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나무 키우는 골프 개척자 ‘탱크’ 최경주

김종석 채널A 성장동력센터 부장 (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2023. 2. 4.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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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석의 인사이드 그린] 자식뻘 선수들 미국 자택 초청해 동계훈련 구슬땀… 후원사 SK텔레콤 16년 동행
최경주가 독창적으로 고안한 ‘클레이’ 연습장에서 샷 시범을 보이고 있다. [최경주재단 제공]
최경주(53·SK텔레콤)의 미국 댈러스 자택은 2023년 새해 들어 손님들로 북적인다. 한국에서 온 선수 11명, 인솔자, 코치 등을 합쳐 15명이 한 지붕 아래 머물고 있어서다. 최경주 자택은 2월 16일까지 6주 동안 진행되는 최경주재단의 골프 꿈나무 동계훈련 숙소로 쓰이고 있다.

최경주는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1시간 30분 넘게 진행된 전화 인터뷰에서 "어린 선수들이 같이 지내면서 배우는 것도 많고, 내 자식처럼 늘 지켜볼 수 있어 걱정도 덜 된다"며 "설날에는 떡국도 함께 먹으면서 명절 기분을 제대로 냈다"고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국 골프의 살아 있는 전설인 '탱크' 최경주는 2007년 자신의 이름을 딴 자선재단을 출범한 뒤 유망주 육성에도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어려운 청소년과 세계 정상을 꿈꾸는 어린 선수들에게 희망의 끈이 되고 밝은 빛이 되고 싶다"는 게 그의 소망이다.

2008년 시작한 꿈나무 캠프는 매년 중국에서 개최되다 코로나19 여파로 2020년부터 미국으로 옮겼다. 캠프 때마다 최경주는 바쁜 일정을 쪼개 자식뻘 되는 선수들을 일일이 챙기고 있다.

낮엔 고된 훈련, 밤엔 인성교육

윈터체이스골프클럽, 텍사스 골프센터 등에서 이뤄지는 훈련 스케줄은 하루해가 짧게 느껴질 만큼 빡빡하다.

"오전 6시 반에 기상해 7시 반에 식사를 합니다. 오전에는 스트레칭과 2시간 넘게 벙커샷 훈련을 해요. 오후에는 샷 연습과 체력 훈련 등에 집중하죠. 1주일에 두 번 연습 라운드를 하는데, 한 번은 실제 대회처럼 치릅니다. 그래야 긴장 속에서도 즐기는 법을 배울 수 있어요."

일과를 설명하는 최경주는 의욕이 넘쳤다. 최경주의 벙커샷은 세계 명품이라는 찬사를 듣는다. 이번 캠프에서도 주요 과목이다. 그가 독창적으로 고안했다는 클레이 샷을 통해 정확한 볼 스트라이킹 능력을 향상시키고 있다.

"클레이는 돌을 잘 빻아서 만든 흙입니다. 테니스 코트에 사용하는 레드 클레이인데 물을 주고 소금을 뿌리면 인절미처럼 약간 물컹해져요. 거기에 금을 그은 다음 공을 반복해서 치게 하면 임팩트 정확도가 올라갑니다. 전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연습장을 댈러스에 만든 겁니다(웃음)."

클레이에서는 공을 정확히 가격하지 않으면 제대로 쳐낼 수 없다. 최경주는 "이 훈련을 통해 뒤땅을 치던 아이들이 눈에 띄게 줄고 비거리까지 늘어났다. 효과 만점이다. 클레이에서 공을 원하는 대로 때릴 수 있다면 앞으로 어떤 코스 상황에서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명인열전' 마스터스가 열리는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쓰는 모래를 깔아놓은 벙커를 훈련에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일반 골프장 모래는 가벼워서 벙커샷을 할 때 클럽이 쑥 지나가 연습 효과가 떨어진다는 게 최경주의 설명. 마스터스에서 사용하는 모래는 묵직하고 저항력이 강해 스핀을 잘 먹일 수 있고 벙커샷 때 소리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샷을 할 때마다 모래를 쳐내는 소리가 나니까 재밌고 그 느낌을 기억하면 실력도 향상된다."

