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7'...저출산이 낳은 풍경들[저출산 아포리아①]
소아과 전공의 이탈 가속…전공의 모집에 15.9%만 지원
“벚꽃이 일찍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사라지고 있다.”
“60세까지 청년회에 가입할 수 있다.”
“2018년부터 5년간 초중고 193개 폐교.”
“2022년 전국 읍면동 94곳 출생아 0명.”
“몇 년 뒤에는 한국인으로 아이돌 그룹을 꾸리는 것조차 어려워질 것.”
저출산이 낳은 풍경이다. 그동안 지방 얘기라고 했다. 저출산과 인구 감소가 가져올 폐교와 지방 소멸, 노동 시장 붕괴를 수도권에서는 실감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서울에 있는 도봉고등학교가 문을 닫기로 했다. 1950년 이후 일반계 고등학교 폐교는 처음이다. 저출산과 인구 감소의 충격에 서울에도 상륙한 셈이다. 문을 닫는 초등학교도 서울에서 나왔다.
저출산이 이슈가 되기 시작한 것은 2002년이다. 이후 20년이 흘렀다. 수많은 정책이 나왔고 200조원이 투입됐지만 이 기간 출산율은 급락했다. 한국의 저출산 인구 감소는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아포리아(aporia)’가 되고 있다.
해외 언론과 싱크탱크들도 한국 출산율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한국의 성장을 위해서는 이제 새로운 대책이 필요하다”며 남의 나라 저출산을 걱정해 줄 정도다. 영국 BBC와 이코노미스트, 미국 CNN,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이 최근 한국의 저출산 문제와 실효성 없는 정책을 꼬집는 보도를 했다.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는 2021년에 “한국 사회 구조상 한국 여성에게 결혼은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다”며 프랑스·미국·스웨덴처럼 ‘비혼 출산율’을 높일 수 있는 사회적 제도를 마련하라는 해결책을 내놓기도 했다.
해외 연구소가 한국 출산율에 주목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영국 옥스퍼드대 인구문제연구소는 2006년 한국을 “지구상 최우선 소멸 국가 1호”로 예언했다.
그리고 그 예언은 20여 년에 걸쳐 현실이 돼 가고 있다. 한국은 2020년 ‘인구 감소’ 국가가 됐다. 출생아가 사망자보다 적은 ‘데드 크로스(dead cross)’ 현상이 처음 나타났고 지난해 3분기 합계 출산율은 0.8명대가 붕괴돼 0.79명을 기록했다.세계 최저 수준이다. 저출산의 나비 효과는 국민연금 고갈 시점을 5년 전 예상보다 2년이나 앞당기기도 했다. 들리지 않는 아이의 울음소리와 함께 붕괴돼 가는 대한민국의 5가지 장면을 살펴봤다.
1. 서울마저 학교가 사라진다
서울에서 처음으로 일반계 고등학교가 문을 닫는다. 서울 도봉구에 있는 도봉고등학교는 내년 2월 인근 학교에 통폐합되면서 사라진다. 2006년 249명이던 신입생은 2016년 123명, 지난해 67명으로 줄었다. 올해는 45명까지 감소했다. 7년 만에 신입생이 5분의1 미만으로 줄었다. 심지어 올해 신입생 중 12명은 1학기에 전학을 결정했고 그 외 33명은 지난 1월 인근 학교로 재배치됐다. 현재 도봉고에 남은 학생은 2학년 68명과 3학년 95명이다. 이들이 졸업할 때까지만 학교가 유지된다.
서울 광진구에서는 화양초등학교가 올해 3월 문을 닫는다. 강서구 염강초등학교, 은평구 은혜초등학교에 이어 셋째로 폐교하는 초등학교다. 서울도 인구 감소의 여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얘기다. 신입생이 모자라 문을 닫는 서울 학교는 계속 생겨날 수밖에 없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2017년 103만5217명이었던 서울의 유치원·초중고·특수학교 학생 수는 지난해 90만4705명까지 줄었다. 4년 만에 12.6% 감소했다. 이 기간 고교생은 23.6% 줄었다.
서울이 이 정도인데 지방은 당연히 더 심각하다. 올해 전라북도 지역 초중고에서 신입생이 ‘0명’이었던 곳은 23곳, 전라남도 지역에서는 33곳이었다. 경상북도에서는 32개 학교에서 신입생을 받지 못했고 신입생이 단 한 명뿐인 학교도 30곳에 달했다. 강원도는 17곳이 신입생 ‘0명’이었다.
