 페미니스트도 그를 주목했다.
ㅇ성에 자유로운 여성상을 제시한 점에서 사드는 고(故) 마광수와 닮았다.
ㅇ소설로도 읽지말고, 영화도 보지말자. 정신건강에 안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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