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학생을 20세기 교수들이 19세기 방식으로 교육”

김창우.윤혜인 2023. 2. 4.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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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마친 오세정 전 서울대 총장
오세정 전 서울대 총장은 2일 중앙SUNDAY와 인터뷰에서 “줄 세우기, 공식 외워 답 찾기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교육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종근 기자
“1등은 불안하고 2등부터는 불만인 것이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입니다. 아무도 행복하지 않아요. 국내총생산(GDP)은 많이 올랐는데 행복지수는 꼴찌 수준이고, 청소년 자살률도 높습니다. 지금 중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점수로 줄 세우기는 교육이 아닙니다. 기성세대, 특히 교육계에 있는 사람들이 책임감을 느껴야 합니다.”

지난달 31일 임기 4년을 마친 오세정(70) 전 서울대 총장은 “21세기 학생을 20세기 교수들이 19세기 방식으로 가르친다는 말이 있다”며 “정보화 사회에 맞는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을 찾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서울대 교수직을 퇴임하고 2016년 국민의당 비례대표로 금배지를 달았던 그는 2019년부터 서울대 총장으로 재직했고 이제는 전공분야인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가 됐다.

1등도 불안, 아무도 행복하지 않은 교육

Q : 지난 4년을 돌아본다면.
A : “우리나라 교육의 전환기였다고 생각한다. 과거 산업사회에서 대학 교육의 목표는 남보다 빨리 첨단 지식을 배워서 좋은 직장을 얻는 것이었다. 그런 취지라면 줄 세우기가 의미도 있고 효용도 충분했다. 하지만 정보화 사회인 지금은 지식의 라이프타임이 3년이다. 평생 새로운 지식을 배워야 한다. 남하고 다르게 생각하고 빨리 변화할 수 있는 사람으로 인재상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지난 4년간 어떻게 학생을 뽑고 어떻게 교육할까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런데 입학 정원을 바꾸는 건 전쟁이더라. 그래서 일단 들어온 학생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복수전공, 부전공을 확 풀었다. 앞으로 정원의 3분의 2 정도는 복수전공을 할 것이다. 학과에 대한 지원 규모도 입학 정원이 아니라 복수 전공을 포함, 수강생의 수로 기준을 바꾸자고 제안했다. 임기 중 인구 문제부터 시작해 양극화, 교육 등 장기 계획을 세우고 지금부터 준비하기 위해 국가미래전략원을 만들었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나 헤리티지재단 같은 씽크탱크가 목표다.”

Q : 재임 중 성과는 있었나.
A : “지난해 QS 세계대학 평가에서 처음으로 20위권에 진입했다. 하지만 아직도 세계를 선도하는 대학이라고 자부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솔직히 서울대는 학생들이 알아서 좋은 성과를 내기 때문에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하는 면이 있다.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프린스턴대 수학과 교수나 수많은 히트곡을 만든 방시혁 HYBE 이사회 의장이 학교에서 뭘 배워서 성공한 건 아니지 않나. 좋은 친구들을 모아 놓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이 학교의 할 일이다.”
지난해 8월 오세정 당시 서울대 총장이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에게 ‘자랑스러운 서울대인’ 증서를 수여하고 있다. 허 교수는 지난해 수학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했다. [뉴시스]

Q : 올해 서울대 수시 합격자 138명이 등록을 포기했다. 연고대까지 합치면 미등록자가 2200명이 넘는다. 대다수가 다른 학교 의대를 선택한 자연계 학생이라고 한다. 이공계 인력의 편중현상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A : “미래를 생각했을 때 의대를 나오면 억대 연봉을 받고 늙어서까지 일할 수 있다. 반면 자연대나 공대를 나와서 대기업에 취업한들 정년까지 다니는 사람이 드물고 중간에 퇴직해서 갈 곳이 없다. 교수들이 황창규·진대제 등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공계 선배들 얘기를 해도 학생들은 그건 간혹 나오는 한두 명 사례에 불과하다고 반응한다. 근본적으로 이공계를 졸업한 사람들이 불안하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미국도 의대를 선호하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공대를 그만두고 갈 정도로 심각하진 않다.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해소될 수도 있을 것이다. 불과 15년 전만해도 외환위기 이후 연구직들이 많이 쫓겨나서 이공계 기피 현상이 있었다. 그때는 문과를 더 많이 갔다. 지금은 4차 산업혁명이 뜨고, 소프트웨어 전공이 각광받으며 상황이 역전됐다. 의대 편중이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지만 산업구조나 인력구조가 망가지는 상황까지는 아니라고 본다.”

Q : 우리 교육의 질적 변화에 가장 큰 걸림돌은.
A : “입시다. 대입 전문가들 얘기를 들어보면 제도를 어떻게 바꾸든 어차피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들어오니 합격자의 70%는 똑같을 것이라고 한다. 문제는 그들이 중고교에서 어떤 공부를 하고 어떤 훈련을 받느냐인데, 그건 입시제도를 어떻게 바꾸냐에 따라 큰 영향을 받는다. 그런 의미에서 과정은 보지 않고 결승점에 들어오는 순서대로 뽑는 정시 전형은 좋은 제도가 아니다.”

