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사랑에 눈 멀면 안되는 이유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2023. 2. 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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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사랑에 빠지면 눈에 콩깍지가 씌인다고들 한다. 밥을 먹는 것도 이뻐 보이고 썰렁한 농담도 재미있게 느껴지는 등 사랑하는 이가 하는 행동이라면 뭐든 좋게 보게 된다는 것이다. 사랑에 빠지면 정말 눈이 멀게 될까. 눈 먼 사랑은 괜찮은 걸까.

눈 먼 사랑의 힘

연구에 의하면 안정적이면서 만족도가 높은 관계를 형성하는 커플들은 그렇지 않은 커플들에 비해 장밋빛 안경을 끼고 서로를 바라보는 경향을 보인다. 예컨대 실제보다 자신의 연인이 매력적이고 능력도 좋고 도덕적이라는 등 다양한 방면에서 연인을 다소 과대평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렇게 서로에 대해 긍정적인 환상을 유지하는 커플들은 그렇지 않은 커플들에 비해 서로가 서로의 자존감 부스터가 되며 결과적으로 다시 안정적이고 행복한 관계를 이끌어나가는 경향을 보인다(Fletcher & Kerr, 2010). 

서로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커플은 그렇지 않은 커플에 비해 갈등이 발생해도 비교적 상대를 잘 용서하는 경향을 보인다. 상대가 기본적으로 좋은 사람이며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상대의 실수나 잘못을 ‘고의로’ 또 ‘나를 해치려는 속셈으로’ 그랬다며 악의적으로 해석하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비슷한 갈등이 생겨도 서로에 대한 신뢰가 두터운 커플은 그렇지 않은 커플에 비해 서로에 대해 크게 오해하거나 갈등을 파국으로 이끄는 일이 덜 생긴다. 학자들은 때론 약간의 콩깍지가 관계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눈을 떠야 할 때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관계에 별로 문제가 없고 두 사람 다 비슷한 수준으로 관계에 헌신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임을 명심하자. 관계에 분명한 문제가 존재할 때, 예컨대 사랑과 배려가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거나 한 쪽만 헌신하는 등 불균형이 많은 경우에는 관계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현실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장기적으로 좋은 짝을 만나는 경향을 보인다. 

‘이 사람이다’ 싶을 때는 긍정적인 시각을 유지하는 것이 좋지만 만약 아닐 때, 예컨대 만날수록 점점 불안이 쌓여가고 특히 본인의 자존감을 깎아내는 관계라면, ‘정말 이 사람일까?’라고 물어볼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 이 사람일까?’

그런데 과연 ‘좋은 짝’을 판단하는 우리의 눈은 정확할까? 서던뉴햄프셔대 심리학자 파비 가네(Faby Gagné)는 연인과 아직 깊은 관계로 발전하기 전 단계에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깊은 단계로 발전한 후의 관계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 보게 했다. 한 그룹의 사람들에게는 연인과 동거를 하게 되면 어떤 장단점이 있을지 떠올려보게 했고 또 다른 그룹의 사람들에게는 동거를 하려면 연인을 어떻게 설득할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다. 그러고 나서 연인과의 관계가 얼마나 오래갈지 예측해보게 했다. 

그 결과 관계가 깊어지는 것의 장단점, 서로의 장점과 단점 등에 대해 다소 객관적으로 생각해볼 기회를 가졌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이후 관계가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를 훨씬 더 잘 예측한 것으로 나타났다(정확성 67% VS. 19%). 마음은 답을 알고 있다는 말처럼, 잠깐 열정을 뒤로 하고 ‘지금 나는 이 관계에서 행복한가?’라고 한 번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 답에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나를 사랑할 리 없어’

관계의 상태에 대한 정확한 진단은 중요하지만 정확함을 넘어 관계를 지나치게 ‘과소평가’하는 것 또한 문제가 된다. 예컨대 스스로에게 특히 가혹한 사람들의 경우 상대가 주는 사랑을 있는 그대로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저 사람이 나를 사랑할 리가 없어’라며 주어지는 사랑이 100이라면 그걸 70, 50으로 깎아서 받는 것이다. 

일례로 한 연구에서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낯선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해야 하는 등 어려운 과제를 주고 연인이 힘내라고 이런 메시지를 보내왔다며 모두에게 ‘같은’ 내용의 응원 메시지를 보여주었다. 응원의 내용은 같았지만 스스로에게 가혹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이 응원이 진심이 아닐 가능성’ 같은 걸 떠올리며 상대가 별로 도움을 주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준다고 꼬아서 생각하는 등 응원의 힘을 잘 누리지 못하는 경향이 나타났다(Murray, Bellavia, Rose, & Griffin, 2003). 

사랑과 응원이 크게 존재하지 않아도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려운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덜 받는 모습을 보인다(Zimet et al., 1988). 반면 사랑과 응원이 존재해도 그걸 내가 받지 않으면 그것들은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이다. 사랑과 응원이 없다고 느껴질 때, 그게 정말 없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내가 보지 못하고 있을뿐인 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연인이 실제로 자신을 사랑하는 정도보다 연인의 사랑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발견이 있었다(Fletcher & Kerr, 2010). 내가 연인의 사랑을 10점 만점에서 6점으로 생각한다면 실제로는 그 이상일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내 연인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나를 사랑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특히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나 사람들의 눈치를 심하게 보는 경우 더 주어지는 사랑을 과소평가한다는 결과가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이 내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나를 좋아해주고 있다고 하니, 그런 나 역시 꽤 괜찮은 사람인 게 아닐까. 서로를 높이는 긍정적인 관계를 만들어 보자. 

Fletcher, G. J. O., & Kerr, P. S. G. (2010). Through the eyes of love: Reality and illusion in intimate relationships. Psychological Bulletin, 136, 627–658.
Gagné, F. M., & Lydon, J. E. (2001). Mind-set and close relationships: When bias leads to (in)accurate prediction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81, 85–96.
Murray, S. L., Bellavia, G. M., Rose, P., & Griffin, D. W. (2003). Once hurt, twice hurtful: How perceived regard regulates daily marital interaction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84, 126–147.
Zimet, G. D., Dahlem, N. W., Zimet, S. G., & Farley, G. K. (1988). The multidimensional scale of perceived social support. Journal of Personality Assessment, 52, 30-41.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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