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원’만 바라보는 韓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日은 ‘소득’ 따라 혜택, 뉴욕은 50% 할인

세종=손덕호 기자 2023. 2. 4. 06: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국, 1984년 제정 노인복지법 따라 무임승차 도입
日, 1970년대 무임승차 도입…이후 일부 부담하게 변경
소득 따라 요금 일부 부담해야…민자 철도는 유료
美, 요금 일부만 할인…英, 피크시간대는 혜택 제외
한국도 부산김해경전철 노인에게 요금 받고 있어

서울시가 지하철 요금 300~400원 인상을 추진해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손실의 원인 중 하나인 만 65세 이상 노인 대상 ‘무임승차’ 제도를 손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책으로는 지자체에만 부담을 지우지 않고 정부가 재정을 부담하거나, 노인 연령 상향 또는 요금의 일부만 할인해주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지난 1일 서울 지하철 종로3가역에서 시민들이 개찰구를 통과하고 있다./뉴스1

정치권에서는 주로 중앙정부의 지자체 재정 지원에 대한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그러나 해외 주요국은 노인들의 소득이나 이용 시간대에 따라 요금 할인 혜택을 차등 지원하는 등 완전한 ‘무상 혜택’을 주고 있지는 않다. 부산에서도 민자로 지어진 경전철은 노인들에게 요금을 받고 있다.

◇정부, 코레일만 노인 무임승차 손실 보전…지자체에 부담 전가

노인들이 제공받고 있는 도시철도 무임승차 혜택은 지난해 말부터 본격적으로 논란이 됐다. 국회 본회의에서 2023년도 정부 예산이 통과됐는데, 지방자치단체의 도시철도 PSO(Public Service Obligation·공익서비스에 따른 손실보전 지원) 예산이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인의 도시철도 무임승차 제도는 1984년 노인복지법이 개정되면서 도입됐다. 노인 무임승차로 손실은 한국철도공사(코레일)과 각 지자체의 교통공사가 입고 있지만, 정부가 철도산업발전기본법에 따라 한국철도공사(PSO)에 손실 보전을 해 왔다.

정부는 지난해 예산안을 짜면서 코레일의 노인 무임승차 손실 보전을 위해 3979억원을 책정해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자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각 지자체 교통공사가 노인 무임승차로 입은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3585억원을 추가로 반영한 수정안을 의결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지난해 12월 24일 새벽 국회 본회의에서 코레일의 손실 보전만 반영한 정부의 원안이 통과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올해도 중앙정부 차원에서 도움이 없으면 자구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상황에서 정부 지원이 빠진 것이라 지하철 요금이 대폭 상승할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서울시는 올 4월 말 지하철 요금을 300~400원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달 30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여야, 대책 마련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 정부 부담 필요 인정

가스요금과 전기요금이 폭등하면서 고물가가 서민 가계를 어렵게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지하철 요금이 큰 폭으로 인상될 것으로 전망되자 정치권은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대책은 주로 정부의 재정 지원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지난 3일 당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지자체가 1년에 수천억원의 적자를 부담하면서 계속 가게 하는 게 맞지 않다는 인식이 있다”고 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여당 간사인 류성걸 의원은 기재부로부터 관련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실무보고를 받았다고 전했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지난 2일 당 회의에서 “여당과 서울시는 정부와 계속 협의 중이라는데, 십중팔구 시민에게 그 책임을 전가할 것”이라며 “그럴 필요 없이 이미 국회에 발의되어 있는, 공익 서비스 제공으로 발생하는 비용을 국가 부담으로 하는 PSO 법을 국회에서 처리하면 될 일”이라고 했다.

