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포비아’에 떠는 MZ세대… “학원서 대면 스피치 배워요”

이소연 기자 2023. 2. 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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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청년들, 엔데믹에 대면생활 늘자 ‘전화 소통’ 공포
사회적 거리두기로 ‘대면 실종’… 통화보다 비대면 메시지에 익숙
MZ세대 30% “콜포비아 겪어”, 신입사원 연수-신입생 OT 등
빠르게 대면생활 전환되면서 ‘말하기’ 두려움 극복 강의 들어
《‘전화공포증’ 호소하는 MZ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비대면 메신저에 익숙해진 청년들이 ‘콜포비아(전화공포증)’를 호소하고 있다. 전화는 물론 ‘말하기’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학원가를 찾은 이들의 사연을 들어봤다.》



#. 회사원 김명수 씨(34)는 휴대전화 벨이 울리며 상사의 이름이 뜨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평소에는 회사 업무가 아니라면 누군가와 전화를 주고받을 일이 별로 없다. 가족, 친구들과는 주로 카카오톡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이야기를 나눈다. 김 씨는 “업무 전화 통화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는데, 입사하고 나니 상사부터 고객까지 전화로 응대하는 게 기본이었다”며 “전화를 받는 게 두렵다는 걸 회사에 다니면서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 올 초부터 공공기관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대학생 A 씨(27)는 지난해 12월 말 출근이 확정되자 “기본적인 전화 에티켓이라도 배워 둬야 할 것 같다”며 부랴부랴 서울 강남구의 한 스피치학원에 등록했다. A 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심각했을 당시 대학이 비대면 수업을 한 탓에 면접 준비 강의나 대면 스피치 강좌를 수강하지 못했다. 첫 출근을 앞둔 A 씨는 “앞으로 상사에게 전화로 보고할 일이 많을 것 같은데,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대면 전환되자 수면 위로 드러난 ‘콜포비아’

최근 코로나19 사태가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으로 접어들면서 비대면에서 대면 생활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신입사원 연수나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OT) 등도 속속 재개되는 가운데 ‘말하기’에 대한 두려움에 스피치학원을 찾는 이들도 늘고 있다. 특히 일부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사회적 교류가 줄어들었던 팬데믹 기간 ‘콜포비아(Call Phobia·전화 공포증)’가 생겼다는 이들도 꽤 된다.

구인구직 포털 알바천국이 지난해 9월 콜포비아와 관련해 MZ세대 2735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의 29.9%가 ‘콜포비아를 겪고 있다’고 답했다. ‘가장 선호하는 소통 방식’으로는 응답자의 61.4%가 문자나 SNS와 같은 텍스트를 꼽았다. 반면 전화 소통(18.1%)은 대면 소통(18.5%)보다도 낮은 3위를 차지했다.

이에 따라 전문가와 수강생을 연결하는 온라인 플랫폼 등에는 전화 스피치 강의가 성행하고 있다. 특히 스피치학원에는 MZ세대가 적지 않다고 한다. 서울 마포구 U스피치학원의 신유아 원장은 “전체 수강생의 4분의 1가량은 전화 대화에 어려움을 겪는 20, 30대”라며 “이제는 상담을 받으러 온 이들에게 ‘전화로 말하는 건 어떤지’라는 물음을 기본으로 던질 정도”라고 했다.

상대적으로 젊은층에서 콜포비아를 호소하는 이들이 많은 것은 코로나19 탓으로 풀이된다. 코로나19가 심각했던 기간에 대학에 입학한 이들은 비대면 수업이 전면적으로 실시되면서 동기, 선후배와 얼굴을 직접 보며 제대로 교류하지 못했다. 직장에 취업한 이들 역시 올해 2, 3년 차가 됐다고 해도 재택근무를 하며 메신저를 통한 의사소통에 익숙해진 경우가 적지 않다.

