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북 위해 비위 맞추고 ‘수십억 뒷돈 거래’의혹까지...사실이라면 반국가 행위다 [핫이슈]

박정철 기자(parkjc@mk.co.kr) 2023. 2. 4.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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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연합뉴스]
검찰이 수사 중인 쌍방울그룹의 불법 대북송금 사건이 점입가경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의 불법 대북송금혐의와 관련해 자신의 연루의혹에 대해 “검찰의 신작 소설”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드러나는 김 전 회장의 진술과 물증, 정황 등에 비춰볼 때 이 대표가 ‘나 몰라라’식으로 어물쩍 눙칠 일이 아니다.

이 대표는 그동안 김성태 전 회장에 대해 “알지 못한다”며 “쌍방울과의 인연은 내복 하나 사 입은 것이 전부”라고 했다.

그러다 KBS에 출연해 “누군가 술자리에서 전화를 바꿔줬다는 얘기가 있데 기억이 안난다”고 슬쩍 말을 바꿨다.

하지만 이같은 이 대표의 주장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당장 김 전 회장이 검찰 조사에서 이 대표와 통화했다고 밝힌 횟수만 최소 4차례다.

이 대표와 김 전 회장의 첫번째 통화는 2019년1월 중국 선양에서 열린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 평화위원회(조선아태위)와 쌍방울간 경제협력 협약식에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휴대폰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당시 북측 송명철 조선아태위 부실장은 북한 스마트팜 개선사업명목으로 500만달러를 보내기로 한 경기도가 도 의회 반대로 예산을 마련하지 못하자, 이 전 부지사에게 “무슨 낯으로 왔냐”며 호통을 쳤다고 한다.

이후 김 전회장이 북측 비위를 맞추기 위해 주선한 식사자리에서 이 대표가 이 전 부지사 휴대폰을 통해 김 전 회장에게 “고맙다”고 했다는 것이다.

두번째 통화는 2019년7월 필리핀 마니라에서 김 전 회장이 북한 국가보위성 소속 리호남 공작원을 만나 이 대표의 방북비용 ‘300만달러 대납’을 논의한 전후로 이뤄졌다고 한다.

당시에도 이 대표는 이 전 부지사 휴대전화를 통해 김 전 회장에게 “행사에 못가서 미안하다”고 했다는 것이다.

세 번째 통화는 2019년12월 쌍방울 비비안 인수 기념 술자리에서 이 대표 변호사비 대납의혹 당사자인 이모 변호사의 휴대전화를 통해 이뤄졌다고 한다.

네번째 통화는 대선을 앞둔 2022년1월 변호사비 대납의혹이 불거진 상황에서 이 대표가 “쌍방울이 난감하게 됐다”고 하자 김 전회장이 “사실이 아닌데 뭐가 난리냐”고 했다는 것이다.

통화가 이뤄진 시점과 내용이 성세하고 구체적이어서 김 전 회장이 일방적으로 꾸며낸 것으로 보기 힘들다.

이 대표가 불법대북송금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됐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물증도 속속 공개되고 있다.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시절인 2019년 방북을 위해 북측에 전달한 문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이 전 부지사가 북한 김영철 조선아태위 위원장에게 보낸 공문에는 식량협력 사업 등을 거론하며 이 대표의 방북초청을 요청하는 내용이 담겼고 경기도지사 직인까지 찍혀 있다.

또 김 전 회장이 이 대표의 방북경비 명목으로 북한에 300만 달러를 전달한 뒤 받은 3~4장의 수령증(령수증)에는 송명철 조선아태위 부실장의 이름이 적힌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또 지난해 8월 서울 여의도 식당에서 이 전 부지사가 이 대표와 전화하며, 검찰 수사대응 방안을 논의했다는 방모 쌍방울 부회장(수감 중)의 진술도 확보했다고 한다.

당시 이 전 부지사는 이 대표에게 “(대북송금 비용 중) 경기도가 직접 준 건 없고, 쌍방울이 대신 준 거 알고 계시지 않나.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표가 대선을 앞두고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강화하기 위해 북한과 불법적인 뒷돈거래를 한 것이 사실이라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이 대표가 연루된 대장동 개발특혜의혹, 성남 FC후원금 의혹 등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중대한 국기 문란이자 반국가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당시 북한에 건넨 수십억원의 뒷돈이 지난 몇년간 김정은이 우리를 향해 발사한 각종 탄도미사일에 사용됐을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민의힘이 “적과 통모해 대한민국을 위태롭게 한 이재명-쌍방울 대북불법송금 사건의 전모를 끝까지 파헤쳐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런데도 이 대표측과 민주당은 “아무 말 대잔치” “허무맹랑한 주장” 운운하면서 강성 지지층을 동원해 ‘이 대표 방탄’을 위한 장외투쟁에 나서고 있으니 한심할 노릇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에 대해 ‘이 대표가 독자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응답이 53%로 국민 절반을 넘었다.

중도층에선 56%가 민주당과 함께 대응하는 것을 반대했다.

라르스 스벤젠은 ‘거짓말의 철학’에서 “리처드 닉슨의 워터게이트 스캔들이 잘 보여주듯, 대중은 국가 이미지 재창조를 노리는 거짓말쟁이보다는 무능이나 부패, 범법행위를 은폐하려는 거짓말쟁이에 훨씬 엄격하다”고 했다.

이제라도 이 대표와 민주당은 국민들의 의구심을 시원하게 해소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소명에 나서야 한다.

더 이상 집단적 세 과시로 검찰을 압박하고 의혹들을 물타기할 게 아니라, 진실 규명에 협조하고 잘못과 허물이 있으면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지금처럼 ‘소설’인양 묵살하고 넘어가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다.

박정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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