다만 여야는 지하철 무임승차가 가능한 연령을 현행 65세에서 상향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주 원내대표는 “적자 부담을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어떤 방식으로 할지, 수십년 전에 정해진 65세 노인(기준)이 맞는지를 포함해 종합적으로 다뤄야 한다”고 했다. 박 원내대표는 “정부와 국회 등이 주도해서 무임승차 적용 연령을 단계적으로 높이거나 출퇴근 시간대 사용을 제한하는 등의 보완적 방안도 사회적 합의로 도출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래픽=편집부

◇무임승차 대상 연령 상향도 논의 시작… 대구 ‘70세부터’ 추진

여야가 도시철도의 노인 무임승차 비용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데에는 의견 일치를 보이면서 지자체 차원의 대책 마련도 탄력이 붙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3일 페이스북에서 “사실 대한노인회와 연초부터 논의를 시작했다”며 “머지 않아 노령 인구가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되고 ‘100세 시대’가 될 터인데 이대로 미래 세대에게 버거운 부담을 지게 할 수는 없다”고 했다.

대책으로는 정부의 재정 지원과 무임승차 제도 자체의 개편이 모두 추진되어야 한다고 했다. 오 시장은 “우선 기재부가 무임승차 손실의 일부라도 지원해야 한다”며 “연령별, 소득계층별, 이용시간대 별로 가장 바람직한 감면 범위를 정하기 위하여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시민사회, 국회, 정부와 논의하겠다”고 했다.

대구시는 노인복지법에서 정해 놓은 ‘만 65세 이상’이라는 조항을 우회해 만 70세부터 도시철도를 무임승차할 수 있도록 하는 조례 제정을 추진한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페이스북 글에서 “(노인복지법에는 무임승차 대상이) 65세부터가 아닌 ‘이상’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70세로 규정하더라도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했다. 다만 대구시는 전국 최초로 오는 6월부터 70세 이상 노인이 시내버스를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할 방침이다.

2011년 개통한 부산김해경전철. /조선DB

국내에서도 노인이 모든 도시철도를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부산김해경전철은 ‘부산-김해 간 경량전철건설 민간투자사업 실시 협약’에 따라 65세 이상 노인에게도 이용요금을 전액 부과하고 있다. 이 사업이 민자로 진행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노인복지법은 국가와 지자체에 수송시설 이용요금을 할인하도록 하고 있다. 노인의 일상생활에 관련된 사업을 하는 회사에는 “이용요금을 할인해 주도록 권유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민간 기업은 노인 무임승차가 의무가 아닌 셈이다. 같은 이유로 공항철도도 노인에게 요금의 100%가 아닌 75%만 할인해 오다가, 2010년부터 100%로 확대했다.

◇日, 지자체 운영 대중교통 ‘무임승차’ 도입했다가 일부 비용 부담으로 전환

해외 주요국들은 한국과 달리 65세가 넘었다고 도시철도 요금을 아예 내지 않아도 되는 제도는 운영하고 있지 않다. 부산김해경전철처럼 민자로 지어진 도시철도에는 노인 운임 할인 제도를 적용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도시철도가 발달한 일본의 도쿄는 1974년부터 70세 이상이면 도영 전철·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실버패스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민간 자본으로 지어진 도쿄메트로는 이 패스로 탈 수 없다. 2000년부터는 1년 단위로 발급되는 실버패스를 가구 소득에 따라 유상으로 교부하고 있다. 완전한 ‘무상’이 아닌 셈이다.

오사카는 일본에서 가장 빠른 1972년에 노인 대상 교통요금 할인제도를 도입했다. 2012년까지 이용 한도 없이 시영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는 승차권을 무상으로 교부했다. 그러나 2014년부터는 경로패스 갱신 때 3000엔(약 3만원)을 부담하고, 이용 횟수에 따라 추가 비용을 지불하는 것으로 제도가 바뀌었다.

그래픽=편집부

미국의 주(州)들은 대부분 65세 이상 모든 노인을 대상으로 교통요금 할인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뉴욕의 경우 지하철·버스 요금을 50% 할인해준다. 철도는 가장 비싼 시간대 요금의 50%를 할인해준다. 뉴저지에서는 지하철 요금을 30%만 할인해준다.

영국은 연금 수급개시 연령에 해당하는 경우 대중교통 할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다만 ‘모든 시간’ 할인은 아니다. 노인이 대중교통 요금을 할인받기 위한 ‘프리덤패스’를 이용하면 영국 전 지역에서 주중 피크시간대를 제외한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11시까지 지하철과 버스를 탈 수 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