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보스 포럼과 한국: 복합위기를 넘어서

2023. 2. 3.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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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중앙대학교 교수

2023년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이 개최되었다. 다보스 포럼은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으로 인해 2년간 비대면으로 진행되었다가 2022년 겨우 대면 회의로 전환할 수 있었다. 그것도 원래 개최되는 1월이 아닌 5월로 연기하는 혼란스러운 과정을 거친 끝에 개최되었다. 어쩌면 이번에 개최된 회의는 다보스 포럼은 물론, 세계 질서의 정상화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던 셈이다. 한편, 다보스 포럼은 세계가 협력하여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하였음을 재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다보스 포럼은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현재 상황에 대한 진단과 미래에 대한 전망을 토대로 해법을 제시하는 실천적 지식의 경연장이다. 다보스 포럼이 ‘파편화된 세계 속의 협력’(Cooperation in a Fragmented World)을 주제로 선정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세계경제포럼이 해마다 ‘글로벌 리스크 보고서’(Global Risks Report)를 발간하고, 세계가 직면한 위험을 널리 공유하는 것은 위험의 성격 자체가 초국적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 미중 전략 경쟁의 격화, 인플레이션과 글로벌 경기 위축, 기후위기, 글로벌 공급망 교란 등 지구적 차원의 도전이 최근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초국적 도전은 수면 아래 잠복되어 아무런 변화를 초래하지 않다가 어떤 임계점을 넘으면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특징을 갖는다. 글로벌 리스크는 또한 개별 이슈 영역 내에서 발생·확산되었던 과거의 위기와 달리, 이슈가 서로 연결되는 이슈 연계라는 특징을 보인다. 경제와 산업에 지정학적 영향이 투사되는 경제-안보 연계 현상이 일상화되는 것이 대표적이다.

글로벌 리스크에는 ‘초국적 대응’이 필요하다. 세계 질서를 주도하는 패권국 또는 초강대국이 리더십을 발휘하여 문제를 해결하던 과거와 달리, 어느 한 국가의 역량만으로 복합위기를 해결하는 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리스크의 성격을 감안할 때, 국가 및 비국가 행위자들 사이의 유기적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과 달리 현재의 세계는 자국 우선주의, 보호주의, 일방주의의 확산이 지속되고 있다. 미중 전략 경쟁으로 대표되는 지정학적 경쟁은 기존의 구조적 문제를 증폭시키는 효과를 초래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키고 있다. 강대국들이 오히려 자국의 이익을 배타적으로 추구할 뿐 아니라, 경제적 강압을 서슴지 않는다는 점에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한 리더십 공백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의 전개는 지금까지 진행되었던 세계화에 대한 반발이 커진 국내 환경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아담 투즈(Adam Tooze)가 다보스 포럼에서 앞으로의 세계는 탈세계화(de-globalization)도, 재세계화(re-globalization)도 아닌 ‘세계화 칵테일’(cocktail of globalization)을 추구하게 될 것으로 전망한 이유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과거와 같은 초세계화(hyper-globalization)로 돌아가기에는 이를 뒷받침할 국내정치의 이념적·제도적 기반이 너무도 취약한 상태에 있고, 그렇다고 해서 탈세계화가 대안은 더욱 아니다. 결국은 세계는 다양한 수준과 방식의 세계화가 공존하는 질서를 형성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세계화에 대한 반발과 지정학적 경쟁은 한국에게 위기인 동시에 기회이다. 다보스 포럼 연설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현재의 세계가 직면하는 상황을 ‘복합위기’로 규정하였다. 코로나19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세계는 결국 개방과 연대에서 궁극적인 해답을 찾을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이 자유무역이 세계 경제의 성장을 견인해왔다는 점에 주목하고, 보호주의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역설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다수 국가들이 문제의 진단에 동의하더라도, 문제 해결을 주도하려는 국가는 잘 보이지 않는 데 딜레마가 있다. 세계경제포럼이 글로벌 리스크에 대응하는 데 있어서 누구도 직접 감당하려고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러한 리스크의 대부분이 국가 및 민간 행위자의 통제밖에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고 있다고 지적한 것은 이러한 현실을 지적한 것이었다.

한국 역시 글로벌 리스크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세계질서의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는 현재 상황은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게 더욱 큰 위협으로 다가온다.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자국의 이익을 배타적으로 추구할 경우, 그 파국적 결과가 초래할 충격이 한국에게 상대적으로 더 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화와 자유무역에 부작용이 있다고 해서 그 대안이 탈세계화와 보호주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 역시 자명하다. 이를 저지하는 것은 한국과 다른 국가의 이익을 함께 실현하는 데서 출발한다. 한국이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되 배타적인 국익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열린 국익의 추구이다.

이제 글로벌 리스크의 해결로부터 어떤 이익을 누릴 것인가에서 글로벌 리스크의 해결을 위해 어떤 기여를 할 것인가로 질문을 바꾸어야 할 때가 되었다. 한국은 이러한 문제의식의 전환을 선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은 반도체, 배터리, 철강, 바이오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과 생산 역량을 갖춘 국가로서 공급망 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최적의 위치에 있다.

윤 대통령은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행동하는 연대’를 강조하고 이를 실현하는 데 요구되는 한국의 기여를 명시적으로 제시하였다. 자국 우선주의의 유혹을 떨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모범적 실천을 통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윤 대통령은 공급망의 블록화를 방지하기 위해 반도체 기술의 공유를 과감하게 제시하였다. 한국이 보유한 경쟁력의 원천인 반도체 기술과 생산 역량을 매개로 협력적 생태계를 형성함으로써 반도체 공급망의 블록화를 저지하겠다는 구상이다.

한국은 또한 협력을 위한 리더십 공백을 메우되, 단기와 중장기 해법 사이의 균형을 모색하는 촉매제 역할을 추구하여야 한다. 많은 국가들이 사안의 시급성 때문에 단기 현안의 해결과 이를 위한 인센티브의 제공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단기적 이슈에 과도하게 매몰될 경우, 구조적이고 중장기적 문제 해결을 위한 기초 역량을 훼손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 한국은 단기 현안과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 협력 사이의 선순환 구조를 창출하는 데 선도적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이번 다보스 포럼에서 보여준 인식과 해법의 제시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연장선에 있다. 한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을 자유, 평화, 번영의 지대로 발전시켜 나가고, 이를 위해 협력적이고 포용적인 생태계를 형성하기 위해 기여할 것임을 밝힌 바 있다. 인도태평양 지역은 세계에서 경제적 활력이 가장 높은 지역인 동시에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주요국들의 이익이 부딪치는 지역이기도 하다. 인도태평양 지역의 불확실성 제거는 곧 지구적 차원의 리스크를 완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제 한국이 인도태평양 전략을 토대로 지역 갈등과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경험을 축적하고, 이를 지구적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로드맵을 설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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