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혈자 40만명 줄어, 혈액 재고 3.6일치뿐

최은경 기자 2023. 2. 4.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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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곳곳 혈액 수급 ‘빨간불’
“헌혈에 동참해주세요” - 3일 오전 울산시청 광장에서 열린 ‘사랑의 헌혈 봉사의 날’ 행사 참가자들이 헌혈을 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위축된 헌혈 참여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가운데 이날 기준 전국의 혈액 재고 보유량은 3.6일분으로 적정 재고량(5일분)에 못 미쳤다. /뉴시스

“부산 지역은 혈액 재고량이 1월부터 많이 부족해 각 병원이 요청해도 진짜 긴급할 때에만 제한적으로 제공하고 있어요.”

3일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부산지사 관계자는 “조만간 부산시청과 부산보훈병원에서 단체 헌혈 행사를 열어 참여를 호소할 생각”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오후 2시 기준 부산의 혈액 재고 보유량은 3.2일분. 적정 재고량(5일분)에 턱없이 못 미친다. 특히 수요가 많은 O형, A형 재고량은 각각 1.6일분, 2.5일분까지 떨어졌다. 부산뿐 아니다. 이날 전국 혈액 재고 보유량은 3.6일분. 경기 지역의 경우, 문화상품권·영화관람권 추가 증정 행사까지 했지만 재고량이 2.1일분까지 떨어져 비상이 걸렸다.

◇일상 회복에도 헌혈 증가 미미

올 1월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가 폐지되는 등 일상 회복은 본격화하고 있지만 코로나 사태 후 위축된 개인·단체 헌혈 참여 회복은 더딘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에 따르면 올해 1월 헌혈 참여자 수는 총 18만5559명으로, 지난해 1월(17만5710명)에 비해 1만명가량 늘어나는 데 그쳤다. 코로나 직전인 2019년 1월 헌혈 참가자 수 22만3703명에 크게 못 미치는 데다, 지난해 초는 오미크론 변이가 전국에 확산돼 헌혈이 어려운 상황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헌혈 회복세가 매우 더딘 상태다.

통상 연초는 혈액 수급량이 불안정한 대표적인 ‘혈액 보릿고개’ 기간이다. 헌혈 주요 참여자인 10~20대 학생들이 방학 중이라 단체 헌혈이 중단되기 때문이다. 설 연휴와 추위 때문에 헌혈의집을 방문하는 개인 헌혈자도 줄어든다. 최근 3년은 코로나 사태까지 겹치면서 외출자와 직장 단체 헌혈 행사도 급감해 혈액 수급 사정이 더욱 나빠졌다.

지금까지 헌혈에 총 132회 참여했다는 회사원 홍성호(35)씨는 “겨울철이면 헌혈의집의 헌혈 행사 안내 문자가 유독 더 많이 와 혈액 부족을 체감할 수 있다”며 “올 1월엔 사내 게시판에 사흘에 한 번꼴로 지정헌혈(환자·의료기관을 지정해 헌혈하는 것)을 요청하는 사우들의 글이 올라왔다”고 했다.

혈액 부족으로 가장 고생하는 건 환자 당사자와 보호자들이다. 각 지역 혈액원들이 응급 상황으로 혈액 출고를 제한하면, 수술을 앞둔 환자 등에게 의료진이 지정헌혈을 통해 혈액을 확보하라고 요청한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환자 입장에서 실제 현장에서 체감하는 혈액 재고 보유량은 혈액관리본부 공식 수량보다 1.5일 적다”며 “환자들이 인터넷 등에 자기 개인 정보를 모두 노출해가며 지정헌혈을 호소하는 실정”이라고 했다.

◇헌혈 많이 하는 젊은 층 감소 영향 커

코로나 영향에서 벗어나 단체 헌혈이 다시 활성화된다고 해서 혈액 부족 현상이 금방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 수년간 헌혈자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추세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헌혈자 수는 2014년 169만6095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19년 142만 3610명, 2022년 132만7588명으로 8년간 40만명가량 줄었다. 특히 10~20대가 전체 헌혈 건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14년 약 78%(238만2595건)에서 2022년 약 55%(133만6377건)로 크게 줄었다. 저출산으로 이들 연령대 인구가 급격히 감소한 결과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는 “우리나라는 30대 이상 헌혈자 비율이 프랑스(2020년 기준·70%), 일본(82%), 캐나다(80%) 등 다른 나라에 비해 낮아, 10~20대 인구 감소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했다.

혈액 수요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60대 이상 고령층 인구는 늘어나는데 혈액량을 뒷받침해오던 10~20대가 줄어들고 있으니 혈액 재고 관리에 빨간불이 들어온 셈이다. 임영애 아주대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국가혈액관리위원장)는 “저출생·고령화라는 근본적인 인구 구조 변화로 혈액 수급 문제는 더 심각해질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우리 헌혈 문화가 10~20대 중심에서 전 연령대로, 또 학교·회사 단체 헌혈 중심에서 개인 자발적 참여형으로 진화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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