학령 인구 감소 쓰나미는 대학까지 덮치고 있다. 이미 2021년부터 대학 입학 가능 학령 인구가 입학 정원에 미달하기 시작했다. 교육부는 2024년까지 이런 문제가 심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전국에 폐교가 예상되는 대학은 38개에 달한다. 특히 학령 인구가 40만 명 이하로 급격하게 떨어지는 2034년부터 학령 인구 감소로 인한 나비 효과가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역화폐 플랫폼 기업 코나아이 시스템다이내믹스팀에 따르면 학령 인구 감소에 따른 문제는 교육 시스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학군 수요 변화로 부동산 시장에도 영향을 주고 교원 수급에 따른 일자리 문제, 대학 재정 악화에 따른 교육의 질 저하와 대학 상권 붕괴로 인한 지방 경제 위협까지 현저한 위협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대학 폐교가 지방 소멸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학교의 몰락은 시작에 불과하다. 올해 초등학교를 들어가는 2016년생까지는 40만 명이 넘게 태어났다. 하지만 2017년생부터는 30만 명대로, 2020년생은 20만 명대로 급속히 떨어졌다. 해를 거듭할수록 폐교 소식은 더 이상 뉴스가 아닌 시대가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 소아과 ‘오픈런’만 문제 아냐…응급 의료 체계 붕괴된다
“ㅇㅇ소아과 아침 7시에 왔는데 대기 번호 100번대입니다. 현장 접수하려는 맘들은 참고하세요.” -서산 맘카페-
“아이가 갑자기 아파 예약 접수를 못했어요. ㅇㅇ소아과 아침 8시부터 줄서면 10시에는 진료 볼 수 있나요?”-송도 맘카페-
서울·신도시·지방을 가리지 않고 소아과가 난리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미리 예약 접수를 하지 않고 현장 접수를 하려면 2~3시간 대기는 기본이다. 9시에 문을 여는 병원이면 7시부터 엄마들이 ‘오픈런’을 하기 시작한다. 소아 환자가 넘쳐나서가 아니다. 코로나19 사태와 저출산으로 타격을 입고 수익성이 떨어진 동네 소아과들이 줄폐업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아이들이 줄면서 소아과도 사라지고 있다. 지난 5년간 전국에서 소아과 662곳이 폐업했다. 2021년에는 개업한 소아과보다 폐업한 소아과가 60여 곳 더 많았다. 미래 전망이 좋지 않아 폐업한 소아과가 늘어나자 현재 남아 있는 소아과는 진료도 받기 힘든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경기도 A 대학병원 한 소아과 전문의는 “의대 6년, 수련의 2~4년까지 총 10년을 고생해야 하는 의대생들은 미래와 생존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며 “소아과 특성상 수가가 낮고 진료 시간은 긴데 저출산으로 절대적인 환자 수가 줄고 있기 때문에 미용이나 요양병원쪽으로 빠지는 전문의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병원 소아과 전공의 이탈 현상도 가속화되고 있다.
올해 전반기 64개 수련 병원 소아과 전공의 모집에 지원자는 단 33명이었다. 전체 소아과 정원 중 15.9%에 불과했다. 부산에 있는 5개 대학병원에서는 소아청소년과를 지원한 전공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소아과 전공의 이탈 현상이 심화되면 소아과 전문의가 부족해진다. 대학병원은 전문의만으로 돌아갈 수 없는 구조여서 전공의가 있어야 하는데 전공의가 부족하다 보니 일감이 몰리고 다시 신규 지원이 적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전문의가 줄면 단순히 동네 소아과 줄이 길어지는 게 전부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소아 응급 진료 체계의 붕괴다. 전국 대학병원 중 소아청소년 응급 진료가 가능한 곳은 36%밖에 안 된다. 대학병원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부족하면 소아 환자의 응급 진료나 입원 진료가 불가능할 수 있다.
“대학병원이나 상급종합병원 응급실에 경련하는 아이가 오면 단순 열성 경련인지 다른 뇌신경 질환이 있어서 경련을 하는 것인지 응급의학과 전문의와 소아청소년과 중에서도 신경분과 전문의가 있어야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어요. 만약 그 병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부족하면 소아 환자가 응급실에 와도 그 병원에 입원할 수 없고 결국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는 거죠.”
경기도 A 대학병원 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의 설명이다. 결국 소아청소년과 전공의·전문의가 줄면 소아 응급 체계가 무너지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수가 개선 방안을 모색하고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를 추가로 확충하기로 했다. 응급 의료 기관 평가 기준에 소아 환자 진료 지표를 추가해 응급실의 소아 진료 기능이 강화될 수 있도록 힘쓰겠다는 대책도 내놓았다. 하지만 이 정도 대책으로 의사 지망생들을 소아과로 불러들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3. ‘저성장→저출산→저성장’ 악순환의 고리
‘0.7명대’를 가리키는 숫자보다 더 큰 문제는 속도다. 한국처럼 출산율이 빠른 속도로 추락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 2000년 한국 출산율은 1.48명으로 일본보다 높았는데 2018년 출산율은 0.98명으로 세계에서 처음으로 1명을 밑돌았다. 2021년에는 0.81명을 기록했고 지난해 3분기에는 0.7명대까지 추락했다.
한국 저출산이 저성장의 산물이라는 의견도 있다. 조성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저출산은 경제 성장이 둔화되면서 생기는 문제”라며 “성장률이 높은 나라는 일자리가 늘고 청년들이 실업이나 비정규직으로 걱정할 일이 적으니 출산율이 높아지고 다시 경제 성장 동력이 생기는 선순환인데 한국은 저성장→저출산→저성장의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국회예산정책처가 인구 구조 변화가 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한국과 일본 등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국가는 경제성장률과 생산 연령 인구 비율 간 양의 상관관계가 높았다. 저출산 고령화가 가속화될수록 성장률은 떨어진다는 뜻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인해 2050년 한국의 경제 성장이 멈출 것이라고 예상했다. 통계청이 지난해 발표한 2020~2070년 장래 인구 추계에 따르면 2020년 72.1%인 생산 연령 인구(15~64세) 비율은 2050년 51.1%로 줄어든다. 반면 고령 인구(65세 이상)는 이 기간 15.7%에서 40.1%로 크게 늘어난다. 일할 수 있는 생산 연령 인구가 줄어들고 고령 인구가 급증하면서 노동 공급이 줄어 성장률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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