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집 고명딸 ‘진화영’ 아닙니다…연기자 김신록입니다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3. 2. 3.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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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록 지음, 안온북스 펴냄
‘재벌집 막내아들’ 출연 배우
동료들 만나 연기에 대해 물어
연극배우 25명을 만나 나눈 인터뷰집 ‘배우와 배우가’가 출간됐다. 이봉련 배우와 인터뷰 중인 저자 김신록 배우. <사진 제공=안온북스>
배우의 몸은 관객에게 한 장의 지도가 아닐까. 얼굴과 시선은 이야기의 심부를 가리키고, 행동과 언어는 무대 위의 기호처럼 솟아올라 마침내 관객이 가닿을 궁극의 목적지를 지시한다.

그러나 조명이 꺼지고 무대 아래에서 만난 배우가 무대 위의 그보다 더 뛰어난 매력을 소유하고 있음을 알게 될 때 관객은 그 배우에게서 이미 보았던 연기, 또 아직 보지 못했던 연기를 동시에 궁금해한다.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2021) 박정자 역, 최근 종영된 ‘재벌집 막내아들’(2022)의 진화영 역으로 친숙하게 기억되는 김신록 배우가 인터뷰집 ‘배우와 배우가’를 출간했다. 지옥행 ‘고지’를 받고 생중계 카메라 앞에서 덜덜 떠는 정자, 순양가 진양철 고명딸로 소리 지르며 갑질하는 화영으로 알려지기 훨씬 전부터 김신록은 대학로 안팎에서 20년간 연기를 하고 배우고 가르쳐 온 정통파 배우였다. 김신록이 25명을 만나 인터뷰한 이 책은 연기를 통한 인간과 세계의 총체적 탐험기와 같다.

황혜란 배우와의 대화를 관통하는 단어는 ‘빈 그릇’이다. 황혜란은 말한다. “배우는 빈 그릇이며, 나를 수동적인 리시버(receiver)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빈 그릇으로서의 배우는 백지나 텅 빈 상태가 아니고, 뭔가를 배워서 쌓는 동시에 그것을 해체할 수 있어야 한다고도 강조한다. “무엇을 받아들일 때 동시에 그것을 사라질 수도 있게 하는 것.” 배우의 연기는 이쯤에서 일종의 구도적 행위로 다가온다.

이봉련 배우와의 대화는 ‘거기 그냥 존재해버리는 인물(배우)’이란 논제가 화두로 놓인다.

영화 ‘버닝’ 촬영 당시 이창동 감독은 현장에서 “그런 사람으로 존재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보는 사람이 그냥 잠깐 넋을 놓고 그 장면을 넘길 수 있어야 하는 연기’, ‘그냥 믿고 슥 지나가야 하는 연기’에 대해 말한다. 드러내려 하지 않고도 ‘그런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이 연기자의 숙명일까.

2022년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폐막작으로 선정된 ‘다음 소희’에서 인상적 연기를 남긴 최희진 배우와의 대화는 결국 ‘연기에서의 말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으로 수렴된다. 결론은 이렇다. “연기에서 말하기란 말과 말 사이(間)를 찾는 것이다.” 인물들 사이의 말과 말 사이를 목격하기 위해 무대와 객석은 태초부터 계획되어 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양종욱 배우와는 ‘어디로든 다음으로 갈 수 있는 선택의 순간에 경험되는 역동적인 가능성의 상태’를 뜻하는 사츠(sats)란 개념으로 연기 행위의 심연을 들여다본다. “인간은 총체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김석주), “내 코어(core)는 나다”(이자람) 등의 빛나는 문장도 밑줄을 긋게 된다.

이 책은 한 연극웹진에 실린 김신록 배우의 인터뷰 연재 글을 토대로 삼고, 각 배우와 다시 만나 나눈 이야기를 한 권으로 꿰맨 책이다. 한 배우당 2편의 인터뷰를 싣는 독특한 구성이 돋보인다. 배우당 첫 번째 글은 문어체로 나눈 질의응답이고, 두 번째 글은 질문 없이 쭉 이어지는 구어체여서 책이 한층 입체적이다.

단지 유명인이 유명인을 만나 남긴 기록 이상의 의미로 이 책이 다가오는 이유는, 결국 미완성일 수밖에 없는 ‘연기 이데아’에 가닿고자 하는 배우들의 절실함이 이 책의 지층을 이루기 때문이다. ‘연기철학서’에 가까운 문장을 더듬다 보면 독자의 가슴에도 그 간절함이 퇴적되는 경험을 누릴 수 있다.

김신록 인터뷰집 ‘배우와 배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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