고된 훈련 일과를 마친 뒤 선수들은 일제히 "이제 집에 가자"고 외치며 하루를 마감한다. 최경주는 "그런 모습이 흐뭇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귀가 후 저녁에는 인성교육이 이어진다. 거실 미팅으로 그날 좋았던 일, 배운 점, 아쉬운 부분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질의응답 시간을 갖는다. 감사일기도 쓴다. 매주 화요일에는 조벽 HD행복연구소 교수의 원격 강의를 듣는다. 최경주는 "인성이 곧 실력이다. 품격, 에티켓, 인사의 중요성을 자주 얘기한다. 동료들이 힘들어하면 위로해주고 안 되는 게 있으면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라고 한다. 슬럼프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해선 확실한 비전을 가져야 한다고도 강조한다"고 말했다.

"한국 남자 골프 국제 위상 올라 뿌듯"

2008년 SK텔레콤 오픈에서 우승한 최경주. [SK텔레콤오픈 제공]
식사 준비는 주로 최경주의 부인 김현정 씨 몫이다. 최경주는 "마트에 장을 보러 가면 대형 카트 하나가 가득 찬다. 아내가 하루에 감자를 50개, 100개를 까는데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한다"고 전했다. 모든 선수를 대상으로 김치찌개, 제육볶음, 닭볶음탕 등 먹고 싶은 음식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끼니마다 누군가 1명 이상은 늘 자신이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최경주는 2남 1녀를 뒀다. 큰아들은 한국 해병대에서 군복무를 마친 뒤 재단 업무를 돕고 있다. 둘째 딸은 미국 아이비리그 코넬대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있다. 막내는 미국 골프 명문 듀크대에서 골프선수 길을 걷고 있다. 자식 농사도 잘 지었다는 평가.

최경주는 2000년 미국프로골프협회(PGA)투어에 한국 선수 최초로 진출한 필드의 개척자다. 초창기만 해도 모든 게 낯설었고 '혼밥'이 일상이었다. 하지만 최경주는 PGA투어 통산 8승을 거두며 롤모델이 됐다. '제2의 최경주'를 꿈꾸는 선수들이 늘어나면서 한국 남자 골프는 PGA투어를 호령하는 월드 클래스로 성장했다.

최경주가 부단장으로 참가한 2022년 프레지던츠컵에는 이경훈, 김시우, 임성재, 김주형 등 4명이 출전해 역대 최다 출전 기록을 세웠다. 과거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투어에서 한국 여자 선수가 초강세를 이뤘듯, 한국 남자 선수들이 PGA투어에서 전성기를 맞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최경주는 "한국 남자 골프의 국제 위상이 올라가 뿌듯하다. 20년 전만 해도 호주, 일본 선수가 많았는데 한국 선수들이 압도하게 됐다. PGA투어만 해도 한국 선수 7~8명이 뛰고 있지 않은가. 뛰어난 기량을 갖춘 젊은 후배들이 자랑스럽다. 다만 기본에 충실해야 롱런할 수 있다"고 덕담을 했다.

최경주는 선수로서도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만 50세 이상이 출전하는 PGA 챔피언스투어에 한국인 최초로 뛰어들어 2021년 퓨어 인슈어런스 챔피언십에서 정상에 섰다.

올해 목표를 2승으로 잡았다는 그는 2023년 1월 메인 스폰서인 SK텔레콤과 3년 후원 계약을 연장했다. 이로써 최경주는 SK텔레콤과 2010년 서브 스폰서로 인연을 맺은 뒤 2025년까지 16년 동안 한배를 타게 됐다. 국내외에서 이례적인 초장기 계약이다.

