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타스캔들’ 살벌한 입시경쟁 담지만, 고통스럽지 않는 이유 [황진미의 TV새로고침]

한겨레 2023. 2. 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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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미의 TV 새로고침][황진미의 TV 새로고침] tvN ‘일타스캔들’
티브이엔 제공

<일타 스캔들>(티브이엔∙tvN)은 사교육 시장을 배경으로 한 로맨틱 코미디로, 시청률과 화제성이 높다. 살벌한 입시경쟁을 담고 있지만, <스카이캐슬>(2018, 제이티비시·JTBC)처럼 시청이 고통스럽지 않다.

그 이유는 첫째, 장르의 힘이다. 로맨스가 두겹인데, 전도연-정경호를 내세운 중년 로맨스와 풋풋한 청소년 로맨스가 일품이다. 조카를 딸로 키운 국가대표 선수 출신 반찬가게 사장 남행선(전도연)과 ‘1조원의 사나이’ 일타 강사 최치열(정경호)이라는 캐릭터가 탄탄하다. 여기에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전도연의 해사함과 병약미를 내세운 정경호의 매력이 강한 흡인력을 지닌다. 정경호의 연기는 특별히 언급할 만한데, 수학 강의는 극한의 전문성을 요구하지만 실물을 아는 시청자들이 워낙 많아서 어설프게 흉내 낼 수 없다. 정경호의 능숙한 재현은 그가 얼마나 노력하는 배우인지를 실감케 한다. 남해이(노윤서)를 사이에 둔 삼각관계도 쫄깃하다. 오래 사귄 모범생 ‘남사친’(남자 사람 친구)과 갑자기 나타난 비운의 운동부라니, 학원 로맨스물의 정석 아닌가. 여기에 남행선의 평생 절친 김영주(이봉련)의 우정과 최치열의 일상을 챙기는 지동희(신재하)의 브로맨스도 온기를 더한다. 이처럼 사랑과 우정이 넘치다 보니, 입시 경쟁과 자살, 시험지 유출, 쇠구슬 테러, 길고양이 학대 같은 만만치 않은 범죄가 등장함에도, 괴롭지 않게 볼 수 있다.

티브이엔 제공

둘째 이유로는 적당한 관점과 거리 덕분이다. 드라마는 학원 앞에 줄을 선 학부모들을 가로지르는 남행선의 다소 비판적인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멀찍이서 관조하는 서술자였던 남행선이 차츰 그 안으로 들어와 경험하는 흐름을 탄다. “처음엔 별로 관심 없었는데, 집착과 욕심이 생기더라. 역전승했을 때처럼 짜릿해. 승부욕이 생긴다”는 남행선의 말처럼, 드라마는 이들이 왜 이 경쟁에 매달리게 되는지 내재적 접근법으로 보여준다. 처음부터 그 세계에 완전히 몰입해 있는 사람들만 보여주거나 비판적인 외부 관찰자의 관점을 계속 고수했더라면 시청자들의 공감을 사기 어려웠을 것이다. 드라마는 영리한 접근법으로 시청자들이 거부감을 내려놓고, 주인공을 따라 몰입하게 만든다.

<일타 스캔들>은 상층부 부모들의 사교육 극성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가 아니다. 흔히 그런 드라마는 양면성을 지니는데, 상층부 부모들의 행태를 겉으론 비판하면서 속으론 부러워하는 시청자들의 심리에 영합해 사교육 경쟁을 부채질하는 효과를 낳는다. 반면 <일타 스캔들>은 자본의 원리로 굴러가는 사교육 시장을 그리면서, 오히려 그러한 질서를 거스르게 하는 변수가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춘다. 최치열이 개인과외를 하게 된 이유는, 첫째, 밥 때문이고, 둘째, 학생에 대한 마음 때문이다. 최치열은 불면증으로 큰 침대를 두고도 침낭에서 잠을 자고, 섭식장애로 남행선의 음식이 아니면 밥을 먹지 못한다. 남행선이 최치열의 진정한 의미의 ‘밥줄’을 쥐고 있는 셈인데, (영화 <올빼미>에서도 보았듯이) 본디 생체권력은 무서운 것이다. 또한 학원 강사의 노동은 철저하게 자본에 의해 조직되지만, 교육 노동의 특성상 스승-제자 관계가 작용한다. 강사도 가르치고 싶은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이 있기 마련이다. 학생 역시 부모가 의도하고 관리하는 대로 결과가 나오는 기계가 아니다. 학생도 자율성을 지닌 주체이기에, 부모가 억지로 최고반에 넣는다고 수업에 집중하지 않으며, 시험지를 빼내 준다고 해서 아무런 가책 없이 따르지도 않는다. 결국 이 학생들은 최악의 결과를 맞았다. 드라마가 자본의 원리를 거스르는 변수로 밥(생체권력)과 학생(주체성/자율성)을 꼽은 셈인데, 이는 곱씹어볼 만하다.

티브이엔 제공

그 외에도 드라마는 발달장애, 섭식장애, 은둔형 외톨이 등을 담는다. 드라마는 자폐스펙트럼장애를 지닌 사람의 반복행동이 스토킹으로 오인되는 장면을 그린다. 장애인의 입장과 그를 위협으로 느낀 서비스직 여성의 입장을 균형 있게 그리면서 “민폐인데, 왜 돌아다니게 하느냐?”는 남자친구의 혐오 발언도 덤으로 들려준다. 장애 인식 개선에 도움이 되는 장면이다. 섭식장애에 대해서도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흔히 외모 강박에 빠진 젊은 여성들의 신경증 정도로 취급되었지만, 섭식장애는 죽음에 이르는 심각한 질환이자 복잡한 사회문화적 병리가 담긴 질병이다. 다이어트 산업과 배달 음식 시장이 팽창하고, ‘먹방’과 ‘소식좌’가 유행하는 시대에, 자칫 병리적 식생활이 희화화되지는 않을지 우려가 생긴다. 청년들 사이에서 은둔형 외톨이가 증가하는 추세도 주목할 만하다. 최근 서울시는 서울에 거주하는 청년의 4.5%가 고립·은둔 청년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이들을 위한 면밀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드라마가 뽑은 알토란 같은 문제들에 대해, 우리 사회가 부디 여러개의 모범답안을 제시해주기 바란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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