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지친 게 아니라… 성취감이 없을 때 ‘번아웃’은 온다

채민기 기자 2023. 2. 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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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대학 종신 교수의 번아웃 탈출기

번아웃의 종말

조나단 말레식 지음|송섬별 옮김|메디치미디어|352쪽|2만3000원

전직 교수, 초밥 요리사, 주차장 직원으로 소개된 저자는 번아웃(업무로 인한 탈진)으로 고통받다가 미국 킹스 칼리지의 신학 종신 교수직을 내려놓았다. 번아웃과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가장 무관해 보이는 삶을 살았는데도 그랬다.

젊어서 꿈꾼 신학자가 됐고, 높은 자율성과 안정성을 보장받았으며, 급여도 넉넉했다. 그러나 일에서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열의 없는 학생들 앞에서 공허한 강의를 했다. 종일 연구실에 틀어박혀 표절 답안지를 가려냈다. 좌절감에 사로잡혔다. 까닭 모를 통증에 시달렸다. 교수를 그만두기로 결심한 그는 번아웃에 대한 논문을 찾아 읽으며 자신의 상태를 이 말로 규정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번아웃, 개인의 문제 아닌 ‘문화’

이 책은 엄밀한 의학적 연구보다는 번아웃에 대한 역사적·문화적, 그리고 개인적인 고찰이다. 이 책의 한계인 동시에 강점이다. 저자는 번아웃이 ‘일의 이상과 현실이 괴리된 상태’라고 설명한다. 학계에서 공인된 정의가 아니라 사적 체험에 기반한 규정에 가깝다. 번아웃을 임상적으로 진단하고 치료법을 제시하지는 못하지만, 내밀한 고백은 비슷한 고통에 시달리는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저자에게도 논문을 탐독하는 동안 “이해받는 기분”을 느낀 것이 번아웃 탈출의 첫걸음이었다.

번아웃(burn out)이라는 말은 ‘타서 없어지다’라는 뜻. 소진(燒盡)이라는 단어와도 의미가 일치한다. 이는 다 타버린 촛불처럼 지친 개인에만 주목하기 쉽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러나 번아웃은 개인의 상태가 아니라 문화이며 1970년대 이후 미국에서 점차 공고해졌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 시기 들어 비정규직이 증가하고 실질 임금이 하락했다. 또 근로자를 자원이 아니라 비용으로 보는 시각이 확고해지면서 지속적으로 근로 조건이 악화되고 스트레스는 커졌다는 분석이다.

일에 대한 이상이 너무나 커져버린 점도 문제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성경의 격언대로 일은 곧 생존의 방편일 뿐이었다. 그러나 미국 사회를 지배해온 청교도 윤리에서는 일이 인간의 존엄성처럼 더 고귀한 무언가를 의미한다고 본다. 스티브 잡스의 1985년 인터뷰에서 이런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여기서 잡스는 수익 목표를 ‘무의미한 것’으로 언급한 뒤 “자신의 한계를 넘어 우주에 작은 흠집이라도 남기기를 진정으로 원하는 사람들”이 애플에서 “하루 18시간씩 일한다”고 했다.

번아웃이라는 현상을 1970년대 이후 미국 사회의 맥락에서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이 오늘날 한국 사회에도 시사점을 준다. 긴 노동시간으로 늘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선두권을 다투는 나라에서 여전히 근로자들이 ‘열정’이라는 이름의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지는 않은지. 번아웃이 한계까지 열심히 일했다는 일종의 훈장처럼 통용되고 있지는 않은지.

◇팬데믹을 닮은 번아웃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대안을 모색하면서 저자는 교수가 되기 전 주차장 아르바이트 시절을 회상한다. 그 일이 자신의 미래라고 믿지 않았기에 만족했던 시절이다.

번아웃 문화에서 탈출을 시도한 사람들도 만나본다. 이를테면 미국 뉴멕시코주의 가톨릭 수도자들. 자급자족을 위해 웹페이지 디자인 서비스를 시작했다가 주문이 기대 이상으로 밀려들자 사업을 확장하는 대신 접어버렸다. 이들에겐 기도가 일보다 중요했기 때문. 최소한의 노동으로 살아가는 장애 예술가나, 오후에 자전거를 타기 위해 야간에만 근무하는 아마추어 사이클리스트도 등장한다. 메시지는 간단하다. 일이 삶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 일하기 위해 살지 말고, 살기 위해 일하면 족하다는 것.

너무나 당위적인 나머지 허무하게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는 최근의 코로나 팬데믹을 언급하며 여기에 시의성을 부여한다. 격리와 재택근무는 일을 중심으로 엄격하게 짜여졌던 하루의 일과를 재구성했다. 사람들이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더 많은 여유를 누리면서도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일과 삶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할 수 있는 공간이 열렸다.

번아웃 자체가 코로나와 비슷한 속성이 있다. “우리는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번아웃을 겪게 된다. 모두가 잠재적인 희생자인 동시에 잠재적 매개체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이 상호작용을 다시 상상하고 문화를 변화시키며 번아웃이라는 팬데믹을 끝낼 수 있을 것이다.” 팬데믹의 끝자락에서 많은 기업들이 새로운 일의 방식을 고민하는 지금이 번아웃을 이야기하기에도 최적의 시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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