서울 마포구 U스피치학원에서 1일 오후 회사원 김명수 씨(오른쪽)가 신유아 원장의 강의를 듣고 있다. 김 씨는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건 괜찮은데 전화로 대화하는 건 잘 익숙해지지 않는다”며 “입사 후 전화 받는 법이나 대면 보고법을 따로 배운 적이 없어 학원에서 익히고 있다”고 말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지난해 12월 말 마포구의 스피치학원을 찾은 이모 씨(21)도 그런 경우다. 이 씨는 “고등학생 때는 교내 영어 말하기 대회에서 상을 탔을 정도로 말하기에 자신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2020년 대학 입학과 동시에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달라졌다. 고향을 떠나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서울에 온 이 씨는 대학 기숙사에서 룸메이트도 없이 홀로 지냈는데 대학 동아리 활동 등 대면 활동도 거의 중단돼 대인 관계가 많이 위축됐다고 한다. 이 씨는 “3년 동안 대학 강의를 대부분 비대면으로 들은 데다 기숙사에서 혼자 지내는 날이 많아지면서 한마디도 하지 않고 일주일을 보내는 때가 늘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택배나 배달 전화를 받는 일조차 꺼려진다”고 털어놨다.

신 원장은 “과거에는 대학이나 직장에서 직접 부딪치며 자연스럽게 전화나 대면으로 말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했다면 지난 3년 동안에는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일상화하면서 이런 기회가 사라졌던 것”이라고 했다.

●비대면 메신저가 ‘소통 뉴노멀’ 돼

일부 청년들의 콜포비아는 문제라기보다는 의사소통 수단의 변화에 따른 현상일 뿐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SNS가 점점 더 일상을 파고드는 현실에서 전화가 익숙지 않은 이들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는 얘기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전화 통화를 꺼리는 건 청년들의 잘못이 아닌 메신저 플랫폼 다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최근 회사에 입사하기 시작한 2000년대생들은 가정에서조차 유선전화기를 본 적 없는 첫 세대”라며 “이들에게 전화는 ‘스마트폰’을 뜻한다. 전화는 유일한 원거리 대화 수단이 아니라 문자나 SNS와 같은 여러 소통 수단 중 하나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고령층이 디지털기기를 이용한 소통을 어려워하는 것처럼 젊은 세대가 전화 통화를 낯설어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얘기다. 실제 알바천국이 지난해 9월 발표한 MZ세대 콜포비아 실태 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에 가까운 46.6%는 “문자, 메신저 등 텍스트 소통에 익숙해지다 보니 전화 통화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답했다.

이 교수는 “진짜 문제는 지난 3년 동안 코로나19 확산으로 직장과 학교마저 온라인 비대면으로 전환하면서 젊은 세대가 전화나 대면 등 육성 커뮤니케이션에 적응할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제공받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달 인천 중구 SK 무의연수원에서 열린 ‘SK이노베이션 신입사원 연수’에서 전화 등 업무 의사소통 능력 향상을 위한 강연이 진행되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제공


일부 기업들은 전화 통화에 익숙하지 않은 ‘코로나 세대’의 입사에 맞춰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전화 받는 법 정도는 신입사원이 이미 아는 기본 에티켓’이라고 여겼던 데서 변화하고 있는 것.

지난달 16일 진행된 SK이노베이션의 신입사원 연수에서는 “모르는 사람과 전화로 얘기할 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 “사내 또는 사외 분들과 전화로 대화할 때는 어떤 점에 유의해야 할까요” 같은 질문이 이어졌다고 한다. 이에 회사는 비즈니스 매너 교육 과정에 전화 에티켓을 추가했다. 전문 강사가 업무 전화 상황을 재현하면서 “전화를 걸거나 받을 때에는 본인 소속과 이름을 밝히고 용건을 말해야 하고, 전화를 걸 땐 상대가 통화 가능한 상황인지를 묻는 게 예의”라고 가르쳤다. 이 회사는 지난달 말부터 사내 상담센터에서 대면 업무 전환으로 인한 어려움이 없는지 관련 상담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대인 커뮤니케이션 교육 강화해야”

