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은 섹스보다 즐겁고, 어떤 질병보다 빨리 전염된다" [허연의 책과 지성]
리베카 솔닛 (1961~)
'세계친절운동(World Kindness Movement)'이라는 국제단체가 있다. 세계친절운동은 2011년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난치성 질환인 다발성 경화증 환자 72명 중 5명을 골라 다른 환자들을 도와주도록 했다. 하루에 한 번 15분 동안 전화를 걸어 상대방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정신적 위안을 주는 것이었다. 3년이 지난 후 드러난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도움에 참여한 3명의 환자가 그렇지 않은 환자들보다 삶의 질이 7배나 높았다.
같은 고통 속에 놓여 있는 환자라도 남들 돕는 데 참여한 사람이 훨씬 행복했던 것이다. 세계친절운동이 말하는 '친절은 섹스보다 즐겁고 어떤 질병보다 전염이 잘된다'는 주장이 확인된 셈이다.
미국의 행동하는 지식인이자 사회운동가인 리베카 솔닛은 인간의 이타성에 주목한다. 인간은 이타적인 본성을 지닌 존재라는 것이다. 이타성을 실천하는 순간 스스로 행복해지기 때문에 이 본능은 대를 이어 유전자에 각인된 채 인류를 유지시키는 큰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인간은 생존만을 위해 진화한 이기적 생명체에 불과하다는 다른 진화생물학자들의 주장과 상반된다.
사실 솔닛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는 많다.
9·11 테러가 났던 날.
시각장애가 있는 콜롬비아계 이민자인 마리아 로페스는 쌍둥이빌딩 앞에서 신문가판대를 운영하고 있었다. 로페스는 갑자기 주변이 소란스러워지고 땅이 흔들리는 걸 느꼈고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했다. 공포스러웠지만 시각장애인인 그는 대응할 수가 없었다. 그 순간 낯선 여인 두 명이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의 귀에 이런 외침이 들려왔다.
"당신 혼자 놔둘 수는 없어요. 우리가 도울게요."
이런 장면은 여기저기에서 연출됐다.
여기저기 폭발음이 들리고 파편들이 날아다니는 아수라장에서 젊은이들은 소방관을 도와 소방호스를 잡아당기고 있었고, 긴급차량들이 드나들도록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교통정리를 했다. 박봉에 시달리던 민간 경비업체 경비원들은 단 한 명도 도망가지 않고 사태 수습에 뛰어들었다.
당시 쌍둥이빌딩에 있다가 구조된 금융전문가 애덤 메이블럼은 이렇게 회상한다.
"연기와 먼지 때문에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우리는 앞사람의 어깨에 손을 얹고 건물을 빠져나왔다. 테러리스트들은 우리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지 못했다. 우리는 침착했다. 민주주의는 승리했다."
솔닛은 "재앙 속에서 인간은 오히려 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은 갑작스러운 폐허 앞에서 더 본질적인 무엇인가를 응시하게 되며, 그 결과 이타주의라는 긍정적인 인간 본성이 발현된다고 말한다. 이 이타주의는 인간이 자발적인 공동체를 형성하고 사태에 대응할 수 있게 만든다.
친절하자. 우리는 모두 절실한 하루를 살고 있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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