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로 보선 땐 공천 안한다더니… 민주당, 당헌 폐지 나서

주희연 기자 2023. 2. 4.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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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표 때 ‘혁신 조항’… 상황 바뀌자 뒤집기
이재명 대표 뒤로 ‘尹정부 규탄대회 현수막’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3일 국회에서 열린 당 확대간부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이 대표 뒤로 4일 예정된 윤석열 정부 규탄 대회를 알리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덕훈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부정부패 등으로 공석이 된 선출직 자리에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당헌 폐지를 추진하는 것으로 3일 알려졌다. 기소 시 당직을 정지한다는 당헌 80조를 개정해 ‘이재명 대표 방탄’ 논란을 부른 데 이어 ‘부정부패 무공천’ 당헌까지 없애겠다는 것이다. 이 당헌들은 모두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표 시절 만든 ‘반부패 혁신안’의 대표 상품이다. ‘개혁’이라고 해놓고 현실적 어려움이 생기니 내팽개치는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민주당 혁신위원장인 장경태 최고위원은 이날 통화에서 “(민주당 선출직의) 귀책사유로 재·보궐 선거가 치러지는 지역구에 공천을 하지 않는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는 당내 의견이 커 혁신위 차원에서 검토하고 있다”며 “선거 때마다 공천 여부로 논란이 되는 것을 차단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민주당 당헌 제96조 2항은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의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당헌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인 2015년 당 혁신위원회가 만든 것이다. 민주당은 부정부패를 엄단하는 취지로 ‘대국민 약속’이라고 홍보했다. 조국 전 법무장관이 당시 혁신위원으로 참여했다. ‘문재인식 정치적 올바름’을 상징하는 조항이라는 당내 평가까지 나왔다.

그러나 민주당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 사건으로 치러진 2021년 4월 보궐선거에서 이 당헌을 뒤집고 후보를 냈다가 참패를 했다. 당시 민주당은 무공천 원칙을 뒤집기 위해 ‘전(全) 당원 투표’로 공천이 가능하도록 당헌 일부를 개정하는 꼼수를 썼다. 그런데 이제는 아예 ‘부정부패 무공천 원칙’ 자체를 삭제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개인의 잘못을 당에 연결짓는 ‘연좌제’ 성격의 조항은 없애는 게 맞는다”며 “지도부에서도 삭제가 맞는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했다.

이재명 대표는 경기지사 시절인 2020년 7월 민주당이 무공천 원칙을 뒤집고 서울·부산시장 선거에 후보를 내자, “정치인은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무공천이 맞는다고 본다”고 했었다. 하지만 자신이 당 대표가 되자 혁신위를 통해 이 원칙을 폐지하려는 것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8월에도 기소 시 당직을 정지한다는 당헌 80조 개정을 강행해 ‘이재명 사당화’ 논란을 불렀다. 이 대표가 대장동 혐의 등으로 검찰에 기소되더라도 ‘정치 탄압’에 따른 기소로 당이 판단한다면 대표직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당헌 역시 ‘문재인 혁신안’의 일부다. 정청래 최고위원 등 당내 일부 강경파는 당헌 80조를 아예 폐지하자는 주장도 하고 있다. ‘이재명 방탄’을 위해 국민에게 ‘혁신안’이라고 홍보했던 당헌을 손바닥처럼 뒤집으려는 모습이다.

당 안팎에선 민주당이 눈앞의 유불리에 따라 정당의 헌법과 같은 당헌을 쉽게 바꾸려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혁신을 한다면서 ‘부정부패 혁신안’을 없애겠다는 게 논리적으로 말이 되냐”라며 “4월 보궐선거 참패 후 많은 의원들이 모여 반성문을 썼는데, 이제 와서 무공천 원칙마저 없애면 국민 보기에 부끄러울 것”이라고 했다. 다른 중진 의원은 “당헌 개정 분위기는 대체로 강성파와 강성 지지층들의 의도대로 가는 것인데, 민심에서 더 멀어지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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