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군용 풍선

이용수 논설위원 2023. 2. 4.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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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12일 서해 상공에서 미확인 비행 물체가 포착돼 공군 F-15K 전투기 편대가 비상 출격했다. 사드 배치에 강력 반발하던 중국의 군용기 10여 대가 사흘 전 한국방공식별구역을 무더기 침범한 사건으로 긴장감이 극에 달한 때였다. 조종사가 근접 비행으로 살펴보니 만화 캐릭터 도라에몽 형상의 풍선이었다. 중국에서 편서풍을 타고 날아온 것으로 추정됐다.

▶풍선의 원리는 주변 공기보다 가벼운 기체를 넣어 공중에 띄우는 것이다. 1783년 프랑스의 몽골피에 형제가 개발한 최초의 열기구는 뜨거운 공기를 썼다. 1852년 프랑스의 앙리 지파르는 풍선에 수소를 넣고 증기 엔진을 달아 비행선을 만들었다. 비행선은 곧 군사용으로 활용됐다. 1차 대전 초반엔 독일 비행선이 런던에 폭탄을 떨어뜨렸다. 하지만 느려터진 비행선은 ‘하늘의 샌드백’이었다. 1937년 뉴저지에서 일어난 힌덴부르크호 폭발 사고로 비행선의 시대는 끝났다.

▶풍선의 군사적 효용에 다시 주목한 건 일본이었다. 태평양 전쟁 당시 미 본토 공격에 이용했다. 폭탄을 매단 풍선에 수소를 채워 9㎞ 상공에 띄우면 제트기류를 타고 북미 대륙까지 날아간다는 원리였다. 거대한 산불을 일으켜 미국을 패닉에 빠뜨리려 했다. 1944년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9000개 이상을 날려보냈다. 미국에서 실제 관측된 건 수백 개였고 제대로 폭발한 것은 없었다. 1945년 5월 오리건의 한 숲에서 소풍 나온 아이들과 인솔자가 나무에 걸려있던 이 풍선 폭탄을 잘못 건드려 일행이 숨진 게 유일한 ‘전과(戰果)’였다.

▶냉전 시기 뮌헨에 있던 미국 자유유럽방송은 기상 관측용 풍선 35만개를 동쪽으로 날려보냈다. 공산당 압제를 풍자·비판하는 전단 수억 장이 동유럽 각국에 뿌려졌다. 공산 정권들은 대공화기로 격추에 나서는 등 민감하게 반응했다. 주민 동요가 심각했다는 뜻이다. 훗날 ‘풍선이 철의 장막을 뚫었다’는 말이 나왔다. 한국 민간 단체들의 대북 전단 살포는 이를 모델로 한 것이다.

▶지난 1일 핵미사일 격납고가 있는 미 몬태나주 상공에서 버스 3대 크기의 대형 풍선이 목격됐다. 현재 미 대륙을 횡단 중인 이 풍선은 중국에서 출발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군 당국은 F-22를 출격시켰지만 격추하지 않고 추적·감시만 하고 있다. 파편 낙하에 따른 주민 피해를 우려해서다. 고성능 정찰 위성의 시대에 풍선이라니 언뜻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라고 한다. 인간은 모든 신기술을 군사용으로 이용한다지만 21세기에 군용 풍선이라니 화제가 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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