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짠의 유혹’…자꾸 실패하는 다이어트, 다 이유가 있다?

김태형 2023. 2. 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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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요일, 책을 소개합니다.

"사무실에 케이크를? 그건 안 돼요. 좋지 않아요."

일터에서 케이크 파티를 할 때가 있습니다. 동료 직원의 생일을 맞아 케이크를 함께 먹으며 축하해주는 것이죠. 동시에 즐거운 간식 시간이 되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러면 안 된다고 말한 사람이 있습니다.

영국 식품기준청 의장이자 다이어트 전문가이기도 한 수잔 젭 교수입니다. 그는 지난달 19일 사견이라는 전제를 달기는 했지만, 직장에 케이크를 들고 오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수잔 젭 교수는 영국 더 타임스와 인터뷰를 한 자리에서, 비만 문제를 개인의 의지에만 맡겨서는 해결이 어렵다며 사무실 내 케이크의 위험성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우리가 모두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교육받은 사람들이라고 여기면서, 다들 잘 판단해서 결정을 내린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게 외부 환경의 영향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이죠."

그는 사무실 내 케이크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도 사무실에 케이크를 갖고 오지 않았다고 생각해 보세요. 나는 케이크를 먹을 일이 없을 거예요. 하지만 누군가가 케이크를 갖고 온다? 그러면 먹게 되거든요. 맞아요. 케이크를 먹은 사람은 나고, 내 결정이에요. 하지만 먹는 일이 없었을 환경을 굳이 어렵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죠."

더 타임스는 영국 내 과체중인 사람들(비만 포함)이 1993년 53%에서 2021년 64%로 11% 포인트나 증가했다며, 평소 비만의 위험성을 지적해 왔던 수잔 젭 교수가 사무실 내 케이크는 간접흡연만큼 위험하다는 얘기를 했다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수잔 젭 교수의 말처럼 사람은 크건 작건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습니다. 음식을 들 때도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 마이클 모스도 그와 같은 얘기를 하는 사람 가운데 한 명입니다.

미국 탐사보도 기자이자 작가인 마이클 모스는 책 <음식 중독>에서 중독의 과학에 관해 얘기합니다.

'음식에도 중독성이 있다?', 그럴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궁금증이 일게 됩니다. 중독은 일반적으로 니코틴이나 알코올, 카페인 등 특정 물질에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독이라는 말과 연관 짓기에는 음식이라는 개념이 너무 광범위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또 생각해 보면 우리는 스마트폰 중독이나 게임중독이라는 표현도 자연스럽게 사용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도 중독을 '1. 생체가 음식물이나 약물의 독성에 의하여 기능 장애를 일으키는 일. 2. 술이나 마약 따위를 지나치게 복용한 결과, 그것 없이는 견디지 못하는 병적 상태' 등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에 미뤄 보면, '음식 중독'이라는 표현도 가능해 보입니다.

마이클 모스는 책 <음식 중독>에서 중독이란 어떤 상태를 가리키는지 자세히, 또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는 '어떤 사람들이 그만두기 힘들어하는 반복적인 행동'이라는 중독의 정의도 소개하고, 2008년 예일 대학교 러드식품정책비만센터에서 공개한 '예일음식중독척도'를 예로 들기도 했습니다. 척도의 일부 기준을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 특정 음식을 먹을 때 원래 먹으려고 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 먹었다.
· 특정 음식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그냥 먹었다.
<음식 중독>, p62~63

쉽게 말해, '그만 먹어야지', 생각은 있지만 그래도 또 음식에 손이 가는 상태로 볼 수 있습니다. 마이클 모스는 이와 같은 상태에 대해, '습관이 통제를 벗어날 때 중독이 시작된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자신의 의지대로 '적당히' 먹지를 못하고, '더' 들게 되는 것일까요? 단순히 의지박약의 문제인 것일까요? 그게 꼭 그렇지 않다고 <음식 중독>은 얘기합니다.

마이클 모스는 인간이 자신의 의지만으로 음식의 종류와 양을 선택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여러 자료와 증거로 보여줍니다. 그 가운데는 인간 뇌의 작동 방식과 연계된 내용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 대부분이 단맛에 즉각적 반응을 나타내는데,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는 겁니다.

담배 연기가 뇌를 자극하는 데 10초가 걸리는 데 반해 혀 속에 들어온 설탕은 뇌를 활성화하는 데 1초의 절반이 조금 넘는 시간, 정확히는 0.6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담배보다 거의 스무 배나 빠른 속도다.
<음식 중독>, p103

인류가 살아왔던 거의 모든 시기, 설탕은 귀했습니다. 하지만 과학과 산업의 발달로 설탕을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됐고, 이제는 설탕이 흔한 식재료가 됐습니다. 대부분 나라에서 설탕은 부족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너무 많이 섭취해서 문제가 되는 시대로 들어섰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설탕 맛을 봤다고 해서 '흥분'할 필요가 없게 됐지만, 우리 몸은 여전히 설탕에 반응합니다. 바로바로 반응합니다.
아기들은 설탕을 주면 웃고 고통도 덜 느낀다. 소아과 의사들이 갓난아기 뒤꿈치를 찔러 혈액을 채취한 뒤 사탕을 주는 것도 그래서다. 설탕이 지닌 진통제 같은 힘은 청소년기까지 지속된다. 뇌는 설탕을 육체가 성장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원으로도 인식하기 때문에 단맛을 찾음으로써 얻는 보상은 단순한 즐거움 그 이상이다. 우리는 단맛을 느낄 때 생존에 필수적인 일을 한다는 깊은 생물학적 만족감을 얻는다.
<음식 중독>, p122~123

문제는 또 있습니다. 설탕에다 지방을 섞으면 자극이 더 커진다는 겁니다.
연구에 따르면 설탕과 지방이 각각 따로 작용할 때보다 결합했을 때 뇌를 더 많이 자극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가공식품 회사에서 신제품 제조법을 고안하는 식품공학자들에게서 처음 들었다. 그들은 뇌가 가장 큰 보상을 가져다주는 음식에 가장 크게 자극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음식 중독>, p123

마이클 모스는 '우리 몸에 설탕과 지방이 함께 들어오게 되면 뇌의 특정 영역이 더 격렬하게 반응한다'는 연구 결과도 소개했습니다.

