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링컨, 시진핑 만날 듯…미 국무장관 4년여만의 방중에도 기대치는 낮아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조만간 이뤄질 방중 기간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도 만날 것으로 보인다. 미 국무장관의 중국 방문은 2018년 10월 이후 4년여 만에 처음이지만 미·중 양쪽 모두의 기대감은 그리 높지 않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2일(현지시간) 블링컨 장관이 오는 5∼6일 중국 방문 기간에 시 주석을 만날 예정이라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블링컨 장관은 이 기간 중국 외교를 총괄하는 왕이(王毅)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중앙외사공작위원회 판공실 주임 및 친강(秦剛) 외교부장과도 잇따라 만날 것으로 예상된다. 데니스 와일더 전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은 “시 주석은 제로(0) 코로나 정책이 끝난 후 미국 기업들이 중국에서 공급망을 옮기지 않도록 설득하기 위한 매력 공세를 펴고 있다”면서 “시 주석이 블링컨 장관과 만난다면 이는 미·중 관계의 본질은 아니더라도 기조를 바꾸겠다는 일련의 신호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블링컨 장관의 이번 방중은 지난해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인도네사아 발리에서 열린 조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 간 첫 대면 회담의 후속 조치 성격을 갖는다. 두 정상 간 회담 이후 지난달에는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과 류허(劉鶴) 중국 부총리가 첫 대면 회담을 했고, 존 케리 미 대통령 기후문제특사와 셰전화(解振華) 중국 기후변화사무특사도 화상 대화를 가졌다.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 간 갈등을 관리할 필요성이 있다는 공감대 속에 잇단 고위급 교류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미·중 간에는 경제무역과 대만 문제 등 양국 현안 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전쟁과 한반도·남중국해 문제, 기후변화 및 공중보건 협력 등 함께 논의하고 풀어야 할 문제들이 쌓여있다.
하지만 미·중 양국 모두 블링컨 장관의 방중과 고위급 회담에 거는 기대는 크지 않아 보인다. 지난해 낸시 펠로시 당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으로 여러 분야의 양국 간 대화와 소통이 단절되는 등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은 상황에서 정상회담을 계기로 유화적인 분위기가 조성되고는 있지만 한편으로는 미국의 대중 견제와 압박도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가깝게는 최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 아시아 방문을 계기로 대중 견제 교두보 성격을 갖는 필리핀 군기지 4곳에 대한 사용권을 확보했고, 대중 반도체 수출 규제에 대해서도 일본과 네덜란드의 동참을 이끌어 내며 반중 전선을 확장했다. 또 지난달 13일 열린 미·일 정상회담에서는 ‘국제질서를 위배하는 중국의 행동’을 인도·태평양 지역이 직면한 도전으로 명시한 바 있다. 미 의회에서 대만을 독립 주권 국가로 인정하는 법안이 발의되고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계획이 보도되는 등 대만 문제 역시 여전히 양국 간 가장 민감하고 잠재적인 갈등의 기폭제로 자리잡고 있다.
이런 상황 때문에 블링컨 장관 방중이 양국 관계 악화와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소통을 유지하는 일종의 ‘가드레일’ 역할을 할 수는 있겠지만 양국 관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기는 힘들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블룸버그통신은 “미 관리들은 블링컨 장관 방중이 상징적인 것임을 강조하며 기대를 낮추고 있다”면서 “관리들은 그의 방문이 바이든 정부가 (중국과의) 소통 채널을 유지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이라고 설명한다”고 전했다. 또 웨니 커틀러 미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 부회장은 이번 회담에 대해 “어떠한 돌파구도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일축했다.
중국 전문가들의 관측도 마찬가지다. 주펑(朱鋒) 난징대 교수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조치들이 회담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미국은 한편에서 중국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면서 한편으로는 협력을 요청하고 있지만 중국이 미국의 기대에 부응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뤼샹(呂祥)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원도 “경제, 기술, 국방 등에 있어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려는 미국의 전략은 블링컨 장관 방중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라며 “미국은 중국의 발전을 억제하려 하고 중국은 발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갈등은 앞으로 몇 년 또는 수십년이 지나도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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