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타게 車 쫓는 푸들, '장난'친 거라는 보호자

남형도 기자 2023. 2. 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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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남부경찰서, 차량 CCTV 뒤져가며 이틀만에 신속하게 찾아, 보호자와 푸들 함께 있는 것 확인…보호자 "차 안 타서 장난쳤다, 강아지 없으면 못 산다"고 진술, '유기 시도'에 대한 처벌 조항은 없어 사각지대, 전문가 "옆집 강아지 없어졌는지 살피는 시민 의식 필요"
작은 몸으로 쫓아간다. 주인이 오른 차를 보면서. 다급하고 당황한 몸짓이다. 날 버리지 말라고, 추위에 내던지지 말라고, 차도에 두지 말라고, 온몸으로 외치는듯 했다./사진=네이버 온라인 카페 '디젤매니아'

지난해 12월 3일 오후 4시, 경기 남양주 체육문화센터 주차장. 한 차량에서 푸들 강아지가 바닥에 내려졌다. 보호자는 차문을 닫았다. 주차장에서 운전 연습을 하던 목격자가 그걸 봤다. '강아지 위험한데…주차만 다시하려나' 하고 지켜봤단다. 그런데 그 차량이 갑자기 주차장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노란 패딩을 입은 작은 푸들은 다급히 차량을 쫓아갔다. 목격자는 보호자가 강아지를 버린다고 생각했다. 뒤를 쫓아가며 사진 찍었다. 이후 운전자는 푸들을 다시 태워 홀연히 사라졌다.

애잔한 푸들 뒷모습에 공분과 우려가 섞여 나왔다. "나중에 또 버리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많았다. "경기도 포천서 이미 버려진 것 같다"는 확인되지 않은 주장도 나왔다. 동물보호단체 '유엄빠'가 푸들 보호자를 경찰에 고발했다. 뭣보다 강아지의 안위를 확인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

남양주 남부경찰서, CCTV 뒤져 푸들 안위 확인…"강아지가 차 안 타서 장난쳤다"고 진술
2018년 1월 8일, 강원 홍천군유기견보호소에서 주인 잃은 강아지들이 겨울을 보내고 있다./사진=뉴스1
수사는 남양주 남부경찰서 수사2팀이 맡았다. 많은 반려인이 주목하는 사건이라 신경 썼단다.

푸들 보호자가 누군지 찾아나섰다. 담당 형사들이 인근 차량 CCTV를 싹 뒤지고, 통신 수사를 병행했다. 덕분에 이틀만에 신속하게 푸들 보호자를 특정했다. 허재영 남양주 남부경찰서 수사2팀 팀장(경감)"강아지를 딴데 유기했을 가능성이 있어서, 빠르게 현장에 갔다"고 했다.

푸들은 무사히 집안에 있었다. 경찰이 보호자에게 "왜 그랬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보호자는 "강아지가 오줌이 마려운지 창문을 긁어서, 쉬를 하게 하고 가려 했다" "그런데 강아지가 차를 안 타서, 가는 시늉을 하며 장난친 것"이라고 경찰에 진술했단다.

경찰이 다시 보호자에게 솔직히 말해달라고 했다. "혹시 강아지 키우시는 게 어려워 그러시는 거면, 유기하려 하지 말고 동물보호단체로 인계하겠다"고. 그러자 보호자는 "강아지 없으면 못 산다"고 했단다. 그것도 미심쩍어, 다다음날 경찰서로 오라 해서 추가 조사도 했다. 수사2팀 팀장은 "고의가 전혀 없다며 죄송하다고 하더라"라며 "다음부터 절대 그러시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했다.

아울러 푸들이 목줄을 착용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도, 수사2팀은 남양주시청에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행정조치 요청을 했다. 허 팀장은 "보호자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그랬다"고 했다.

