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강 들고 1100m 오른다, 전쟁터 돼버린 제주 '눈꽃 맛집' [e즐펀한 토크]

최충일 입력 2023. 2. 4. 05:01 수정 2023. 2. 4.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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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 전쟁 뚫었지만, 화장실은 막혀


지난달 29일 오전 10시쯤 제주 한라산 1100고지 휴게소 앞 돌하르방이 쌓인눈에 반 이상 묻혀있다. 그 뒤에는 '동파로 인한 화장실 사용 금지' 플랭카드가 걸려 있다. 최충일 기자
“주차난에 화장실도 못 쓰고, 눈꽃 맛집(유명한 곳)은 맞지만 정말 너무 불편하네요.” 지난달 29일 오전 제주 한라산 1100고지(1100m) 휴게소에서 만난 백모(20·울산시)씨 말이다. 이곳은 전날 밤까지 내린 폭설이 만든 설국 경치를 즐기려는 인파가 몰렸다. 탐방객 발길이 이어지며 왕복 2차선인 1100고지와 어리목·영실 코스 등을 잇는 주변 도로는 주차 전쟁터로 변했다.

특히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잇는 1100고지 양방향 인근 도로는 탐방객이 타고 온 자동차 행렬이 수백미터 가량 이어졌다. 1100고지 휴게소 인근 갓길에 세워둔 차와 이곳에서 빠져나오려는 차가 엉키며 도로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출동한 제설차도 오도 가도 못했다.


제주자치경찰 역대급 혼잡에 '도로통제'


지난달 29일 오전 10시쯤 제주 한라산 1100고지 휴게소 앞에서 교통정리 중인 제주자치경찰 대원. 최충일 기자
혼잡 상황이 계속되자 경찰은 도로를 통제했다. 제주자치경찰은 지난달 30일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3시30분까지 1100도로 어승생 삼거리~어리목 구간도로 구간 차량 진입을 막았다. 렌터카 등 개별승용차 이용 탐방객이 도로 옆 갓길에 무단 주·정차를 일삼아, 사고 위험 커졌다는 판단 때문이다. 폭설이나 태풍 영향 외에 자동차 혼잡으로 이 일대 도로가 통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통제 구간에 운행이 가능한 차는 공적업무용과 대중교통(버스)뿐이었다.

제주자치경찰은 “겨울철마다 1100도로 등 한라산 주·정차 혼잡이 큰 문제가 되고 있어 지난해 12월 어리목 코스 입구에 불법주정차 CCTV 설치했다”며 “통신공사가 마무리 되는 대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겨울 눈꽃 풍광은 역대급...그러나


지난달 29일 오전 10시쯤 제주 한라산 1100고지 휴게소 앞 고상돈공원을 찾은 탐방객들. 최충일 기자
이런 악조건을 뚫고 1100고지 휴게소 인근을 찾은 탐방객이 새하얀 한라산 풍광에 탄성을 내질렀다. 도로를 따라 자라난 높이 10m가 넘는 나무줄기마다 눈꽃이 활짝 피어났다. 휴게소 인근 고상돈(제주출신 산악인) 공원 공터는 가족 단위 관광객 눈 놀이터가 됐다. 눈오리·눈사람을 만들거나 사진 셔터를 누르며 추억을 담았다.

"화장실 어디냐 물어도, 뾰족한 답 없어 답답"


지난달 29일 오전 제주 한라산 1100고지 공중화장실 입구에 '동파로 인하여 사용불가' 판넬이 걸려있다. 최충일 기자
하지만 즐거움은 잠시 후 근심으로 바뀌었다. 이곳에 하나뿐인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다기 때문이었다. 제주자치경찰에 따르면 한달 여 전부터 1100고지 공중화장실은 ‘동파로 인해 사용불가’라고 적힌 팻말이 걸렸다. 팻말에는 ‘어리목 또는 영실 등산로 화장실을 이용해달라’는 설명도 담겼다.

강추위에 1100고지 공중화장실 일부 관로가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관로는 외부에 노출돼있어 추위에 취약하다. 휴게소내 습지 전시관 관계자는 “관람객이 하루에도 수없이 화장실 위치를 물어보지만, 다른 등산로 화장실을 이용하라 안내하는 수밖에 없고 간이 화장실도 쓰지 못할 때가 많아 미안한 마음”이라며 답답해했다.


"간이 화장실도 제대로 관리 안 돼"


지난달 29일 오전 탐방객들이 제주 한라산 1100고지 간이화장실을 이용하고 있다. 최충일 기자
탐방객 이모(50·울산시)씨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찾고 휴게소에서 음식까지 팔면서, 화장실을 쓸 수 없다는 게 납득이 안 된다”며 “땅을 파내기 어렵다면 열선을 활용해 녹이던지,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나”며 목소리를 높였다. 가족과 함께 이곳을 찾은 김모(57·전주시)씨도 “매번 보기 힘든 눈꽃 절경이라는 소문에 힘든 주차를 하고 올라왔지만, 화장실까지 이용할 수 없다는 점은 정말 참기 힘들다”며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누가 제주를 찾겠나”고 불만을 터뜨렸다.

다행히 이날 오전 화장실 옆 간이 화장실 네칸은 잠시 개방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간이 화장실도 관리가 제대로 안 돼 날씨에 따라 닫혀 있을 때가 많아 탐방객 불만은 여전하다.


요강까지…"무방류 순환식 화장실 개선"


지난달 29일 오전 10시쯤 제주 한라산 1100고지 인근 2차선 갓길에 탐방객 차량이 수백미터 가량 줄지어 주차돼 있다. 최충일 기자
불편을 겪기는 경찰 등 업무 중인 공무원들도 마찬가지다. 현장을 통제하던 자치경찰 관계자는 “시간을 할애해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다른 화장실 가야 하지만 주·정차 전쟁으로 길이 막혀 이마저도 힘들다”며 “이 인근에서 일하는 다른 분들은 출근 후 물 먹지 않고 요강까지 이용한다고 들었다”고 설명했다.

김성남 한라산국립공원 관리소장은 “해당 지역이 보전지역이라 간단한 터파기를 하려 해도 문화재청과 협의 등 절차가 필요하다”며 “이달 안에 간이 화장실 관리 고정 인력을 투입해 관리하고, 내년 이맘때에는 한겨울에도 이용이 가능한 무방류 순환식 공중 화장실로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무방류 순환식 화장실은 사용한 변기 용수를 정화해 재사용할 수 있어 관로가 필요 없다고 한다.

제주=최충일 기자 choi.choo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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