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경성] ‘연애의 시대’ 휩쓴 베스트셀러 ‘사랑의 불꽃’
스무살 김을한이 경부선 기차를 타고 가다 목격한 일이다. 개성의 한 여학교 수학여행단과 우연히 동행했던 모양이다. 얼마후 학생 100여명이 일제히 가방에서 연분홍색 책을 한권씩 꺼내 읽기 시작하더란다. 문학청년이던 김을한이 여학생들이 도대체 무슨 책을 읽는지 호기심에 가득차 들여다봤다. 제목은 달라도 저자는 노자영, 한 사람이었다.
‘노자영군의 작품답지도 못한 작품으로 인하여 타락의 정정에 빠진 남녀학생이 얼마나 많을 것이며 구만리 같은 전도(前途)를 그르치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생각만하여도 몸서리가 난다.’ ‘아직 지기미정(志氣未定)한 나이어린 사람에게 노자영군의 작품을 읽히는 것은 마치 광인에게 폭탄을 주는 것과 다름없는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인생잡기4′, 조선일보 1926년 8월12일) 김을한은 베스트셀러 작가 노자영을 신랄하게 공격했다. 김을한은 이 ‘인생잡기’가 계기가 돼 그 해 조선일보에 입사했다.
◇'옥편은 없어도 이 책은 거의 다 있다’
노자영(盧子泳·1898~1940)이 1923년 출간한 ‘사랑의 불꽃’은 당대의 베스트셀러였다. 1923년 출판계를 정리한 한 기사는 ‘사랑의 불꽃’이 ‘2000권이 팔리고 그 후에 다시 1000권을 박았으나 벌써 거의 반이나 팔린 중에 있어서 금년에 판매된 것으로 최다수를 점령’(‘도서관과 서점에 표현되는 조선 문화의 정도’, 조선일보 1923년 12월25일)했다고 썼다.
연애편지 형식의 이 소설은 ‘연애의 시대’가 열린 1920년대 학생들을 중심으로 모던 보이, 모던 걸의 욕망을 건드린 히트작이었다. 첫 고백부터 이별에 이르기까지 연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례를 19편의 편지에 담았다. 연애에 대한 선망을 자극하면서 동시에 연애편지의 교본으로 쓰일 만큼, 실용적 목적에도 충실했다. 김을한도 ‘시내에 있는 남녀 학생중에 옥편은 한권 없을 망정 노자영군의 작품 한권씩은 거의 다 있다’고 할 만큼 당시 학생층에서 유행처럼 번진 이유다.
◇'광인에게 폭탄을 주는 것처럼 위험’
‘사랑의 불꽃’은 열애중인 남자가 보내는 핑크빛 사연부터 멀리 떠나 있는 애인을 그리워하거나 결별을 선언하는 편지까지 다양한 사례가 들어있다. 이중 이별을 전제로 한 편지가 9편에 달한다. 전체적으로 고독과 애상, 이별의 정조가 강하다. 윤심덕과 김우진의 현해탄 투신처럼, 1920년대에 유독 이룰 수 없는 사랑이 단초가 된 정사(情死)가 유행병처럼 번졌다. 이런 분위기를 배경삼아, 또 이런 정조를 이끌어 나가는 데 기여한 것이 노자영의 ‘사랑의 불꽃’이었다. 김을한이 ‘광인에게 폭탄을 주는 것’처럼 위험하다고 경고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연애의 시대’겨냥한 기획 상품
‘사랑의 불꽃’은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됐다. 스웨덴 여성학자 엘렌 케이의 ‘연애의 자유’사상이 1920년대 조선에 유행하면서 때마침 급증한 학생층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노자영의 ‘사랑의 불꽃’은 ‘연애의 시대’를 겨냥한 기획 상품이었다. 이 책을 낸 한성도서주식회사는 신문에 ‘사랑의 불꽃’ 광고를 지속적으로 실으면서 적극적으로 마케팅에 나섰다. ‘이 책은 현대 신진 문사들이 각각 붓을 든 것이니 시 이상의 시이오, 소설 이상의 소설이다.연애를 알고자 하는 자나 다시 청춘과 인생문제를 알고자 하는 자는 한번 읽으라! 피에 살고 눈물에 사는 청춘제군에게 많은 위안을 주리라.’
