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농촌유학, 흔들리면 안 된다

기자 2023. 2. 4.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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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서울시의회와 서울시교육청이 서로 다른 정치 성향으로 여러 갈등을 빚는 가운데 서울 학생들의 ‘농촌유학’ 프로그램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 농촌유학은 지속 가능한 미래를 준비하는 생태전환교육의 주요 사업으로 2021년 1학기부터 시작해 학기별로 네 번에 걸쳐 지원자를 모집했고, 현재 2023년 1학기 지원자를 모집 중이다. 지금까지는 전남교육청 및 전남의 19개 시·군, 전북교육청 및 전북의 4개 시·군과 협력해 서울의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2학년 사이의 학생들이 주로 가족 단위로 또는 혼자 한 학기에서 일 년까지 체류하면서 현지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서울시교육청과 도교육청, 지자체가 지원해왔다. 학기별로 참가자가 81명, 147명, 195명, 263명으로 늘어나다가 현재는 신청자가 100명 아래로 떨어졌다.

한윤정 전환연구자

농촌유학 프로그램에 필요한 서울시교육청의 2023년 예산은 10억원이다. 연간 12조원이 넘는 교육예산 규모에 비춰볼 때 결코 많은 액수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미 현지에 내려간 학생과 가족들의 불편과 불안, 새로 신청하려던 이들의 실망을 감수하면서까지 서울시의회가 농촌유학 예산을 삭감한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 단, 농촌유학에 대한 한 보수논객의 과거 칼럼이 언뜻 떠오른다. “한 학기 내내 생소한 학습환경과 이질적인 생활환경에 적응하려고 힘겨워하다가 학업수준 저하와 변화 기피증을 안고 돌아오기가 쉬울 것” “영문 모르는 학동들을 농촌학교 존속의 볼모로 삼겠다는 아이디어는 필시 중국의 문화혁명 당시 도시 청년들을 농촌으로 보냈던 ‘하방’(下放)에서 따온 것”이라는 내용을 보면서 실소를 금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지난해 3선에 성공한 이후 농산어촌 유학(강원도와 경상남·북도로 대상지를 넓힐 계획이었다)을 서울의 대표 교육정책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혀왔다. 기후위기 시대에 학생들의 생태 감수성을 키울 수 있을 뿐 아니라 지방 소규모 학교의 소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취지다. 지방에 사는 예술가와 연계해 음악, 미술, 문학을 배우거나 산촌에서의 아토피 치료, 전남 고흥군 나로도에서의 우주교육 등 지역특화 프로그램도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서울 역시 학생 수가 줄어드는 마당에 적은 숫자나마 서울 학생들을 지방으로 보낸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서울 학생들이 지나친 경쟁교육으로 힘들어하는 만큼 돌파구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농촌유학의 의미를 따져보기 전에, 진보 교육감의 대표 정책이기에 좌절시키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러나 농촌유학에 대한 반대도, 찬성도 어쩌면 탁상공론일 것이다. 현실은 생각보다 생생하고 의외의 사건들로 가득하다. 농촌유학의 현실이 궁금했던 차에, 지난 2일 KBS 1TV에서 방영된 <다큐 인사이트> ‘곡성침공’ 편을 보게 됐다. 전교생이 13명뿐인 전남 곡성군 오산초등학교에 현지 학생 수보다 더 많은 서울 학생들이 ‘들이닥쳤다’. 다큐멘터리는 같은 6학년인 재학생 양은혁과 유학생 김지산의 긴장과 갈등, 화해의 과정을 그린다. 지산네 가족이 아이의 만족도와 학업에 대한 걱정 사이에서 언제 서울로 돌아갈지 고심하는 대목도 나온다. 유학생들이 전교 회장, 부회장 자리를 다 차지하자 재학생 은혁이 “곡성 오산초등학교가 아니라 서울 오산초등학교가 됐어요”라고 푸념하는 부분에서 웃음이 터졌다. 귀농귀촌한 외지인들이 현지인들과 겪는 갈등과 다르지 않다. 그래도 아이들은 쉽게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되어 마지막에는 함께 ‘서울침공’에 나선다.

농촌유학에서 생태 감수성이나 지방 학교의 소멸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관계 맺는 방법을 배우는 데 있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 도시와 농촌의 관계, 사람 사이의 관계를 배우는 것이 생태전환교육의 핵심일 것이다. 농촌유학을 갔던 서울 학생 중 일부는 지원기간을 넘겨 현지에 계속 체류한다. 그러나 짧게는 한 학기만 지내다 돌아오더라도 서울과 자신이 머물던 현지 학교의 거리만큼 생각과 행동의 반경은 넓어질 것이다. 그러고보니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에는 서울과 농촌의 학교가 자매결연을 맺고 농촌 친구들이 서울에 와 며칠간 학생들의 집에서 머물렀던 생각이 난다. 그 아이들이 자라서 서울로 오려는 꿈을 꾸었다면 농촌유학을 경험한 학생들은 자라서 지역으로 가려는 꿈을 꿀 것이다. 이제 시대가 바뀌어 농사와 농촌으로부터 배울 것이 많고 일자리가 생긴다는 점은 분명하다.

한윤정 전환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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