Q : 국민 다수는 학생부 전형 같은 수시 전형을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A : “여론조사를 하면 정시 선발이 공정하다는 응답이 70% 이상이다. 조국 사태가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그런데 논문이나 수상 실적을 본 것은 10년 전의 얘기지, 지금은 학생부에 쓰지도 못하기 때문에 문제점은 많이 해소된 상태다. 오히려 정시는 단 하루 시험 결과만으로 평가하고 한 문제만 실수해도 만회할 방법조차 없는데, 그게 과연 공정한 제도인지 의문이다. 아무리 얘기해봐야 설득이 안된다. 수능만으로 학생들의 능력을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몇년 전 출제위원으로 선정돼 수학 문제를 풀어봤는데 반나절 동안 채 절반도 못 풀었다. 짧은 시간에 많은 문제를 풀어야 하니 수백개의 공식을 외워 답만 찾는 훈련을 반복해야 수능에서 고득점을 받는다. 그런 공부로 과연 수학의 원리나 재미를 찾을 수 있겠나.”

Q : 입학 전형별로 학습능력에 차이가 있나.
A : “특목고나 8학군 출신이 수능 점수 위주로 선발하는 정시에 가장 많다. 그런데 추적조사를 해보면 입학 후 학점은 수시 일반전형이 제일 좋고, 그 다음으로 정시, 지역균형 전형 순이다. 반면 졸업 성적은 수시 일반전형, 지역균형, 정시 순으로 높다. 정시가 가장 낮다. 취직도 이 순위다. 수능은 반복해서 훈련하면 점수가 높아지는 시험이다. 점수에 맞춰서 전공을 선택했거나 시키는 공부만 해서 그런지 대학 성적이 그렇게 좋지 않다. 지역균형 학생들이 처음에는 힘들어하는데 수업에도 적극적이고 곧잘 적응한다.”

Q : 지방대학은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해간다는 말처럼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A : “인구절벽에 따른 지방소멸은 심각한 문제다. 20년 뒤에는 수도권 대학 정원을 다 채우면 지방대에는 한 명도 안가도 된다. 이미 지방거점 국립대학교도 영향을 받고 있다. 수요에 맞지 않는 정원은 이미 바뀌고 있고, 바뀔 것이다. 하지만 지방에 지역구를 둔 국회의원들이 자기 지역에 대학교 하나 없는 상황을 두고 보겠나. 그러면 수도권 대학의 정원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것이다. 미국의 사례를 참고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오래전부터 미국 공대 대학원은 한국·중국·인도 학생들이 정원을 채우고 있다. 우리도 개발도상국의 똑똑한 학생을 데려올 방안을 찾아야 한다. 다행히 한류 영향으로 인도네시아·베트남 등에 한국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많다. 호찌민의 베트남 국립대학에 가보니 한국 대학에서 받아준다면 오겠다는 친구들이 적지 않았다. 지금은 학부 졸업 후 싱가포르 국립대에 가는 것이 목표라고 하더라. 이런 친구들에게 한국이 대안이 될 수 있다. 건설 노동자나 베이비시터만 받을게 아니라 탑클래스 사람들을 받아야 한다.”
개도국 똑똑한 학생 유치 방안 찾아야

Q : 유학만으로 해결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A : “수도권 과밀화를 해결하는 것이 근본적인 대안이다. 사실 정부 기관이나 공기업 지방으로 내려보내는 것은 효과가 제한적이다. 좋은 일자리, 의료 시스템, 인프라를 갖춰야 지방에서 가족과 함께 살 수 있을 것이다. 좋은 기업은 예전에는 제조업이었지만, 지금은 4차 산업혁명으로 IT기업이 됐다. 그만큼 대학 인재가 중요하다. 좋은 대학이 없는 곳으로 좋은 기업이 가지 않는다.”
오 전 총장은 미국의 피츠버그와 디트로이트를 예로 들었다. 석탄과 철광석을 기반으로 한 제철 도시로 이름 높았던 피츠버그는 현재 금융·교육·의료 중심지로 제2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반면 자동차의 도시 디트로이트는 쇠락해 녹슨 지역(러스트 벨트)의 대명사가 됐다. 오 명예교수는 이런 차이를 불러온 요인으로 피츠버그의 카네기멜런대, 피츠버그대 혁신연구소, 에너지기술연구소 같은 연구시설을 들었다. 반면 디트로이트는 수준급 대학이 없어 자동차 산업이 몰락하자 대안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도 세계적인 기업을 뒷받침할 수 있는 좋은 대학이 지방에 생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Q : 우리나라 대학의 변화는 어디까지 왔나.
A : “학생 선발, 교육 과정 등에 대한 문제는 인식한 것 같다. 해결책을 향해 몇 발자국 뗀 셈이다. 지금까지는 외국 명문대를 바라보며 재빠르게 따라가기만 했다. 이제는 중장기적으로 나아갈 방향을 잡아야 한다.”

만난 사람=김창우 사회에디터 changwoo.kim@joongang.co.kr, 정리=윤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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