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위험을 무릅쓰고 ‘옳은’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신순규 시각장애인·BBH 시니어 애널리스트 2023. 2. 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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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신순규의 월가에서 온 편지]
투자와 인생에서 내려야 할 결단
감사기도 하다 울적해진 사연

내게서 감사와 기쁨이 없는 마음을 발견할 때가 있다. 약 3주 반 전, 매년 찾아오는 생일 새벽에 묵상할 때였다. 항상 그랬듯 내 삶을 오랫동안 신실하게 지켜주고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그런데 워낙 감사하는 문구들을 자주 말로 내뱉다 보니, 문구들이 자연스럽게 외워지고, 그렇게 입에 붙은 문장 몇 개를 별 감정 없이 내뱉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매년 생일 어렸을 때부터 현재까지 내 삶에 있었던 감사해야 할 일들을 일일이 읊는 대신 최근 내가 정말로 기뻐하며 감사했던 기억을 찾아보려고 노력했다. 놀랍게도 그런 기억은 12월 중순까지, 그러니까 3주 이상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서야 겨우 하나 찾아낼 수 있었다.

일러스트=한상엽

12월 중순, 아내 그레이스가 짧은 동영상 하나를 받았다. 한 여자아이가 소리 내 엉엉 울고 있는 동영상이었다. 영상 속 아이는 우리가 아는 ‘기쁨이(영어 이름을 한국 단어로 번역한 가명)’다. 기쁨이는 우리 딸 예진이처럼 나와 지인들이 한국 보육원 아이들을 위해 운영하는 ‘야나(YANA) 미니스트리’를 통해 미국으로 오게 된 친구다. 기쁨이도 보육원을 떠나 북뉴저지에 살고 있는 가정에서 딸·자매처럼 약 6년간 생활을 해 왔다. 우리가 예진이를 딸로 여기듯 기쁨이를 돌본 야나 호스트 부모도 그 아이를 친딸처럼 여기며 양육해 왔다. 기쁨이는 자신이 그렇게 가고 싶어 했던 남캘리포니아의 한 명문 대학교에서 수시 합격 소식을 받고 너무 좋은 나머지 소리 내 울었단다. 나와 아내는 물론,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야나 재단의 식구들이 기쁨이와 기쁨이 부모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그중에는 본인의 자녀가 수시로 응시한 대학에 불합격한 이들도 있었지만, 그와 상관없이 기쁨이의 합격 소식을 같이 기뻐해 주고 감사해주었다.

문제는 최근에 얼마나 기억에 남을 만한 기쁜 일과 감사할 일이 드물었으면 3주 이상의 공백이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21세기라는 복잡한 세상에 살면서 어떻게 매일, 매주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을까’ 하는 당연한 의문에도 물론 일리가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 1년 365일 지속될 수 없듯이 항상 기뻐하며 감사하는 나날을 지속해 보내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3주 넘게 회색빛 나날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것 역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래서 며칠 전 새벽에 집 사무실 문을 닫고 곰곰이 생각하며 나를 괴롭히는 것들을 몇 개 적어보았다. 왜 내 마음이 계속 무거운 걸까? 감사보다 안타까움이, 기쁨보다 염려가, 사랑이나 은혜보다 비판과 미움이 내 뇌리에 차 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따지고 보면 작년처럼 증권 일을 하는 이들에게 힘들었을 때도 드물었던 것 같다. 주식도 채권도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월가에는 보너스가 많이 내려갈 거란 소문이 돌고 있다. 게다가 골드만삭스는 약 3000명의 직원을 감원한다는 발표를 했고, 오랫동안 ‘핫’했던 기술 분야 기업들인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트위터, 메타(페이스북) 등도 꽤 큰 감원을 단행하고 있다. 가까운 지인들로부터 이혼 소식, 가족 사망 소식 등이 들려오고, 나를 15살 때부터 키워주신 92세 아버지와 대화할 때면 17년 넘도록 혼자 살고 계신 분의 쓸쓸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내 마음에 크게 자리 잡게 된 울화를 설명하진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나 자신의 비겁함이 아닐까 하는 결론을 피할 수 없었다. 작년 9월부터 내가 15년간 가까이 지내왔고, 무척 존경하는 한 친구를 괴롭히고, 친구의 사회적 지위를 끌어내리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게다가 그 친구는 나처럼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잠자코 있어 달라며 나서서 다른 이들을 공격하지 말라는 부탁을 해왔다. 그러나 그를 밀어내려는 이들의 공격은 더 심해지고 방법은 더욱 비열해져만 갔다. 친구에 대한 유언비어가 가득 적힌 문서를 많은 이들에게 배포하는 등, 정치판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들로 내 친구를 괴롭히는 그들을 생각하면 너무 화가 났다. 또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도 화병을 키웠다.

전체 상황을 돌이켜보면 내가 심장마비를 의심할 만큼의 진통까지 경험하게 되었던 주된 이유는 부당한 것을 보고도 억지로 유지했던 침묵만이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내가 침묵을 선택한 동기, 나를 보호하려는 이기적인 동기가 내 화병을 더 심각하게 만들었다고 결론 내렸다. 나는 외부로부터 주목받는 것을 싫어하는 회사에서 근무하는 월가의 애널리스트다. 한국에서는 정기적으로 칼럼을 쓰고, 책을 출간한 작가이자 종종 강연 요청을 받는 강사이기도 하다. 또 한국 보육원에서 자라는 친구들을 돕는 야나 재단을 오랫동안 운영했다. 따라서 불미스러운 분쟁에 개입된다면, 잃을 것이 많은 사람이라고 판단했었다. 그래서 내가 관계된 단체들과 자신의 평판을 보호하기 위해 소중한 친구가 당하고 있는 부당함을 애써 무시했던 것이다.

투자에 관한 결정을 할 때처럼, 살다 보면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옳은’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이제 나는 내 친구를 위해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사실관계를 통해 친구에 대한 유언비어를 바로잡으려고 애쓸 것이다. 정정당당하게 내 의견을 마음이 열린 이들에게 공유할 것이다. 내 친구에게 비판적인 의견을 떳떳하게 말해주는 이들에게도 귀를 기울일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선한 일을 하는 것(Doing Good)’보다 ‘잘, 올바른 방법으로 하는 것(Doing Well)’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지혜가 친구를 돕기로 한 나의 지침이 될 것이다. 드디어 가슴에, 마음에 평안함이 온 것 같다.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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