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2 대신 독일 전차 샀다”…국방비 늘리는 유럽, ‘내부 무기거래’ 나서나 [박수찬의 軍]
폴란드와 아랍에미리트(UAE) 등에서 잇따라 수주 실적을 올린 국내 방산업계가 노르웨이에서는 아쉬운 성적을 남겼다.
요나스 가르 스퇴레 노르웨이 총리는 3일 기자회견을 열고 독일 크라우스-마페이 베그만(KMW)이 제작한 레오파르트 2A7 전차 54대를 주문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향후 18대 추가 구매 옵션이 있으며, 2026~2031년까지 도입될 예정이다. 한국의 K2 전차는 고배를 마셨다.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군비 증강과 우크라이나 지원 수요가 폭증하면서 냉전 이후 쇠퇴를 거듭했던 유럽의 군사력 투자는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국방비 증액은 무기 구매 확대로 이어진다. 루마니아는 최근 미국 레이시온·노르웨이 콩스버그가 공동제작한 NSM 지대함미사일 2개 포대를 2억 1700만 달러에 구매하기로 했다. 영국은 5대에서 3대로 줄어든 미국산 E-7 공중조기경보기 도입 규모를 5대로 되돌리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국내 방산업계도 이같은 기조에 힘입어 지난해 폴란드와 K2 전차와 K9 자주포를 57억6000만 달러(7조6000억원)에 수출하는 계약과 함께 30억 달러(약 4조1770억원)에 달하는 FA-50 경공격기 수출 계약을 맺었다.
노르웨이 전차 사업은 이같은 성과를 확대할 기회였다. 유럽 전차를 대표하는 레오파르트2A7을 공개경쟁에서 제치고 나토 회원국에 K2를 수출하면, 유럽 내 레오파르트2 전차의 대체 수요를 노릴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나토 국가들이 무기 소요를 충족하는 방법은 회원국간 거래였다. 록히드마틴, 보잉, 에어버스, BAE시스템스, 탈레스, 닷소, 레오나르도 등 세계 최고 수준의 방산업체들이 나토에 모여 있다.
자체적으로 무기 수요를 충족하기에 충분한 공급망이 만들어졌다. 이같은 구조는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한 제도적 뒷받침 속에서 더욱 고착화됐다. 역외 국가 무기를 사는 것은 무인정찰기처럼 역내에서 수요를 충족하기 어려울 경우에 한해서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같은 기류를 약화시킬 것이라는 평가를 낳게 했다. 우크라이나를 돕고자 나토 회원국들은 자국 내 재고 무기를 대거 지원했다. 텅빈 무기고를 채우고, 최신 무기를 도입해 전쟁 억제력을 갖추려면 지금 당장 새 무기를 확보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단기간 내 무기생산이 가능한 한국은 많은 주목을 받았다. 폴란드가 한국산 무기를 대량 구매한 것이 대표적이다. 폴란드의 결정을 계기로 일부 유럽 국가들이 한국 무기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무기 구매 과정에서 이같은 요소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실제로 2012년 이스라엘이 훈련기 도입을 놓고 한국산 T-50과 이탈리아 M346을 저울질 할 때, 이탈리아 측은 유사시 몇 시간 안에 부품과 장비·인력을 항공기에 싣고 지중해를 건너 이스라엘로 신속하게 달려올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이스라엘이 M346을 선정한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와 다른 유럽 국가들이 독일산 전차를 운용중인 상황에서 연합작전과 군수지원의 효율성도 고려됐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기존 레오파르트2 전차 운용과정에서 구축된 후속군수 및 정비 체계를 활용할 수 있어서 중장기적 측면에선 효율적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스퇴레 총리도 레오파르트2A7 전차 도입 결정을 발표하면서 “북유럽 인접 국가를 비롯한 나토 핵심 동맹들과 계속해서 동일한 주력전차를 운용하게 됐다”고 언급,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했다.
K2 전차 제작사인 현대로템 입장에선 아쉬운 대목이다. 현지에서 실시된 동계시험평가에서 혹한 속에서도 뛰어난 성능을 보였다. 도입 가격도 레오파르트2A7 전차보다 높지 않았다.
노르웨이 방산업체 콩스버그와 방산협력 합의서를 체결, 콩스버그의 디지털 통합시스템과 원격사격통제체계(RCWS)를 적용하기로 하는 등 현지 협력도 적극 추진했다. 하지만 나토라는 공고한 벽을 뚫지는 못했다.
◆긴급소요 대응으론 수주 한계…현지화 등 필요
일각에서는 기존과는 다른 방식의 수출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폴란드와 124억 달러(15조6800억원) 규모의 방산수출을 체결한 것을 계기로 미국·유럽 방산업계의 견제가 강화되는 만큼 새로운 전략을 짜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을 대상으로 한 긴급소요가 계속 이어질 것인지는 미지수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유럽 각국은 무기 구매에 투자를 늘리고 있는데, 역내에서 만든 무기를 도입하려는 기존의 관성은 여전하다.
독일의 대표적 방산업체인 라인메탈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무기 수요와 서방 국가들의 전력 강화 수요가 합해지면서 수주잔고가 300억 유로(약 40조원)에 달하는 상황이다. 내년에는 수주잔고가 400억 유로(약 53조4000억원)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현지화 전략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유럽 업체와 손잡고 현지에서 생산을 진행해 후속군수지원과 정비를 보다 신속하게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군 탄약고를 다수 파괴, 유럽 각국에서 주문이 이어지고 있는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 제작사인 록히드마틴과 라인메탈은 하이마스의 독일 내 생산을 위한 최종 협상을 진행중이다.
유럽 국가들이 진행하는 무기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F-35 개발에 참여한 국가들이 일정 수준의 정보와 생산물량을 제공받은 것처럼 유럽과의 공동개발을 진행하면 기술 축적과 더불어 시장 진출 효과도 거둘 수 있다.
유럽 국가별로 차이가 있는 수요를 정확히 파악하고 ‘맞춤형 공급’을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
유럽 내 무기 수요는 폴란드처럼 긴급소요에 따른 완제품을 원하는 나라, 한국산 전차 변속기 계약을 맺은 튀르키예처럼 부품 공급을 요구하는 나라, 노르웨이처럼 높은 수준의 절충교역을 원하는 나라 등으로 세분화될 조짐을 보인다. 충분한 시장 조사를 통해 수요를 충족할 다양한 옵션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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