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시작한 장점이 있죠…쉽게 포기 안 해요"
프로게이머, 배달부 등 거쳐
남들 은퇴하는 29세에 데뷔
헐값 대전료 등 현실 냉혹해도
저녁에 식당 일하며 운동 매진
"인생 걸 만한 일 찾아 큰 다행
45세 챔피언 조지 포먼처럼 될 것"
프로게이머, 지게차 운전사, 쿠팡 배달부, 도축공장 노동자 등을 거친 끝에 챔피언이 된 복서가 있다. 29세에 프로복싱에 데뷔해 10개월 만에 KBM 라이트헤비급(79㎏ 이하) 한국 챔피언이 된 곽기성 선수(수원 태풍체육관·사진)다.
전문가들은 곽 선수가 늦은 나이에 데뷔해 단기간에 한국 타이틀을 거머쥔 비결로 타고난 신체 조건을 꼽는다. 곽 선수는 키가 191㎝, 리치(한쪽 손끝에서 반대편 손끝까지 길이)는 196㎝에 달한다. '질럿'이라는 링네임처럼 곽 선수는 큰 신장과 강한 체력을 이용해 원거리에서 쉴 새 없이 주먹을 던진다. 이 전략으로 2021년 데뷔 후 4전4승(3KO)을 거두며 지난해 4월 한국 챔피언이 됐다. 9월에는 유튜브 채널 '명현만'에서 주최한 무제한 체급 복싱 토너먼트 대회 '언더테이커'에서 헤비급 복서(현 KBF 헤비급 한국 챔피언), 한국 미들급 챔피언 등을 제치고 우승 상금 2000만원을 따냈다.
곽 선수를 지도하는 김광수 복싱사관학교 관장(1993년 WBA 최우수 프로모션컵 수상)은 "기성이는 아시아 라이트헤비급 선수 중 독보적 신체 조건을 갖고 있다"며 "복싱 재능도 뛰어나 지원과 노력이 뒷받침된다면 충분히 세계 무대에서 통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곽 선수가 프로복싱을 한다고 했을 때 가족과 친구들은 응원보다 우려하는 목소리를 보냈다. 다른 복서들은 은퇴를 고민할 나이인 데다 현재 한국 프로복싱 현실에서는 챔피언도 '밥 먹고살기'가 빠듯하기 때문이다. 곽 선수가 한국 챔피언이 된 지난 타이틀전에서 받은 대전료는 100만원에 불과했다. 이노우에 나오야, 무라타 료타처럼 세계적인 선수가 되지 않으면 대전료로 생계를 잇는 것은 불가능하다. 곽 선수는 오전과 낮에 운동을 하고 저녁에는 식당에 출근해 생활비를 벌고 있다.
주변의 우려와 현실적 어려움에도 곽 선수가 프로복싱에 뛰어든 것은 '이 길이 내 적성에 맞는다'는 확신이 있어서였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뒤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임 팀 'MBC GAME HERO'에 입단했고 이후에도 여러 직업을 거치며 마음에 맞는 일을 찾지 못했는데 마침내 인생을 걸고 싶은 일을 찾은 것이다. 곽 선수는 "다른 일을 할 때는 늘 마음속에 허전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며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일을 찾아 감사하다"고 말했다.
곽 선수는 늦은 나이에 진로를 찾은 것이 운동에 전념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과거에 다른 일을 하며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으면 현재 일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했을 거라는 설명이다. 곽 선수는 "다른 선수처럼 중·고등학생이나 20대 초반부터 복싱을 했으면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쉽게 포기하거나 열심히 하지 않았을 것 같다"며 "45세에 챔피언이 된 조지 포먼처럼 늦깎이 세계 챔피언이 되겠다"고 밝혔다.
[김형주 기자 / 사진 박형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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