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한방울로 미국을 구원할 뻔한 홈즈, 그 사기극의 시작과 끝···‘드롭아웃’[오마주]

임지선 기자 2023. 2. 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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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롭아웃>.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오마주’는 주말에 볼 만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를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 찾아옵니다.

디즈니플러스 <드롭아웃>은 익히 알려진 내용입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최대 사기극 ‘테라노스’ 이야기입니다. 1984년생 엘리자베스 홈즈가 겨우 스무살의 나이에 미국 스탠퍼드대를 중퇴하고 의료 스타트업 테라노스를 창업하고, 피 한방울로 200개 넘는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키트를 개발해 10억 달러(1조 2400억원 가량)의 투자금을 모았다는 내용이지요. 홈즈는 미국 역사상 가장 젊은 자수성가형 부자로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키트로 진단할 수 있는 질병이 16개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정확하지 않아 환자에게 오진을 했다는 월스트리트 저널 기자의 탐사 보도로 홈즈는 나락에 떨어집니다. 세상을 뒤집을 것 같았던 테라노스는 공중분해됐고, 홈즈는 미국 법정에 섰습니다.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더 드라마 같습니다.

홈즈는 처음부터 거짓말을 한 걸까요.

<드롭아웃>에서 스티브 잡스처럼 억만장자가 되길 꿈꿨던 홈즈는 스티브 잡스를 따라 검은색 옷만 입습니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드롭아웃>은 홈즈의 어린 시절부터 살핍니다. 영화의 시작은 친구들의 따가운 눈총에도 끝까지 달리기 경주를 마무리하는 어떻게 보면 ‘마이웨이’ 스타일의 10대 홈즈를 보여줍니다. 고지식한 그녀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왕따’였습니다. 집안 형편은 어려웠지만 억만장자가 되길 꿈꿉니다. 영리했던 그녀는 스탠퍼드대에 진학하자마자 신입생이 들어가기 어려운 대학원생 연구실에 들어갑니다. 보통의 신입생이 아니라 빨리 창업을 해서 돈을 벌고 싶어했죠. 그녀는 피 한방울로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검사 키트 아이디어로 회사를 차립니다.

홈즈가 가장 좋아했다는 사무실은 그녀와 비전을 공유한 화학자와 엔지니어들의 열정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도, 주사바늘 공포증이 있는 사람들도 병원을 가지 않아도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며 꿈과 희망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미국은 의료비가 어마어마하게 비싼 나라로 유명합니다. 비싼 의료비로 병원을 가지 못하는 사람이 수두룩 하죠. 홈즈는 이제 병원에 가지 않아도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고, 자신을 미국을 구할 영웅처럼 묘사합니다. ‘종교 지도자’처럼 확신에 찬 그의 말에 미국의 유력 인사들이 투자 합니다.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아는 사람들이 홈즈를 응원합니다. 드라마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잠시 비춥니다. 바이든은 부통령 시절 테라노스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홈즈는 미국 사회에서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왜 몰랐을까’ 싶지만 테라노스 사건을 돌이켜보면 이 사건에는 실리콘밸리의 허상은 물론, 자본에 휘둘리는 미국 의료산업의 그림자가 깔려 있습니다. 고작 50달러로 무슨 병인지 알 수 있다고 하니까요.

꿈은 부풀어가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진단 키트는 완벽히 개발되지 않았는데 그녀는 열심히 세일즈를 합니다. 사람들에게 실제 사용되는 의료기기이기에 완성되지 않은 제품을 팔 수 없다며 반발하는 직원들에게 ‘직진’을 명합니다. 그녀는 목표 지향적이었으니까요. 꿈과 희망을 함께 한 동료가 회사를 나가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도 그녀는 5초만 숨을 돌리고 또 ‘직진’을 명합니다. 희망찬 비전과 허황된 야망은 어쩌면 한끝 차이인지도 모릅니다.

미국의 대형 소매 약국 체인인 월그린이 테라노스에 투자하는 과정을 묘사한 회차도 흥미진진합니다. 홈즈는 진단키트를 개발한 실험실을 보여달라는 월그린의 요구를 계속 빙빙 돌리며 들어주지 않다가 월그린이 투자를 할 수밖에 없도록 유도합니다. 꿈쩍않던 월그린도 홈즈의 명석한 두뇌와 현란한 말솜씨에 흔들립니다.

<드롭아웃>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드롭아웃>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홈즈를 무너뜨린 월스트리트 저널의 보도가 나오기까지, 내부 제보자들의 활약도 드라마의 몰입을 더합니다. 조지 슐츠 전 장관의 ‘금수저’ 손자와 아시아계 ‘흙수저’ 청년의 고뇌어린 결단은 진실을 드러내는 데 일조합니다.

홈즈를 연기한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이 드라마로 에미상과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드라마는 그녀의 얼굴을 클로즈업 할 때가 많습니다. 푸른색의 커다란 홍채, 빨간 립스틱만 짙게 바른 새하얀 얼굴은 그녀의 비전과 야망 그리고 불안정한 심리를 그대로 드러냅니다. 어맨다 사이프리드는 ‘그때 홈즈는 정말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홈즈에 빠져 들게 만듭니다. 거의 실화 그대로, 이름도 실명을 그대로 사용했음에도 <드롭아웃>은 극에 빠져들기에 충분한 요소를 갖췄습니다. 총 8부작 각 50여분인 <드롭아웃>은 디즈니플러스에서 볼 수 있습니다.

메소드 지수 : 어맨다 사이프리드의 연기를 보면서 나도 홈즈가 되어가는 듯한 기분 ★★★★

‘헉’ 지수 : 헉. 어떻게 이런 사기극이 실화일까 신기함 ★★★★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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