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명의 학자들이 던진 도발적 개념 ‘동물노동’[책과 삶]

오경민 기자 2023. 2. 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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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노동
샬럿 E 블래트너 외 2인 엮음
평화 등 4인 옮김
책공장더불어 | 400쪽 | 2만원

시각장애인 안내견은 안내견 학교나 위탁 가정 등에서 여러 훈련을 받으며 성장한다. 장애인 가정에 분양된 뒤에는 하네스를 차고 파트너를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데려가는 임무를 수행한다. 훈련받은 돼지는 발달한 후각을 이용해 땅 아래 송로버섯을 찾아낸다. 이러한 동물의 일과 기능을 ‘노동’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샬럿 E 블래트너, 오마르 바추르, 알라스데어 코크런 등 법학·철학·노동학·환경학을 연구하는 12명의 학자가 ‘동물노동’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감금, 사육, 도살을 동반하는 동물 착취가 만연한 세상에서 ‘동물노동’ 개념은 동물권 운동에서도 반대당한다. 닭을 감금해 달걀을 채취하고, 소를 강제 임신시켜 우유를 만들며, 동물 실험 등으로 목숨을 앗아가는 행위가 동물이 원한 노동이나 동물의 쓰임으로 정당화될 우려 때문이다. <동물노동>의 저자들은 동물을 사회구성원으로 인정하고 노동자로 보는 시각이 동물권에 유의미한 진전을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 동물을 수동적인 피해자가 아닌, 목소리를 가진 주체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들은 동물을 도구가 아닌 사회의 구성원으로 여기고, 모든 구성원이 존엄하게 일할 기회를 만들기 위한 논의의 장을 연다. ‘도구화되는 동물과 착취하는 인간’의 관계를 ‘성원권(공동체의 구성원이 될 권리)을 공유하고 협력하는’ 관계로 전환하기 위해서다. 동물에게 안전하고 좋은 노동이란 무엇인가, 사육을 노동이라 볼 수 있는가, 동물에게 ‘퇴근 이후의 삶’이란 무엇인가 등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정답을 규정하기 보다는 틀린 답을 지워나간다. 유럽 중심적, 남성 중심적, 인간 중심적인 노동의 개념을 뒤집고 종간 연대를 도모한다.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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