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끼리도 남자끼리도...“누구나 가슴 뛰는 사랑을 합니다”

정주원 기자(jnwn@mk.co.kr) 2023. 2. 3. 20:1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무한 확장
설레는 연애 ‘LGBT’ “우리도 한다”

“드디어 이런 용기가 세상에 나오는구나.”

지난해 성 소수자 커플의 일상을 관찰하는 예능 ‘메리퀴어’ 첫방송에서 MC를 맡은 방송인 홍석천이 내뱉은 일성은 ‘드디어’였다. 지난 2000년, 자신의 동성애 성향을 세상에 드러낸 뒤 한동안 방송 활동조차 할 수 없었던 그가, 이들의 일상을 예능 소재 한복판으로 끌고들어온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니 그 자체로 사회 분위기 변화 흐름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OTT)의 등장으로 다양성이 가속화되고 있는 방송계에 LBGT(성 소수자)가 전면 등장하고 있다. 얼핏 보면 최근 몇년새 우후죽순 생겨난 연애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과 다르지 않다. 대신 참가자가 전부 남성이거나, 혼숙 중에도 동성을 데이트 상대로 지목한다는 점은 어떤 시청자에겐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드라마·영화 같은 창작 콘텐츠에 퀴어 코드가 녹아든 것을 넘어, 현실 성 소수자의 모습을 예능에서 보여주는 ‘다양성(性) 리얼리티’ 장르다.

좋아하면 울리는 짝!짝!짝! [웨이브 캡처]
이달 3일 최종 13회가 공개된 또다른 예능 ‘좋아하면 울리는 짝!짝!짝!’(이하 좋알람)은 여성 참가자 ‘자스민’이 다른 여성 참가자 ‘백장미’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는 모습으로 화제가 됐다. 좋알람은 자스민이 바이섹슈얼(양성애) 성향을 드러낸 9회 장면 전까지만 해도 참가자나 시청자나 으레 이성간 데이트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그러다 동성에게 마음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니 충격 반전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공교롭게 이 프로그램 패널로도 출연한 홍석천은 이 장면에서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시청자들은 오히려 ‘멋지다’ ‘감동적이다’라는 댓글로 이들을 응원했다. 꾸밈없이 조심스럽게 마음을 표현하고 상대를 배려해 반응하는 두 여성 출연자의 진정성 있는 모습이 성 정체성을 뛰어넘어 공감을 일으켰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또 예능 속 세계에서뿐 아니라 실제로도 정체성을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성 소수자의 모습을 은유한 듯한 연출이 현실적이란 반응이 나왔다.

다양성 예능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선을 보였다. 방송 채널이 지상파 TV뿐 아니라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으로 다양화되면서 표현의 자유가 커지고 개인화된 영향으로 해석된다. 20·30대 남성 출연자 8명이 합숙하며 연애 상대를 찾았던 웨이브 오리지널 예능 ‘남의 연애’는 TV·OTT 화제성에서도 높은 순위를 기록했고, 현재 시즌2도 제작 중이다.

남의연애 [사진출처 = 웨이브]
차별 받는 소수자의 모습을 미디어에 노출시키고 공론화 토대를 마련한다는 사회적 의미도 크다. ‘메리퀴어’는 게이(남성과 남성), 레즈비언(여성과 여성), 트랜스남성(태어날 때 여성이었으나 스스로 남성으로 정체화한 성 전환자)과 양성애자 등 서로 다른 세 커플의 일상을 들여다보면서 다큐멘터리와 예능의 중간 장르 성격이다. 진행자 신동엽, 홍석천, 하니는 이들의 가감없는 애정표현에 “처음엔 낯설지만 보다보니 익숙해졌다”는 솔직하고도 공감대를 이루는 평으로 ‘다름’의 간극을 줄여나가는 완충재 역할을 해냈다.

일상에서 이들이 겪는 제도적 차별은 이성애자라면 보이지도 않고 느낄 수도 없는 일들이다. 결혼식을 준비하는 레즈비언 커플 가람과 승은은 본격적으로 예식장을 잡으려고 하지만, 예약 상담 전화에서부터 “전례가 없다”며 방문을 거절 당한다. 자신을 남성으로 정체화한 성 전환자 지해는 공공 수영장을 이용하려다 남녀로 구분된 탈의실 중 어느 쪽도 배정받지 못한다. 시청자들은 출연자의 아픔에 공감하고 “나라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토론을 벌이거나 대안을 고민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성 소수자 당사자뿐 아니라 이들 주변 사람의 반응도 다양하게 조명된다. 동성애에 대해 흔히 차별과 혐오의 언어가 목소리를 키우곤 하지만, 다름을 인정하고 응원하는 이들도 수많다는 것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게이 커플의 친구로 나온 20대 남성은 동성인 친구로부터 커밍아웃을 받았을 때를 떠올리며 “살짝 당황했지만 친구인데 상관없었다”고 말한다. 레즈비언 커플의 결혼식에 부모님이 보낸 편지는 여느 결혼식 혼주의 축사와 다르지 않다.

웨이브의 예능 콘텐츠 기획을 담당하는 임창혁 책임프로듀서(CP)는 “이런 프로그램은 성 소수자를 미화하려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서 어떻게 이해할지 화두를 던져준다는 의미가 있다”며 “유사한 콘셉트의 콘텐츠가 다양한 플랫폼에서 더 좋은 기획으로 나왔으면 한다”고 밝혔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