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하다면 왜 수도권에 원전·방폐장을 못 짓나

김해창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 2023. 2. 4.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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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창 교수의 원전 정치경제학<3>
“수명연장 대신 수도권에 원전·방폐장을”

윤석열 정부가 ‘원전 최강국’을 내세우며 고리2~4호기 등 노후원전의 수명 연장과 원전입지 지역에 고준위 방폐물 임시 건식저장시설 추진을 강행하고 있는 가운데 지역 반발이 거세게 일고 있다. 원전 입지 주민 가운데는 고통 분담 차원에서 수도권도 원전단지 또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처분장 건설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수도권은 왜 지금까지 원전 시설이 없을까?

상업운전에 들어간 신한울원전 1호기(왼쪽)와 건설 중인 2호기 전경. 한수원 제공


우선 핵발전소의 입지 조건은 크게 원자로를 냉각시킬 수 있는 냉각수를 공급할 수 있는 강이나 바다가 가까이 있어야 하고, 주변에 인구가 적은 곳이 기본이다. 세계적으로 ‘원자로 입지 심사 지침’은 ‘혹 일어날 지도 모르는 최악의 사고(중대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대도시 인근은 피하도록 하고 있다. 미국은 원전 건설이 가능한 곳을 ‘저인구지대(Low Population Zone)’라고 법제화하고 피난계획 수립을 전제조건으로 하고 있다. 인구밀도 제곱마일당 500명 이상이면서 인구 2만5000명을 초과하는 인구중심지가 원자로에서 저인구지대 외곽경계까지의 거리 3/4 내부에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뉴욕 외곽 롱아일랜드지역에 1984년 건설된 쇼어햄(Shoreham)원전은 지역 카운티의회에서 ‘원전사고시 주민 전원이 안전하게 피난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남에 따라 10년에 걸쳐 60억 달러를 투자한 원전회사가 1989년 단돈 1달러에 원전을 주정부에 매각한 한 뒤 폐로절차에 들어간 사례도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1970·80년대 권위주의적 정부시대에 지금 노후 원전의 건설허가가 났고, 지역 주민의 입장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오로지 냉각수 공급이나 부지 여건 등만 보고 지어졌으며, 당시 세계적으로 원전의 위험성을 모를 때여서 대체로 방사선 비상계획구역도 5~10km에 머물렀다. 즉 고리 원전 반경 5km이내는 기장군 주민 약 5만 명까지만 해당하지만 지금의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에는 반경 30km에 약 320만 부산시민이 똑같이 위험지역에 들어간다. 그럼에도 정부와 한수원은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무시하고 지역에 원전을 증설하거나 수명을 연장해 핵단지로 만들고 있다.

고리원전이 있는 시민은 “그렇게 원전이 안전하다고 한다면 청와대나 국회의사당 인근이나 수도권에 건설하라”고 말한다. 실제로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 핵발전소를 짓는 것은 ‘대도시 인구 밀집지역은 피해야 하는’ 원전 입지 선정 기준에 부합하지 않음을 알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대도시 인구 밀집지역 회피 원칙’이 수도권을 제외한 다른 지방 대도시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라 씁쓸하다.

김종신 전 한수원 사장. 국제신문DB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다. 고리1호기 정전사고 은폐사건으로 지역 민심이 들끓고 있던 2012년 4월 5일 부산시청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김종신 당시 한수원 사장은 “수도권은 인구밀집 지역이어서 원전 입지로 적합하지 않다”는 말을 내뱉었다. 다음 날 부산일보가 ‘부산 울산시민 무시한 한수원 사장의 망언’이란 사설을 내놓았다.

‘한수원 김종신 사장이 수도권은 인구밀집 지역이라서 원전 조성이 곤란하다는 망언을 했다. 원전 운영을 책임지는 공기업 수장이라는 사람이 이 같은 상식 밖의 발언을 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는 원전이 입지하기 위해서는 튼튼한 지형, 풍부한 냉각수 확보와 같은 조건이 필요하다면서, 기본적으로 수도권에는 인구가 많아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후쿠시마사고 전까지 프랑스가 58기, 독일이 17기의 원전을 내륙에 지었다. 심지어 한수원 관계자마저 한강에도 원전을 지을 수 있다는 말을 했을 정도다. 이런 이유로 가장 많은 전력을 사용하는 수도권이 원전 위험성을 함께 부담해야 한다는 지역의 불만은 진작부터 있어 왔다. 한수원의 인식은 정부와도 궤를 같이한다. 정부는 후쿠시마사고 1주기를 맞아 원전 1기도 없는 서울·경기지역에만 17기의 자동방사선감시기를 추가 설치키로 했다. 하지만 정작 오는 2025년까지 원전 12기가 들어서 대규모 핵 밀집단지가 될 부산과 울산 경남에는 모두 8기를 증설하겠다고 했다.

