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돌봄의 자전거 바퀴

기자 2023. 2. 4.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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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안에 어린아이가 있다는 말은 생활에 계획을 세우기 어렵다는 말과 비슷한 의미다. 통제할 수 없는 일이 생긴다. 아이의 감정과 몸의 상태는 수시로 달라지기 때문에 어른들끼리 어떤 일을 도모할 때처럼 예측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아이는 이해하기 힘든 이유로 종종 담벼락처럼 버티거나 운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엉뚱한 곳으로 굴러가버리는 공을 잡을 때처럼 달리고 멈추고 앉고 일어서는 순간의 반복이다.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아동문학평론가

미카엘라 치리프와 호아킨 캄프의 그림책 <아이 달래기 대작전>은 한밤중 공동주택에서 그치지 않고 우는 아기 엘리사와 이웃들의 이야기다. 처음에 고양이처럼 칭얼대던 아기는 결국 소방차처럼 울고 가족들은 어떻게든 달래려고 안간힘을 쓴다. 가만히 참기 힘들었던 이웃들이 이 집으로 모여든다. 8층 아저씨는 이야기책, 2층 아주머니는 꽃다발을 들고 왔지만 아기는 점점 더 운다. 다들 출근 준비도 하지 못한 채 날이 밝아버렸다. 엘리사를 잠재운 것은 동네에서 귀가 가장 어두우며, 아침이 되어서야 대소동을 알게 된 고령자인 엘리사의 할머니다. 할머니는 아기의 두 발을 부드럽게 붙잡더니 자전거를 타는 것처럼 살살 움직인다. 아기는 호루라기 주전자 마흔두 개에서 물이 끓는 소리만큼 커다란 방귀를 뀌고 잠든다. 엘리사는 배가 아팠던 것이다.

이처럼 돌봄은 스토리가 있는 노동이다. 상황 의존적이라 “몇 시까지는 제가 참아볼 테니 그 뒤로는 안 울게 해주세요”라는 세련된 요청이 헛수고가 되기도 하고 “얼마면 될까요?”라며 돈으로 매끈하게 해결 가능한 일도 아니다. <사랑의 노동>을 쓴 매들린 번팅은 “아이가 있으면 늘 사건이 생겼다”고 육아를 회상한다. 아기가 되었든, 아픈 노인이 되었든 시간을 목적 지향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돌봄 상황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돌봄을 뜻하는 ‘케어(care)’의 어원에는 ‘마음의 부담’을 뜻하는 고대 게르만어 ‘카라(chara)’가 있다고 한다. 애초부터 산뜻할 수가 없다는 얘기다.

돌봄은 공동체적이고 순환적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내가 돕지만 다음에는 내가 남의 돌봄을 받을 수 있기에 돌봄의 바퀴가 굴러야 사회가 움직인다. 그런데 요즘은 빈폴 가족(beanpole family)이 늘어나고 있어서 돌봄의 선순환이 일어나기 어렵다. 사회학자 데이비드 햄펀에 따르면 빈폴 가족이란 “형제자매가 적어 삼촌, 이모 등 옆으로 퍼지지는 않고 고령화로 인해 위아래로만 길게 늘어진 구조의 가족 형태”를 말한다. 그는 핵가족 중심의 돌봄 시스템이 콩 넝쿨 지지대가 쓰러지듯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위험한 상태에 있다고 지적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나는 마을 방과후교사입니다>는 하교 후 어린이를 돌보는 ‘도토리마을 방과후’ 교사들의 일상을 담은 작품이다. 초등학생 60명이 다섯 명의 교사와 어울려 보낸다. 비대면 시대, 든든한 돌봄의 기록이 뭉클하게 담겨 있다. 영화에 등장하기도 했던 주율 어린이는 도토리마을 방과후에서 얻은 것을 묻자 “친구들과 재미있는 놀이를 많이 했다”고 대답했다. 양육자와 교사의 끝없는 회의 장면은 왜 돌봄이 마을의 과제인지 보여준다. 정부는 2025년부터 저녁 8시까지 초등돌봄교실을 연장하겠다고 대책을 내놓았다. 돌봄은 시간의 양으로 건조하게 다루기 힘든 복잡하고 예술에 가까운 노동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지난 몇 년간 볼 수 없었던, 최고로 기분 좋은 아이들 얼굴을 만났지만 영화가 끝나도 웃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도토리마을 방과후도 녹록지 않다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놓인 현실은 도토리마을조차도 아니기 때문이다. 아동 돌봄 노동의 노동조건은 다른 업계보다 매우 열악하다. 돌봄은 사랑 없이 불가능한 노동이지만 사랑을 앞세워 부탁해서는 안 되는 노동이다. 더 늦기 전에 우리가 함께 8층 아저씨, 2층 아주머니가 되어 돌봄의 자전거 바퀴를 함께 굴려야 할 때다. 혼자만 잠드는 편안한 밤은 원래 없다.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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