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가 두 배 넘는 미분양 '10만설'… 건설업계 "정부가 사달라"
[편집자주]슬금슬금 밀려오는 '미분양 10만설'이 시장과 업계를 공포로 밀어넣고 있다. 연초 윤석열 대통령이 주택건설업체의 연쇄 도산과 금융권으로 리스크 전이를 우려해, 정부가 공공매입에 나서도록 지시하며 업계의 기대감을 키웠다. 하지만 국토교통부 산하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서울의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를 고가 매입해 예산 낭비를 했다는 논란이 제기되며 급제동이 걸렸다. 국토부는 미분양 주택의 공공 매입가 기준을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더해 정부가 나서서 미분양 주택을 떠안아야 하는 위험 단계가 아니라는 입장마저 내놓아 업계는 당혹감에 빠졌다.
(1) 원가 두 배 넘는 미분양 '10만설'… 건설업계 "정부가 사달라"
(2) [르포] 미분양 고가 매각 논란 '칸타빌 수유팰리스' 가보니
(3) [르포] 청약 '0.3대 1' 평촌 센텀퍼스트, 시세보다 1.6억 비싸
지난해 12월 기준 누적 전국 미분양 주택 수가 2012년 12월(7만5000가구) 이후 최고치인 6만8000가구로 집계됐다. 2022년 4분기에만 62%(2만6000가구)가 급증하면서 올 연말까지 10만가구의 미분양이 쌓일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미분양 물량은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에 이어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2009년 3월 16만6000여가구로 정점을 찍은 이후 2010년부터는 10만가구 아래로 떨어졌다.
주택시장 침체는 중소·중견 건설업체 도산과 금융권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정부가 나서서 미분양 주택을 매입해야 한다는 건설업계의 요청이 거세지고 있다. 2007~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발생한 저축은행 부실사태가 일반 국민의 재산권 피해로 확산됐던 점도 선제 대응의 필요성이 요구되는 대목이란 게 건설업계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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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관계자는 "정부 기준에 따라 객관적인 매입 금액을 결정했다"면서 "일각에서 시행사가 할인분양하던 가격보다 비싸게 샀다는 논란이 있는데 공공임대 용도로 매입한 소형 면적은 애초에 할인 대상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LH가 매입한 아파트는 서울 강북구 수유동의 '칸타빌 수유팰리스'로 코스닥 상장 건설업체인 대원이 시공하고 아시아신탁이 신탁을 맡아 지난해 후분양했다. 당시 중도금 대출이 불가한 9억원 이상 분양가로 216가구 가운데 162가구(2022년 12월31일 기준)가 미분양됐다.
15% 할인 분양을 실시했지만 미분양이 지속돼 LH가 총 79억5000만원을 들여 원룸(19㎡·20㎡·24㎡) 36가구를 매입했다. 가구당 매입가는 평균 2억2000만원으로 LH는 이들 물량을 청년공공임대주택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LH 관계자는 "미분양과 관련 없이 이전부터 매입임대사업을 시행해왔고 시행사 요청에 따라 이뤄지지만 현장 조사와 심의를 거처 결정한다"며 "모든 미분양 주택을 매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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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체가 무분별하게 사업을 벌여놓고 실패하자 세금으로 수습한다는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지난 1월30일 매입임대사업의 가격 기준을 업계 자구노력과 미분양 물량 추이 등에 따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원 장관은 "미분양 물량을 정부가 떠안을 단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이런 상황에도 건설업계는 지속해서 정부의 미분양 주택 매입을 요구하고 있다. 정원주 대한주택건설협회 회장(중흥그룹 부회장)은 지난 1월31일 출입기자들을 만나 "주택업계 상황이 금융권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정부가 미분양 주택 매입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호소했다.
현재 민간아파트의 분양원가는 공개되진 않지만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2020년 밝힌 고덕강일지구 분양 원가율은 약 67%였다. 공공분양의 경우 민간 대비 분양가가 낮다는 점도 고려돼야 한다. SH공사가 당시 공개한 3.3㎡당 건설원가는 1200만원, 분양가는 1700만~1800만원 수준이다.
지난해 대비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약 5조원 삭감한 정부가 고분양가의 미분양 아파트를 매입하는 데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주택 미분양 사태가 금융시장과 국가경제 전반으로 위험이 전이될 수 있는 만큼 예외의 선택이 필요하다"면서도 "과거 부실 은행에 공적자금을 투입하면 책임을 물었듯 사업자로서의 선택에 대한 리스크는 건설업체가 지도록 하는 구조를 유지해야 한다. 제값을 주고 사면 건설업계만 이익을 보게 된다"고 지적했다.
김노향 기자 merr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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