정부와 한수원의 인식이 이렇게 지역을 차별하는 것이라면 더 강력한 저항이 일어날 것이다. 당장 고리원전 1호기를 폐쇄하라. 그 다음에는 신고리 5, 6, 7, 8호기 증설 계획 역시 철회해야 마땅하다. “기왕 지어놓은 거 한 기 더 짓자”라는 편법에 시민들은 더 이상 속지 않는다. 차라리 정부 청사 인근에 지으라. 그렇다면 원전 안전성을 신뢰할 수 있을 것이란 게 지역 여론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김 사장이 기자회견에서 무심결에 내뱉었던 이 말 속에 원전 문제의 본질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부와 한수원이 우리나라 원전의 안전성을 그토록 내세우면서도 수도권에는 원전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결국 그들도 원전의 안전에 대해 신뢰하지는 않는다는 반증 아닐까? 결국 원전 입지 문제는 에너지 정의의 문제이고, 지방분권의 문제인 것이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카카오스토리’에 칼럼을 통해 ‘차라리 서울에 핵폐기물을 보관하라’(2019년 1월 13일, https://story.kakao.com/_4H9lB4/fV19AuXxkL0)고 주장했다. 그 핵심요지는 다음과 같다.

강창순 전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 국제신문DB


‘2004년 1월, 당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학과장이던 강창순 교수는 황우석 교수 등 서울대 교수 7명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들은 서울대 관악캠퍼스 지하에 핵폐기장을 유치하자고 주장했다. 훗날 원자력안전위원회 초대 위원장이 된 강창순 교수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순수한 학자적 양심과 애국심에서 드리는 건의”라며 울먹이기도 했다. 서울대 교수 63명 이름으로 발표된 이날 건의문에서 이들은 “주민 안전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과학적 확신을 바탕으로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이고자 했다며 심경을 밝혔다. 기자회견 이후 관악구 주민이 핵폐기장 건설 반대 입장을 발표하고, 서울대 대학 본부나 관악구가 핵폐기장 유치 신청을 하지 않음에 따라 이날 기자회견은 한차례 소동으로 끝나버렸다. 당시는 부안 핵폐기장 문제로 전국이 떠들썩하던 때라 원자핵공학과 교수들을 중심으로 핵폐기장의 안전성을 강조하기 위해 일종의 퍼포먼스를 한 것 아닌지 추측해 볼 따름이다.

당시 그들의 주장처럼 정말 안전하게 핵폐기물을 관리할 방안이 있었다면, 서울대가 있는 관악산이든 국회가 있는 여의도이든 장소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 사이 핵폐기물 저장을 둘러싼 과학적 논쟁은 더욱 어렵게 되었다. 많은 나라에서 연구를 하면 할수록 과거에 발견되지 않았던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핵폐기물을 핵발전소가 있는 5개 지역 주민의 책임으로만 떠넘기는 것은 너무나 가혹하다. 이 책임은 1차적으로 그동안 핵폐기물 대책과 기술을 마련하지 못한 정부와 핵산업계의 탓이 크다. 그 과정에서 지금도 대책 없이 핵폐기물을 양산하는 핵발전소를 어찌할지 한 번쯤 생각해봤으면 한다. 핵발전을 사랑하는 이들의 주장처럼 안전에 문제가 없다면 그들이 더 적극적으로 해결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서울에 핵폐기장을 유치하는 것을 포함해서 말이다.’

그런데 최근 인터넷에서 수도권에 원전 건설을 제안하는 칼럼을 보았다. 권효재 COR Energy Insight 페이스북 지식그룹 대표의 ‘수도권 원전단지 건설 서둘러야’(2023년 1월 16일, 이투뉴스)라는 칼럼이 그것이다. 권 대표는 ‘석유가 나지 않고, 인구 대비 국토면적이 좁아 재생에너지에도 크게 기대할 것이 없는 우리의 현실을 감안하면, 신뢰할 만한 에너지 공급원으로 원전을 빼 놓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원전주의자이다. 그의 칼럼의 요지는 이렇다.

