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아이러니...흑사병과 패전이 중세를 살리다

정갑수 2023. 2. 3. 14:5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나홀로 차박 세계일주 열일곱 번째 이야기
이탈리아 아씨시~피엔차~시에나~산지미냐노~피렌체~피사~친퀘테레
피사의 사탑. 갈릴레이가 무거운 물체와 가벼운 물체를 떨어뜨린 곳으로 유명하다
아씨시의 성 프란체스코 성당

아씨시는 로마에서 북동쪽으로 2시간 정도 떨어진 움부리아 평원의 언덕 위에 있는 조그만 도시다. 이곳의 건물이나 골목들은 아직도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언덕에서 바라보는 평원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다.

지금도 전 세계 여행객들과 기독교인들의 발길이 그치지 않고 있는 이유는 프란체스코 성인이 태어나서 묻힌 곳이기 때문이다. 가난과 겸손을 통해 무소유의 정신과 청빈한 삶을 실천했고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까지도 소중히 여기고 사랑했던 성 프란체스코의 영성을 배우려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그는 기독교 역사상 예수를 가장 많이 닮은 사람으로 추앙받고 있다. 그의 유해는 성당 안의 지하 납골당에 안치되어 있다. 그 옆에 진열되어 있는 허름하고 누추한 옷을 보면 성철 스님의 빛바랜 누더기 옷이 생각난다. 어제 보았던 바티칸 성당의 화려한 예술 작품보다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상인 집안에서 풍요로운 삶을 살았던 프란체스코는 20대 중반에 놀라운 선택을 한다. 모든 세속적 가치를 포기하고 교회로 귀의한 것이다. 부잣집 아들이 하루아침에 거적때기만 두른 무소유의 수도사가 되어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며 이들을 보살폈다. 그의 행동에 감명을 받은 젊은이들이 그의 곁으로 모여들었고, 1206년 자신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모아 수도회를 세우게 된다. 이 수도회가 바로 프란체스코 수도회이며, 그들이 내민 슬로건은 '청빈'이었다.

아씨시에서 내려다 보는움브리아 평원
성 프란체스코가 입었던수도복

그는 무엇보다 도시 빈민 운동가였으며, 새들 앞에서 설교를 한 동물 보호 운동의 창시자였다. 그는 자신의 종교적 구원만을 생각하지 않고 대중들의 삶 속에서 자신의 뜻을 펼치려고 했다. 베네딕트파와 같이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정통 수도회와는 달리 프란체스코 수도회는 도시를 향해 나갔다. 당시 일부 도시의 규모는 300년 후인 15세기 도시들에 비해 결코 작지 않았다. 12세기 이후 피렌체, 베네치아, 아씨시 같은 이탈리아 도시 뿐만 아니라 유럽 곳곳의 저자거리는 관리, 상인들로 붐볐고 활력이 넘쳤다. 프란체스코 수도회 같은 탁발 수도회는 중세인들의 삶을 크게 흔들어 놨다. 이들이 강론을 펼칠 때 군중들은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기존 교회는 일반인은 알 수 없는 라틴어로 강론했던 반면 그들은 이탈리아어로 설교를 했으며 교회를 떠나 길거리에서도 기독교 교리를 전파했다.

이 시기 탁발 수도승의 강론은 상당히 연극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종의 깜짝쇼와 같이 생동감 넘치는 가르침은 신앙심 깊은 중세인들에게 커다한 위안과 안식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강론 외에 시각적 이미지, 즉 회화와 조각 같은 볼거리가 아주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히 프레스코 벽화 같은 이미지들은 글을 모르는 중세인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그래서 성 프란체스코 성당 내에는 13~14세기 치마부에, 조토, 로렌체티, 마르티니 같은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이 걸려 있다. 생동감이 넘치고 사실적인 표현들이 특징이다.