'혐의 없음'으로 종결할 수밖에…'유기 미수' 法이 없다
/사진=팅커벨프로젝트
단순 오해였다며 끝내기에 찜찜한 건, 그게 '유기 시도'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다.

하지만 문제는 경찰이 '유기 시도'였단 걸 어떻게든 밝히더라도, 이를 처벌할 방법도 없단 거다. 관련법이 전혀 없어서다. 허 팀장도 "유기 미수에 대한 법률 조항이 없다"고 했다.

동물보호법 제8조 제4항'소유자 등은 동물을 유기하여서는 아니 된다'로 명시돼 있다. 이를 어기면 3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게 돼 있다. 하지만 '유기를 시도하다 미수에 그친 행위'에 대해선 관련 법조항이 전혀 없다. 실제 유기하려 했다가 걸려도, 잠깐 놓아준 거라고 다시 데려가면 그만이란 얘기다.

남양주 푸들 사건도, 보호자가 푸들을 차에 다시 태웠고, 집에 있는 걸 확인했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다. 어쨌든 유기한 건 아니어서다.

전문가는 '유기 미수'에 대한 법 마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성호 한국성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버리면 안 된단 걸 아니까 다시 차에 태우고 발뺌하는 것일 수 있다""유기에 대한 범위를 넓혀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다행이다, 큰일날뻔 했네'라고 넘어갈 게 아니라, 동물보호법도 진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응답자 99% "남양주 푸들 유기 시도한 정황 있다" 공분…전문가 "버리면 누군가 본다, 신고하는 의식 중요"
기자의 SNS에서, 독자 9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유기 시도 정황이 있어보인다'는 응답이 99%로, 압도적으로 많았다./사진=남형도 기자
남양주 푸들 유기 걱정 사건은 이리 끝났다. 우려가 남았다. 유기하려 한 것 같은데 결국 처벌하지 못했단 것, 보호자가 앞으로 과연 잘 키울까하는 것, 그렇지만 향후 확인할 길은 없을 거란 것.

실제 기자가 독자 126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선, 응답자 99%(1259명)'유기 시도 정황이 있어보인다'고 답했다. 압도적인 답변이었다.

오은지씨"뛰어 놀고 싶어하면, 공원에서 목줄을 하고 산책하는 게 합법적이고 상식적인 행동 아니냐""저걸 뛰어논다고 생각하는 게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노수미씨 "어느 견주가, 강아지가 차도에서 뛰어놀게 두느냐"고 비판했다. 최윤지씨"사람으로 바꿔보자. 애가 뛰고 싶어한다고, 부모가 차에서 내리게 해 뛰어오라고 하느냐. 너무 화가 난다"고 했다.

아쉽지만, 이번 일의 의미도 남았다. 목격하여 알린 사람, 개의 안위를 확인하기 위해 한겨울에 찾아다닌 사람, 그걸 보고 경찰에 고발한 동물보호단체, 수사해 푸들 안위를 확인한 경찰. 이들 모두가 연대해 '유기하는 건 처벌 받는 명백한 죄(罪)'란 걸 다시금 화두로 크게 띄웠다.

버리는 걸 감시하고, 이를 신고하는 시민 의식이 중요하단 것도 재차 확인됐다. 박민희 유엄빠 대표"이렇게 버리면 진짜 누군가는 본다, 경각심을 주고 싶다"고 했다.

김성호 교수가 들려준 얘긴 이랬다. 뉴욕 맨하탄에서 사는 사람이 매일 강아지와 산책했다. 보호자가 9·11 테러로 숨진 뒤, 이웃이 '강아지가 혼자 있을 것 같다'며 신고했다. 경찰과 동물보호단체가 문을 따고 들어가 구조했다.

김 교수는 "가령 옆집에 강아지가 있었는데, 어느 날 없어졌다면 신고 대상이 돼야 한다. 그런 사회로 바뀌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유기하면 잡힌단 게 강력해지면, 유기동물이 많이 줄어들 거다"라고 했다.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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