그러니 설탕과 버터가 적절히 배합된, 또 여기에 소금까지 더해져 달고도 짠, 이른바 '단짠'의 맛을 내는 식품이나 과자가 많이 나오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죠. 설탕도 버터도, 소금도 귀한 시절에 맞춰져 있는 우리 몸이 달고도 짠맛을 보게 되면 즉각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개인의 의지만으로 음식의 유혹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다른 맛처럼 단짠의 맛도 우리 기억에 저장됩니다. '아는 맛이 제일 무섭다'는 말이 있는데, 마이클 모스도 이와 같은 얘기를 했습니다. 그는 진지하게 기억의 영향력에 관해 말했습니다. 책 <음식 중독>은 8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는데, 3장의 제목이 '맛은 곧 기억이다'일 정도입니다. 마이클 모스는 책에서 오리건 연구소의 행동과학자 에릭 스타이스의 얘기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스타이스의 실험실에서 나와 커피숍으로 향했다. 그는 길가에 즐비한 광고를 보며 음식에 아주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에게 눈만 돌리면 음식 광고가 보이는 이 세상이 얼마나 살기 힘든지 설명했다. "맥도날드에 늘 가는 사람은 맥도날드 간판만 보면 배가 고파집니다. 그곳에서 먹었던 음식이 생각나는 거죠. 반면 맥도날드를 잘 먹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냥 또 다른 간판일 뿐이에요.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죠. 이런 단서에 대한 반응성이 미국인들을 끊임없이 과식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음식 중독>, p149

설탕, 지방, 소금 등이 적절히 배합된 식품이 쉼 없이 나오고, '맛있었던 기억'을 계속 자극하고, 이러니 과식하지 말아야겠다는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음식 중독'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는 뜻입니다.

이게 다가 아닙니다. 인간은 다양한 음식을 먹으면서 진화했습니다. 마이클 모스는 '나뭇잎 외에 다양한 음식을 먹으면서 인간이 더 튼튼해졌기 때문에, 한 가지에 쉽게 질리는 인간의 특성은 자연선택을 통해 지속'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주의할 점은 식품 제조 기업들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고, 이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죠.

식품 기업들은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여 포만감을 느껴 그만 먹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고 또다시 먹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답을 찾아냈다. 제품에 약간의 변화를 주어 조금만 다르게 해도, 심지어 달라 보이게만 해도 더 오랫동안 먹을 수 있었다. 그들은 이 전략을 다양성(variety)이라고 불렀다.
<음식 중독>, p198

<음식 중독>은 이처럼 중독과 음식의 특성에 관해 풀어내면서, 더 많은 먹거리를 판매하기 위한 식품 기업들의 치밀한 전략을 소개합니다. 탐사보도 기자가 쓴 책답게 생생한 현장의 풍경과 꼼꼼한 자료 분석이 연이어 이어집니다.

그렇지만 4백 쪽 가까이 되는 제법 두툼한 책은 과체중이나 비만, 중독에 관해 얘기할 뿐, 몸매나 패션에 대한 언급은 사실상 없습니다. 다이어트 비법이나 성공적인 체중 감량을 위한 요령 등에 관한 얘기도 거의 하지 않습니다. 멋진 몸을 갖기 위한 음식에 관한 얘기가 아니라, 건강한 몸을 갖기 위한 음식 얘기를 하는 것이죠.

그래서 '음식 중독'에서 벗어나는 요령이나 다이어트 비법 같은 내용을 기대하고 책을 읽는다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 몸이 음식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현대 사회의 온갖 식품들이 어떻게 세상에 나오고 있는지, 우리가 '음식 중독'에 빠지지 않으려면 생활 환경을 어떻게 바꿔 나가야 하는지를 구체적이면서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데는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마이클 모스는 책에서 실용적인 조언은 하나도 하지 않은 것일까요? 그건 아닙니다. <음식 중독>은 살을 빼는 법이나 과식을 멀리하는 법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책은 아니지만, 마이클 모스는 그래도 독자들을 위해 몇 가지 도움말을 남겨놓았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운동의 중요성입니다. 다만 운동으로 살을 빼기 쉬워서가 아니라, 건강한 식습관을 형성하기 위해서 운동이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운동도 중요하다. 살을 빼기 위해서가 아니라(이것은 성공하기가 매우 어렵다.) 뇌에 엔도르핀을 분비시킴으로써 식습관을 안정시키는 내적 균형에 이르기 위해서다.
<음식 중독>, p347

금식과 관련해서는, 열량이 있는 음료수, 이를테면 탄산음료가 될 텐데요. 이를 멀리하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했습니다.
... 나쁜 식습관을 한 번에 한 가지씩만 고친다면 금식도 성공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추천하는 첫 번째 단계는 칼로리가 있는 음료를 마시지 않는 것이다. 진화론적 측면에서 인간이 아직 과일 주스를 고형식만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는 주장은 매우 타당해 보이기 때문이다.
<음식 중독>, p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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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중독
마이클 모스 지음, 연아람 옮김 / 민음사 (2023년 1월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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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kbs.co.kr/special/danuri/2022/intro.html

김태형 기자 (inblu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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