이 광고는 ‘청춘 남녀의 불타는 가슴을! 그냥 그대로 휘뿌려 놓은! 사랑의 향기가 뛰고 춤추는! 꽃 같은 연애의 웃음과 눈물!’이라는 문안을 내세워 청춘 독자들을 끌어들였다. 대중들이 선망하는 엘리트계층이던 학생들이 너나없이 이 책을 펼치면서 하나의 유행으로 등장한 것이다.
‘사랑의 불꽃’이 히트한 데는 지상논쟁도 한몫했다. 김을한의 노자영 비판이 조선일보에 게재되자 노자영도 같은 신문에 세차례 반박을 기고했다. 방인근, 최서해도 논쟁에 끼어들었다. 지식층의 시끌벅적한 논쟁이 ‘사랑의 불꽃’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자극했음은 물론이다.
◇예쁘장한 이름과 달리 신경질적이고 까무잡잡
노자영은 감상적인 문체나 여성적 이름과 달리 비쩍 마른데다 까무잡잡한 얼굴의 청년이었다. 동년배 소설가 방인근은 ‘얼굴이 삐쩍 마른 데다가 몹시 까맣고 웃고 말할 때 커다란 입이 쭉 벌려지면서 검은 얼굴에 정반대되는 흰 이빨이 총출동을 하는 데는 흑인종을 연상케 하고 언뜻 말 상으로 보여 악감정이 날 만했다’(‘조광’, 1940년 11월호)고 회고할 정도였다. 1921년 동아일보에 입사한 노자영은 마음이 약한데다 신경질적이라 기자로서는 성공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1923년 ‘사랑의 불꽃’이 히트하면서 사직하고 나와 ‘청조사’라는 출판사를 차렸다. ‘사랑의 불꽃’류의 가벼운 책을 몇 권 냈으나 그만한 주목은 끌지 못했다. 게다가 폐결핵으로 7년간 투병하면서 병석을 지켰다. 1937년 조선일보 출판부 기자로 입사하면서 ‘출판인’으로서의 역량을 다시 발휘했다. 함께 조선일보 출판부에서 일한 소설가 함대훈은 ‘춘성은 문필의 재주보다도 오히려 출판에 대한 천재가 있다고 할 만하고 거기에 열성이 있다’면서 ‘조선일보사 출판부의 융성은 오직 춘성의 노력이라고 할 수있고 조선 출판계에 커다란 공적을 남겼다고 할 수있다’고 회고했다. 춘성(春城)은 노자영의 호다.
◇대중 독자의 출현
‘사랑의 불꽃’이 몇 권이나 팔렸는지는 정확한 통계가 없다. 서적 판매 현황을 집계하는 기구가 있었던 때도 아니니 그럴 것이다. 이광수의 대표작 ‘무정’처럼 1만부는 넘었을 것이란 추측이 나올 뿐이다. 노자영은 이 책 한권으로 일년만에 300~400원 수입을 올렸다고 한다. 당시 그가 받은 기자 월급이 56원일 때다.
‘사랑의 불꽃’은 대중 독자의 출현에 기여한 책인 것만은 틀림없다. 소설인지 편지체를 익히는 실용서인지 분간하긴 어렵지만, 연애와 편지를 매개삼아 그의 책을 탐독하는 독자들이 생겼다.출판계는 이런 독자들을 겨냥해 비슷한 취향의 책을 잇따라 냈다. 그런 면에서 노자영의 ‘사랑의 불꽃’은 근대적 대중 독자의 탄생, 대중 독서의 시대를 여는 신호탄이 됐다고 할 수있겠다.
◇참고자료
방인근, ‘춘성교우록’, 조광, 1940년 11월
함대훈, ‘춘성의 인간과 예술’, 조광 1940년 11월
이태숙, ‘1920년대 ‘연애’ 담론과 기획출판-’사랑의 불꽃’을 중심으로’, 한국현대문학연구 제27집, 2009년4월
천정환, 근대의 책읽기,푸른 역사,2003
권보드래, 연애의 시대, 현실문화연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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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사랑의 불꽃 표지, 노자영, 윤심덕 김우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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