학교에서 전화 통화를 포함한 대인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지난해 8월 박희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가 강의하는 ‘대인 커뮤니케이션’ 강좌에는 대기자만 150명이 몰렸다. 코로나19 확산 후 2년 반 만에 대면으로 진행되는 커뮤니케이션 강좌가 열리자 수강신청 대란이 벌어진 것이다. 박희선 교수는 “10년 동안 강의하면서 수강 인원 35명인 이 수업의 대기자 수가 150명을 넘긴 건 처음이었다”며 “대면 생활로 바뀌면서 대인 커뮤니케이션을 배워야 할 필요성은 커진 반면 관련 강의는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비대면 소통이 뉴 노멀(New normal)이 된 지금 대면 적응을 위해 교육기관이 ‘커뮤니케이션’ 강좌를 확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초중고교에서도 관련 교육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이동귀 교수는 “‘노 마스크’로 얼굴을 맞대며 살아야 하는 대면 생활로 전환되고 있지만 이미 지난 3년 동안의 비대면 메신저 중심 소통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며 “초중고교 정규 교육과정에도 대면 커뮤니케이션 강의를 열어 학생들의 적응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핵가족화가 일반화된 오늘날 어린이와 청소년이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과 소통할 경험이 적은 만큼 커뮤니케이션 교육의 필요성은 더욱 크다”고 덧붙였다.

기업에서는 젊은 세대에게 익숙한 대화 방식과 소통 플랫폼을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박희선 교수는 “전화나 대면 커뮤니케이션은 여전히 중요한 소통 수단이지만 중요한 건 세대 간 양방향 소통”이라며 “젊은 세대만 기성세대에 맞출 것이 아니라 기성세대도 요즘 청년들이 쓰는 메신저나 소통법을 익히며 서로 맞춰 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른 사람과 전화하는 목소리 녹음해 모니터링 해보세요”




스피치-커뮤니케이션 전문가 3명이 추천하는 ‘콜포비아 극복법’
전화 상황 재현하는 연습 필요
핵심내용 요약 메모하는 습관을


‘콜포비아’를 이겨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스피치·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와 박희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신유아 U스피치 원장이 구체적인 방법을 제안했다.

신 원장은 콜포비아를 호소하는 수강생들에게 가장 먼저 “다른 사람과 전화하는 내 목소리를 녹음해 모니터링을 해 보라”고 조언한다. 통화 내용을 돌아보면서 스스로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게 변화의 시작일 수 있다는 것. 그는 “전화 통화로 말하다 보면 평소 대화할 때와는 다르게 목소리가 작아진다거나 말끝이 짧아지는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며 “나도 몰랐던 전화 습관을 파악하려면 모니터링은 필수”라고 말했다.

전화 상황을 재현하는 연습도 필요하다. 이 교수는 “요즘 청년들은 나이가 많고 직급이 높은 상사와 대화할 때 쓰는 표현에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며 “가족이나 친구처럼 가까운 사람들과 다양한 전화 상황을 재현해 보면서 필요한 단어나 표현을 익히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전화를 걸고 받는 일에 익숙해졌다면 그 다음은 전화 통화에서 핵심 내용을 요약해 메모하는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 미리 대본을 적어 두는 것은 추천하지 않았다. 상황에 맞는 대응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통화 중 떠오르는 핵심 키워드 2, 3가지를 간략하게 메모하면서 다음에 이어 나갈 주제를 미리 생각해두다 보면 업무 전화도 쉽게 이해하며 소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기성세대 중 일부가 권위적인 방식으로 전화를 한다며 이런 태도는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박 교수는 “콜포비아를 겪고 있는 사람이 스스로 노력하는 일도 필요하지만 자기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거나 전화 통화를 어려워하는 이들을 다그치는 건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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