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스 프리즘] 이젠 마스크 뚫고 선 베풀 때
항상 마스크를 써야 하는 삶 때문에 잃어버린 당신의 가능성은 무엇인가. 나는 ‘조심, 또 조심’을 속삭이며 그 모든 새로운 실험을 향한 호기심을 통제했던 지난날이 안타깝다. 글을 쓰고 강의하는 삶, 대체로 정적인 삶을 사는 나조차 후회로 가득한데, 반드시 외부활동을 해야만 열정을 펼칠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떨까. ‘코로나 때문에’ 공연과 전시 기회를 놓친 예술가들, 온라인수업으로 인해 따스한 교우관계를 맺을 기회를 잃어버린 모든 이들이 이제 마음껏 꿈을 펼쳤으면. 세상을 마음껏 누비며 꿈을 이루고픈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회, 더 많은 가능성의 길이 열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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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개월간 마스크에 막혔던 삶 해방
‘짓눌렸던 사랑’ 마음껏 나눠 보자
」
코로나 시대를 거치며 우리는 ‘선을 넘지 않는 삶’에 익숙해진 것이 아닐까. 코로나 시대 이전의 나는 ‘사랑받고 싶은 열망’이 내 안의 가장 깊은 열망인 줄 알았다. 그런데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생각이 바뀌었다. 사랑받고 싶은 열망보다 사랑을 나눠 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이미 품고 있는 내 사랑을 얼마든지 퍼 주고 싶은 마음이야말로 내 안의 더욱 깊은 열망이었다. 소중한 사람을 보고 싶은 마음도 참고, 낯선 타인을 향한 친절과 배려의 마음을 보여 줄 기회도 잃어버린 채 산다는 것은 참혹한 것이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욕구를 그저 가슴에 억누른 채 살아가고 있는가. 가족을 만나는 것마저 꺼려지던 시절을 거쳐 온 우리에게는 이 짓눌린 사랑, 표현하지 못한 사랑, 미처 해 보지 못한 사랑이 얼마나 사무칠까. ‘코로나 때문에’가 마치 모든 일의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시절, 감염에 대한 공포 때문에 고향에 오랫동안 내려가지 못하다가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찾아뵙지 못한 그 모든 시간’이 사무친다는 사람도 있다. 우울감으로 힘들어하던 내 친구는 유기견을 입양하여 마음껏 사랑을 퍼줌으로써 온갖 콤플렉스와 자기혐오의 시간이 끝났다고 한다. 역시 마음껏 사랑을 퍼 주는 것만큼 완벽한 치유제는 없는 것 같다. 우리는 사랑을 받고 싶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사랑을 너무도 절실하게 표현하고, 베풀고, 나누어 주고 싶었던 것이다.
철학자 레비나스는 존재의 증명은 곧 ‘선(善)’의 증명이라고 이야기한다. 얼마나 선한 일을 하는가에 따라 이 세상에 더 많이, 더 의미 있게 존재할 수 있다.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 입을 가리고 살아가는 만큼 세상에 덜 존재하는 느낌, 덜 즐거운 느낌, 덜 행복한 느낌이었던 것이 아닐까. 코로나로 인해 선을 베풀 기회를 많이 잃어버렸기에 나는 그만큼 세상에 덜 존재하는 느낌이었다. 더 많은 선을 베풂으로써 더 강렬하게 존재하는 사람, 더 많은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더 깊게 이 세상에 뿌리내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제 마스크를 벗고, 용감하게 우리들 사이에 그어진 수많은 눈치보기의 선, 금기의 선, 통제의 선을 뛰어넘고 싶다. 마침내 꿈꾼다. 내 안의 모든 억눌린 사랑, 우리 안의 모든 억눌린 친밀감과 우정과 연대감이 마침내 마스크를 뚫고 세상 밖으로 뛰쳐나오기를. 가끔은 오직 선(線)을 넘어야만 보이는 생의 아름다움이 있으니.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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