2009년 나이키와 결별한 후 한동안 무적(無籍) 신세였던 최경주는 2011년 SK텔레콤과 메인 스폰서 계약을 한 뒤 그해 '제5의 메이저'라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아시아 선수 최초로 우승하며 제2 전성기를 맞았다.

최경주가 한국 골프 역사를 갈아치우며 선한 영향력까지 발휘하는 데는 SK텔레콤의 존재도 큰 버팀목이 됐다. 최경주는 "(SK텔레콤에서) 안 잘린 것만 해도 중요하다(웃음). 많은 지지와 힘을 실어줬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무척 감사한 일"이라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는 또 "해마다 (남자 프로골프) SK텔레콤 오픈뿐 아니라 주니어 대회 개최를 지원하고 재단에도 매년 1억 원씩 후원해주고 있다"고 전했다.

최경주는 1997년 SK텔레콤 오픈에 처음 나선 뒤 2022년까지 20번이나 출전했다. 대회 최다 출전자이면서 최다 우승자(3회)다. 한국프로골프협회(KPGA)에 따르면 2022년으로 25회째 대회를 개최한 SK텔레콤 오픈은 KPGA 순수 주관 대회로는 최고 역사를 지녔다. 4반세기 동안 남자 골프 스타의 산실이 됐다.

최경주에 큰 버팀목 된 SK텔레콤

2021년 한국인 최초로 PGA 챔피언스투어에서 우승한 최경주. [PGA투어 트위터]
최경주는 과거 글로벌 불황 여파로 SK텔레콤 오픈 개최 여부가 불투명해지자 초청료를 받지 않으며 대회 성사에 공을 들였다. 대회 기간 재능 기부나 팬 미팅 행사, 자선 이벤트 등에도 열과 성을 다했다.

SK텔레콤은 최경주재단과 파트너십을 통해 스포츠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실천하고 있다. 2014년부터 2022년까지 9년 동안 최경주재단과 함께 'SKT-최경주 장학꿈나무' 사업을 진행했다. 이를 통해 전국 저소득층 가정 대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해 사회에 기여할 인재를 양성했다. 9년 동안 학생 약 290명이 지원을 받았다.

최경주재단은 골프 유망주 지원 사업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투어의 '대세'로 일컬어지는 박민지를 비롯해 이가영, 김서윤, 인주연 등과 KPGA투어에서 영건으로 떠오른 이재경, 김민규 등은 최경주 꿈나무 장학생 출신이다. 그동안 거쳐 간 선수만 100명이 넘는다. 박민지, 이가영 등은 프로골퍼로 성공한 뒤 최경주재단에 후원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최경주는 SK텔레콤의 후원으로 미국 뉴저지에서 미국주니어골프협회(AJGA) 골프 대회도 개최하고 있다. 이 대회는 한국 골프 유망주의 실력 향상과 미국 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한다. 2018년 이 대회 우승자인 박상하는 미국 대학에 진학해 PGA투어 입성을 노리고 있다.

오경식 SK텔레콤 스포츠마케팅 담당은 "최경주 프로가 SK텔레콤과 함께한 과정에서 보여준 골프에 대한 열정과 후배들을 위한 지원 및 노력에 감사드린다"면서 "앞으로도 최경주 프로와 함께 스포츠를 통한 ESG 가치 전파로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나가겠다"고 밝혔다.

한때 외로운 여정을 보냈던 최경주의 곁에 남다른 동반자가 있어 든든해 보인다. 그들의 동행은 더 많은 이의 큰 행복을 향해 있다. 더 멀리까지 이어지리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김종석 부장은… 

2019년부터 2021년까지 동아일보 스포츠부장을 역임한 골프 전문 기자다. 1998년부터 골프를 담당했고 농구, 야구, 테니스, 배드민턴 등 주요 종목을 두루 취재했다.

김종석 채널A 성장동력센터 부장 (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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