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289] 구두와 양말

백영옥 소설가 2023. 2. 4. 00: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여당의 당대표 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모양이다. 유력 후보인 김기현, 안철수 의원 두 사람의 사진이 화제가 됐다. 한 사람은 유명인과의 ‘꽃다발 사진’으로, 또 한 사람은 ‘해어진 양말’ 사진으로 모두 설정 의혹이 일었다. 정치는 쇼 비즈니스와 닮은 구석이 많다. 두 장의 사진을 보며 언젠가 본 듯한 기시감이 드는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선거를 앞두고 찍히는 정치인들의 구두에는 공통점이 있다. 유독 낡고 해졌다는 것. ‘구두’라는 발로 뛰는 정치인의 역동적인 이미지에 ‘낡은’이라는 형용사가 붙으면 ‘검소한 서민 후보’라는 이미지를 풍기기 때문일 것이다.

2016년에 찍힌 사진 속 문재인 전 대통령의 구두는 5·18 민주화 기념식 때 무릎 꿇고 참배할 때 밑창이 닳고 깨져 있었다. 서울시장 후보 시절 찍힌 박원순의 구두 뒤축은 차마 걷기도 힘든 수준으로 깨지고 찢어져 있었다. 2021년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도 내곡동의 생태탕집에 명품 ‘페라가모’ 구두를 신고 나타났다는 증언으로 구설에 올랐다. 흥미로운 건 상대 당 박영선 후보의 과거 찢어진 페라가모 구두를 국민의힘 지지자들이 소환해내 진흙탕 싸움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낡은 구두 사진이 등장하게 된 첫 계기는 1952년 미국의 대통령 선거부터다. 공화당 아이젠하워와 경쟁한 민주당의 애들레이 스티븐슨의 구멍 난 구두 사진은 당시 큰 화제가 됐고, 그 사진을 찍은 기자는 다음 해 퓰리처상을 받았다. 오바마 전 대통령도 후보 시절 바닥이 해어진 구두를 책상 위에 올리고 있는 사진이 등장했다. 이쯤 되면 구두는 드라마의 ‘출생의 비밀’에 버금가는 정치적 클리셰에 가깝다. 차이가 있다면 ‘알고 보니 재벌’이 아니라 ‘알고 보니 소탈한 서민’이라는 반대 버전이다. 예전 라디오 시엠송으로 귀에 익은 가사가 생각난다. “발이 편해야 맘이 편하고, 맘이 편해야 일이 잘되죠!” 구두가 명품이든 싸구려든 새것이든 낡은 것이든 그리 중요할까. ‘쇼’보다 중요한건 ‘일’이다. 제발 일이나 잘하자.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