‘총 18개의 원전단지에 소재한 56기의 원자로로 소비 전력량의 70%를 감당하는 프랑스의 해안가 원전단지는 4곳에 불과하며 원전은 전국에 고루 있다. 수도 파리의 식수원인 센강 상류에 있는 원전도 파리 시민은 별 불만이 없다. 프랑스 노후 원전보다 국내 신규 원전에 더 앞선 기술과 안전 규정을 적용할 것이므로 우리나라도 원전을 동해안에 건설해야 한다는 통념을 넘어 수도권에 속히 건설할 필요가 있다. 만약 수도권에 1.4GW 한국형 원전 6기로 구성된 8.4GW 규모의 원전단지 두 곳을 10년내 완성해 16.8 GW의 청정 발전원을 확보한다면 에너지 안보 강화, 전기요금 인상 억제, 송전망 건설 갈등, 청정수소 공급 등 많은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

혹자는 인구밀집 지역인 수도권에 대규모 원전단지를 건설하자는 건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 10기의 원전이 모여 있는 고리 원전단지가 부산과 울산 중심지에서 각각 20km 떨어져 있고, 국가산단과 신도시 대규모 아파트 단지까지는 각각 10km 떨어져 있음을 고려하면, 수도권 대규모 원전단지가 안전상 위험하다고 불안할 필요가 있을까? 화력발전소와 송전망이 있는 서해안 지역에 건설해도 될 것이며, 반도체 클러스터 인근 남한강 변에 원전단지를 건설해도 될 것이다. 한 단지에 6기의 원전을 집중 건설한다면 공기 단축, 원가 절감, 주민 설득 등도 집중해서 진행할 수 있으니 대규모 단지 건설이 오히려 더 현실적인 방안일 수 있다. 열병합 원전단지라면 서울의 한강 하류 지역도 충분히 고려할 만하다. 사용후연료에 대해서는 심층 영구 폐기장이 필요하나, 해외 사례를 보더라도 입지 선정에서 준공까지 30년 이상이 소요된 점을 고려해 수도권 원전단지 소내 저장과 부지 인근 맥스터 활용을 전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값싸고 안정적인 전기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보는, 한국의 에너지 전환과 ‘넷제로’ 달성의 키를 쥐고 있는 서울과 수도권 2500만 시민의 용단을 촉구한다.’

김 대표는 원전의 안전성을 확신하면서 이러한 제안을 하고 있다. 원전의 안전성을 자신하기에 수도권에 원전이나 고준위 방폐장 건설도 괜찮다는 것이다. 그나마 원전 입지 지역 주민 입장에서 약간의 위로가 될지 모르겠다.

문제는 정작 핵발전소가 입지한 지자체 단체장에게 있다. 여당인 박형준 부산시장은 윤석열 정부의 ‘원전 폭주 정책’에 팔짱만 끼고 있다. 부산시의 원자력안전 조례를 보면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과 원전 추가 건설을 금지하고 있고, 시장은 원자력시설의 설계 변경과 해체,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의 건설·운영 허가 관련 시민안전을 위해 중앙행정기관에 의견을 건의·요청하도록 명시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박 시장은 어떤 의견도 내놓지 않고 있다. 적어도 시장이라면 지역주권 차원에서 고리2~4호기의 수명 연장이나 고리원전 내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임시 건식저장시설과 같은 임시방편을 허용할 수 없다. 충분한 정보 공개 및 찬반 논의를 거쳐 방사선비상계획구역인 원전반경 30km 주민의 의사를 묻는 주민투표를 해야 한다는 정도의 목소리는 내야 하지 않을까?

탈핵부산시민연대가 지난해 10월 20일 기자회견을 열고 박 시장과 안성민 시의회 의장에게 질의서를 전달했다. 이날 시민연대는 ▷시가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에 사용후핵연료를 분산 저장하는 등 고통을 분담할 것을 건의할 의향이 있는지 ▷고리원전 부지 내 임시저장시설 건설에 대한 찬반 여부 ▷ 노후 원전인 고리2호기의 수명 연장에 대한 찬반 여부를 답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묵묵부답이다.

김기현 의원이 부산을 방문해 기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국제신문DB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가 지난달 26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 공청회를 시작으로 특별법 심사에 본격 착수한 가운데 여당 내에서도 찬반을 두고 엇갈린 목소리가 나온다. ‘원전 부지 내 폐기물 저장시설 영구화’에 대한 우려가 여전한 가운데 당 내 이견이 나오면서 지역의 혼란을 더욱 키우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민의힘 유력 당권주자인 김기현 의원은 지난달 27일 부산을 방문해 고준위 특별법에 대해 “주민 수용성이 가장 중요하다”며 “대표가 되면 반드시 저지하겠다”고 공언했다(국제신문, 2023년 1월 29일).

원전이 그렇게 안전하다면 부산 고리, 경주 월성, 전남 영광, 경북 울진과 마찬가지로 수도권에도 똑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정말 원전의 안전성과 경제성을 확신한다면 전국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이란 편법이 아니라 수도권에 신규 원전이나 방폐장 건설계획을 내놓고 국민 설득에 나서는 것이 ‘원전 최강국’을 내건 윤석열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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