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기억] 누군가 ‘돌아간’ 지점을 찾아서

입력 2023. 2. 4.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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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歸)’, 전라북도 부안, 2017년. ⓒ박찬호
사내는 흰 포말 앞에 서 있다. 바다를 향해 무언가를 뿌리거나 혹은 끌어당기는 듯한 그의 뒷모습에, 수평선은 중심을 잃고 기우뚱하다. 흰 포말은 비단결처럼 풀려 흐르고 도포자락은 파도처럼 휘몰아친다. 홀로 선 이 사내는 하늘과 조응하고, 바다는 그 사이에서 뒤챈다. 저 멀리 새가 난다.

사진 안에 흐르고 휘날리고 당기는 힘이 팽팽해 보는 이의 시선까지 강하게 끄는 이 흑백 사진은 사진가 박찬호의 ‘귀(歸)’ 중 하나다. 한 해의 안녕과 풍어를 비는 마을 제사를 마치고, 초헌관(제관)을 맡았던 촌로가 제물로 쓴 과일 한 조각을 바다에 던지는 장면이다. 1월 1일(정월), 5월 5일(단오), 7월 7일(칠석) 등 음력으로 월과 일의 숫자가 같은 날이나 대보름이면 바닷가 마을에서 쉬이 볼 수 있었던 풍경이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 눈에도, 뉴욕 타임스 지면에 이 사진을 크게 실은 벽안(碧眼)의 에디터에게도 낯설고 기이한 풍경이 되었다.

사진 시리즈의 제목인 한자 ‘돌아갈 귀(歸)’는, 죽음을 표현하는 우리말 ‘돌아가셨다’에 잇닿아 있다. ‘돌아간다.’ 누군가 이승을 떠난 허망과 어디로 갔는지 모르는 공포 사이에서, 돌아간다는 표현은 얼마나 큰 위안인가. 온 곳으로 다시 간 것이다. 그곳이 어떤 곳이든 그곳은 그가 원래 있었던 곳이니, 그가 비록 여기를 떠났다 해도 덜 서럽고 덜 무서울 일이다.

박찬호는 오랫동안 사진기를 들고, 살아있던 누군가가 이제 그만 ‘돌아갔다’고 한 지점과 흔적을 찾아다녔다. 종가집의 유교식 제의, 전통장례, 마을 주민들이 조상신을 모시는 신당의 굿, 사찰의 다비식까지, 한국 고유의 문화 중에서도 오직 제의 문화만을 쫓아 사진작업을 이어온 것이다.

왜냐고 물으면 답의 첫 머리에, 유년시절 어린 그를 두고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가 있다. 열한 살 배기 소년의 상실의 슬픔과 의문이, 우리의 전통 제의와 무속의 기록이면서 그 현장에 실재하는 여러 분위기 가운데서도 어떤 기이하고 수상한 기운만을 뽑아낸 것 같은 진귀한 공적자산을 낳은 것이다.

‘귀(歸)’ 사진 속에 담긴 숱한 기원처럼, 오늘은 대보름 크고 둥근 달을 향해 바람을 비는 날이다.

박미경 류가헌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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