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물가 잡겠다" 공정위 강력 의지···소부장·건설 등으로 담합조사 확산 가능성

세종=박효정 기자 2023. 2. 3.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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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재 담합' 칼 빼든 공정위
한기정 공정위원장 업무보고서
"물가억제 역할 할 수 있다" 강조
시장교란→가격상승→경기침체
국민부담 가중 '담합부작용' 근절
내부선 행정소송 패소부담 우려도
기업들 "물가상승 책임전가" 불만
[서울경제]

지난달 26일 공정거래위원회의 윤석열 대통령 업무 보고에서 눈에 띄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중간재 담합에 대한 근절 의지를 강조하면서 물가 상승과 연계한 해석이다. 당시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중간재 분야에 대한 담합을 중점 조사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때 중간재를 물가 상승을 초래한 원인으로 지목했다.

시계를 되돌려보면 촉매 제조 화학 업체 3사를 대상으로 한 공정위의 올해 첫 현장 조사는 이미 업무 보고 전에 전격 단행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물가 당국도 아닌 공정위가 물가를 이유로 담합 조사에 나서는 데 대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지만 공정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다. 담합 자체가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제품 가격 상승이 국민 부담으로 직결돼 경제를 망가뜨린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공정위 내부에서는 OSC·제이테크·메케마코리아 등 울산 소재 코발트·망간·브롬(CMB) 촉매 제조 업체에 최대 수백억 원대의 과징금을 부과할 가능성이 감지된다. 이들 3사의 담합 기간이 약 17년으로 워낙 긴 탓이다. 2021년 12월부터 전면 개정된 독점 규제 및 공정 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이 시행되면서 담합에 대한 과징금 상한은 최대 20%로 높아졌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개정 공정거래법 시행 이전 행위에는 10%, 이후 행위에는 20%의 과징금 상한이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화학 촉매와 같은 중간재 물가를 포함한 공급 물가는 시차를 두고 소비자 물가에 반영된다.

하지만 소비자물가처럼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만큼 일종의 감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공정위가 중간재 담합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도 이 때문이다. 당장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2%로 석 달 만에 오름세로 돌아섰다. 미국의 경우 디스인플레이션(인플레이션 둔화)의 초기 단계라는 진단이 나올 정도로 물가 상승세가 주춤하지만 우리는 전기·난방·지하철요금 등 공공요금이 급등하면서 사정이 완전 딴판이다. 이는 공정위가 시장의 우려 속에서도 담합 감시 등으로 물가 관리자 역할을 자처하는 배경으로 꼽힌다. 실제 공정위는 지난해 중간재 담합을 수차례 적발하고 철퇴를 내렸다. 지난해 8월 조달청이 발주한 철근 입찰에서 가격·물량 등을 담합한 현대제철·동국제강·대한제강 등 11개사에 총 2565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것이 대표적이다. 투사재 관련 담합에는 총 13억 7900만 원, 자동차용 선루프실 담합에는 총 11억 4600만 원, 광다중화장치 담합에는 총 58억 1000만 원의 과징금을 각각 매겼다.

문제는 물가를 잡기 위한 공정위의 담합 감시 강화가 가뜩이나 어려운 기업을 옥죌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제품 가격을 올리는 인건비·전기요금 인상 등 다른 원인은 외면하고 공정위가 기업 팔 비틀기를 통해 물가 잡기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가 담겼다. 기업들에는 이명박 정부 시절 김동수 공정위원장에 대한 트라우마도 있다.

특히 이런 조사가 시장에 던지는 메시지 자체가 불온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가뜩이나 정치권에서 횡재세 운운하며 기업을 이윤만 밝히는 파렴치한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것이 더 강화될까 우려된다”고 꼬집었다.

공정위가 본연의 역할과 달리 ‘물가 관리 기관’으로 기능하면 조직 자체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담합을 무리하게 제재하면 이후 기업 측이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패소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 당시 물가 관리에 치중하다 보니 가격이 오르는 품목이 있으면 일단 담합 조사에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며 “기업은 생산원가가 올라 가격을 인상했을 뿐인데 어설픈 담합 제재가 이뤄진 경우가 많았고, 2015년께부터 다수 사건의 공정위 패소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공정위의 행정소송 승소율은 2014년 80.3%에서 2018년 72.0%까지 감소한 적이 있다. 재계의 한 임원은 “물가 급등의 책임을 기업에 돌리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자칫 이번 현장 조사가 소재·부품·장비 등 다른 중간재 업종으로 확산될까 염려된다”고 밝혔다. 다른 관계자는 “담합 혐의가 있다면 현장 조사에 나서야 하는 것은 공정위의 당연한 의무”라면서도 “다만 물가 잡기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정책 집중도가 높아진 상황에서 무리한 집행이 나타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종=박효정 기자 j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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