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인생의 선율’은 좌절을 넘어서야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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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피아니스트가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놓았다.
생애 처음 펴낸 책에다 네 살 때 피아노 건반 앞에 앉은 후 50여년 음악과 함께 살아온 인생을 메마르지도, 넘치지도 않게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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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백혜선/다산북스/1만6800원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피아니스트가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놓았다. 생애 처음 펴낸 책에다 네 살 때 피아노 건반 앞에 앉은 후 50여년 음악과 함께 살아온 인생을 메마르지도, 넘치지도 않게 담았다.
예컨대 미국 유학 중이던 열다섯 살 때 ‘건반 위의 철학자’로 불리는 거장 러셀 셔먼(93)을 만나 공개 레슨을 받는 자리에서 굴욕당한 얘기를 들어보자. “나는 부디 지금부터의 내 연주가 저 위대한 음악가를 만족시키기만을 빌었다. 내가 연주한 곡은 베토벤 소나타 21번, 1804년 작품으로 발트슈타인 백작에게 헌정됐다는 일명 ‘발트슈타인’의 1악장이었다. 나의 기교와 표현을 총동원해 온 힘을 다해 연주했다.” 그렇게 절정의 연주를 마쳤을 때 폭소를 터뜨린 셔먼의 한마디. “자네는 그 곡이 손가락 운동하는 곡이라고 생각하나? 혹시 손가락 운동을 하려고 피아노를 치는 건가?”였다. 저자에게 비참했던 첫 만남을 안겨 준 셔먼은 부인 변화경(76)과 함께 지금도 가장 귀한 스승이다.
이 밖에 20대 후반 도전한 콩쿠르 1차 탈락 충격에 음악을 접고 미국 전화회사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하거나 서울대 교수직도 관두고 이혼한 뒤 홀로 두 아이를 키우며 미국에서 생계형 피아니스트로 전전하던 시절, 베이징 국제 음악페스티벌에서 리스트의 헝가리 광시곡 2번 연주를 망쳐 청중 앞에서 면목이 없던 순간 등 창피해서 꾹꾹 감춰뒀던, 들킬까 봐 조마조마했던 내밀한 얘기도 툭 터놓았다.
음악 외길을 걸어오면서 맛본 영광보다 겪은 숱한 좌절의 순간을 소개하며 이렇게 강조한다. “연주자가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삶은 끊임없이 성장하고 더 나은 내가 되려는 삶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성장이 있는 삶에는 좌절과 불안과 걱정이 필연적으로 함께한다”고.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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