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위험한 건 고립…치유의 시작은 ‘연결’[건강한 정신, 행복한 마음]
정보·의견 공유 통해 문제 해결할
‘재난회복 지원그룹’ 모임 꼭 필요
“보고 듣고 연결하라” 3원칙 지켜
트라우마 극복 심리적 응급처치
“이태원에서 집까지 혼자 다리를 끌며 새벽에 두 시간을 걸어왔어요. 너무 서러웠는데 멍하기만 하고 눈물도 안 나왔어요. 더 슬픈 건,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다는 거예요. 시골에 계신 부모님이 뉴스를 보고 놀라서 전화하셨는데, 걱정하실까봐 그냥 무사히 집에 왔다고 했어요. 인터넷에는 비난과 욕설이 너무 심해서 친구들에게도 제가 겪은 일을 말할 수 없었어요. 사실 전 그날 서울로 일하러 올라온 친구랑 일 년 만에 만나서 엄청나게 반가워하면서 고향 이야기도 하고, 가족이며 친구들 어떻게 지내는지 얘기하고 처음 가본 동네 구경을 하고 있던 거였어요. 그런데 이런 말을 해도 누가 믿어주겠어요? 다행히 그 친구도 살아 나와서 가끔 전화하면서 괜찮은지 서로 물어봐요. 그런데, 둘 다 똑같아요. 멍하고, 지하철 타면 숨 막히고, 사람들 많은 곳에는 가지도 못하고, 쳐다보지도 못하고…. 사람을 다 피해요. 무섭고, 계속 사고에 대한 악몽을 꾸고, 너무 불안해요.”
스무 살을 갓 넘긴 앳된 청년은 점점 고립되어가다가 죽음까지 생각한 자신의 모습에 놀라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기로 했다.
재난 생존자와 그 가족, 그리고 사망자의 유가족을 지원하는 모든 기관과 단체는 고립이 가장 위험하고 연결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세계보건기구(WHO), 적십자, 미국 물질남용 및 정신건강서비스청, 영국 재난행동(Disaster Action) 등은 한목소리로 개인과 사회의 회복을 위해서는 재난 경험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을 연결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재난 피해와 트라우마 회복을 위한 ‘재난 회복 지원그룹’이 왜 필요할까?
재난을 당한 사람은 다른 어느 누구도 자신을 이해할 수 없으며, 오직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만이 자신의 비통한 처지와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고 여긴다. 공감과 이해는 재난의 충격을 회복하는 든든한 바탕이 된다. 또한 모든 재난에는 처리하고 극복해야 할 실질적인 문제가 있다. 혼자서는 정부 서비스, 봉사단체, 법률 전문가 또는 보험회사 등의 도움을 구하는 과정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재난 경험자에게 여러 가지 중요한 이슈가 생길 때도 지원그룹이 있다면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다. 만일 모임이 구성되지 않고 모든 재난 피해자가 흩어진 채라면 위로와 추모의 방식, 피해 복구와 보상, 치료 방식과 기간 등에 대해 당사자의 의견을 내기 힘들고 정부나 언론, 여론에 의한 일방적인 결정에 수동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다.
모임을 만들고 참여하는 것은 재난 트라우마의 회복에도 도움이 된다. 끔찍한 재난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이나 살아남고도 충격에 시달리는 생존자는 슬픔과 분노, 우울과 불안이 뒤섞인 감정에 사로잡혀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때가 있다.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가진 사람이 지원그룹에 연결되어 서로를 돕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건설적인 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절망에 빠진 자신을 구하는 훌륭한 방법이기도 하다.
모임은 될 수 있는 대로 특정 세력이나 왜곡된 목적에 편향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참여하는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되도록 그룹의 목표를 명확하게 설정하는 것이 좋다. 서로에게 정서적이고 실질적인 지원을 제공하고, 외부와 접촉할 대표를 정하고, 경험과 정보를 공유하고, 재난 회복에 대한 캠페인을 벌이거나, 기념관을 세우는 것 등이 목표가 될 수 있다. 이전에 다른 재난에 대처하기 위해 만들어진 재난 회복 지원그룹이나 전문가 단체, 학회, 지원 기구, 정부 당국은 이 모임이 잘 조직되고 기능하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
재난이 발생한 직후에 트라우마를 회복하는 가장 중요한 지침인 심리적 응급처치는 세 가지 행동 원칙을 강조한다. “보고 듣고 연결하라(Look, listen, and link).” 피해자들의 상황과 고통을 보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요구와 근심을 듣고, 위기 상황을 극복하도록 사람과 지원을 연결하라는 것이다. 보고 듣고 연결하기는 재난의 상처를 치유하고 절망에 빠진 사람을 살리는 가장 중요한 길이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공동기획>
정찬승 원장·사회공헌특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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