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코리아] 사라진 진보의 웃음을 찾습니다
여성 캐릭터 적다고 “성 차별”
툭하면 ‘정치적 올바름’ 잣대
웃음 잃어버린 진보의 엄숙주의
1990년대 만화 슬램덩크를 영화화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인기가 뜨겁다. 청소년 시절 슬램덩크에 빠졌던 3040세대의 향수를 자극하며 개봉한 지 약 한 달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덩달아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에 올라온 원작 애니메이션의 조회 수도 급증하고 있다.
그런데 이 슬램덩크가 최근 예상치 못한 비판에 직면했다. 한 칼럼니스트가 모 매체 칼럼을 통해 슬램덩크가 운동선수는 남성으로, 매니저는 여성으로 그림으로써 “이분법적인 성 역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비판한 게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것이다. 그는 여성인 채소연이 매니저라는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러 있고, 서태웅의 여성 응원단 역시 이름도 역할도 없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건 선수들이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경기장 밖에서 헌신하는 매니저라는 역할의 중요성과, 모든 스타는 수많은 무명의 팬들이 있기에 빛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무엇보다 남자 농구부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다룬 학원물에 여성 등장인물이 적다고 그걸 성차별이라고 할 수 있는지부터가 의문이다.
적어도 청년층에서 이런 비판은 낯설지 않다. 2010년대부터 온라인에선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움직임이 형성되었고, 특히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극단적인 엄숙주의가 요구되기 시작했다. 2014년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노홍철의 소개팅 상대를 찾아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가 “외모 지상주의를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고 제작진이 사과문을 올렸던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출연진은 사과의 의미로 서로 곤장을 때리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는데, 그것이 옳으냐 그르냐를 놓고 청년층에서 큰 논쟁이 일기도 했다. 확실한 건 그때 그 곤장이 일종의 본보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방송가는 혹여나 자기 프로그램도 ‘사회적 곤장’을 맞지는 않을까 자기 검열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청자들은 과장된 효능감과 거기서 비롯되는 일종의 정의감을 느꼈고, 상상력에 족쇄를 채우며 프로그램을 원하는 대로 이끌고자 했다.
물론 나는 개인적으로 불편함을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응원한다. 남들이 쉬쉬하는 사회의 치부를 드러낼 때 세상은 변화한다. ‘정상인’이라는 범주가 정해지고 모두가 여기에 들고자 아등바등하는 사회에선 약자들이 설 곳이 없다. 다행히 우리의 보편적 정서도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장애인에 관한 이야기를 따뜻하게 그려낸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나 최근 학폭에 대해 사회적 관심을 환기한 드라마 ‘더 글로리’가 큰 인기를 얻은 게 좋은 사례다.
문제는 메시지가 국민의 보편적인 생각, 즉 상식에서 벗어나기 시작할 때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 모든 상황을 억지로 불편하게 만드는 건 사회 구성원 사이에 없던 갈등을 양산하고 심화한다. 보통 거기에는 온갖 철학과 현란한 수사가 동원되는데 그럴수록 사람들 사이에 세워진 장벽은 높아진다. 사실 보수든 진보든 정치적 올바름이나 엄숙주의를 강조한다고 딱히 더 도덕적인 건 아니다. 본인들도 지키기 어려운 엄격한 도덕률은 내부적 모순에 봉착하기 마련이고, 이때마다 자기 진영의 모순에는 눈감은 내로남불이 오늘날 진보 정당들에 위기를 가져왔다.
원래 풍자와 해학은 진보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고 노회찬 전 의원의 숱한 명언들은 웃음을 통해 권력에 맞서고 진보 정치를 대중 속에 들어가게 하는 장치였다. 그런데 이제는 진보에서 그와 같은 풍자와 해학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저 불편함만 남아 보편적인 대중의 정서와 멀어져가고 있을 뿐이다. 잃어버린 웃음을 되찾을 때, 비로소 진보는 다시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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