성 프란체스코 성당에서바라보는 움브리아 평원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사실주의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로마의 역사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듯이 르네상스도 15세기에 갑자기 출현한 것이 아니었다. '왜 미술이 르네상스 시대에 대유행을 하게 되었는가?'란 질문이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설교 방식을 통해 어느 정도 답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시에나 대성당은 비잔틴양식과 고딕 양식이 결합되어 화려하고 웅장하다

현란하다 못해 우아한 시에나 대성당

르네상스 시대의 문을 열었던 피렌체로 가기 위해 들른 시에나와 산 지미냐노는 우리가 생각하는 유럽의 중세 도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이곳은 도시 자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곳이다. 시에나는 1348년 흑사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고, 1555년 피렌체 공화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쇠락한 덕분에 중세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1472년 세계 최초의 은행이었던 건물도 있으며, 기념비적인 건물이 많다. 하지만 이후 경제적으로 어려워져서 성장은 멈췄고 도시는 사람들에게 잊혔다.

성장이 멈춰버린 흔적은 시에나 대성당에서 찾아볼 수 있다. 12세기 시에나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성당을 짓기로 했다.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에 13세기 고딕 양식이 더해져 위풍당당한 모습이고 성당 앞부분은 정교하고 현란하다 못해 우아하다. 하지만 재정 악화로 건물 한쪽을 완성하지 못하고 거대한 벽체만 남았다. 그럼에도 내가 본 시에나 대성당의 모습은 피렌체 대성당보다 화려하고 웅장했다.

산지미냐노의 캄포 광장은 부채꼴 형태로 약간 기울어져 있다

각 도시에 있는 대성당은 '두오모'라고 부른다. 두오모란 대성당을 가리키는 말로 시에나, 밀라노, 피렌체 등의 대성당을 모두 두오모라고 부른다. 도시 중심에는 캄포 광장이 있는데, 이곳이 유럽의 여느 광장과 다른 점은 부채꼴 모양의 형태로 중심을 향해 완만하게 기울어져 있다. 때문에 무척 편한 느낌을 주고 주변을 감싼 건물 덕분에 아늑한 기분까지 든다. 광장은 각종 행사나 집회 등으로 사용되는데, 매년 7월과 8월에 말 경주인 '팔리오Palio'가 열린다.

피엔차에서 바라보는 발도르차 평원

끼안티에 검은 수탉이 새겨진 까닭은

토스카나 지역은 윈도우 배경 화면에 나올 만큼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그중 백미를 꼽는다면 피엔차 지역으로 <로미오와 줄리엣> 영화를 찍은 멋있는 곳이다. 특히 발도차르 언덕에서 바라보는 파란 하늘과 녹색 잔디, 사이프러스 나무가 어우러진 풍경은 한동안 숨이 멎을 지경이다.

토스카나 지역은 이탈리아 3대 와인 산지기도 하다. 이탈리아 3대 와인은 밀라노 동쪽의 피에몬테 지역의 바롤로, 베니스 동쪽의 베네토 지역의 아마로네, 시에나와 피렌체를 중심으로 하는 토스카나 지역의 끼안티다.

피렌체와 시에나 사이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았던 13세기, 두 도시는 틈만 나면 싸움을 벌였는데 평화적인 방법으로 경계를 정하기로 했다. 수탉이 울면 양측의 기사들이 말을 타고 달리다가 서로 만나는 지점을 경계로 삼자고 했다. 시에나는 흰 수탉을, 피렌체는 검은 수탉으로 정했다. 시에나는 흰 수탉에게 모이를 잔뜩 주어 새벽에 힘차게 울어달라고 기원했다. 피렌체는 검을 수탉을 아예 굶겨버렸다. 새벽이 오자 피렌체 닭은 배가 고파서 보통 때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 울었다. 피렌체 기사는 빨리 출발했고, 그래서 피렌체는 시에나보다 세 배 넓은 땅을 차지할 수 있었단다. 토스카나 지역을 대표하는 끼안티 와인에 검은 수탉이 새겨진 이유다.

산지미냐노 도시의 외곽 모습
산지미냐노는 중세도시의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산 지미냐노는 아름다운 탑의 도시로 알려져 있으며 멀리서 바라보면 뉴욕의 마천루를 보는 느낌이다. 광장, 거리, 주택, 궁전, 우물 등 전형적인 도시를 보여주는 모든 구조물들이 좁은 지역 안에 모여 있어서 가장 중세적인 도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귀족들의 저택 위로 솟은 14개의 탑은 귀족들의 경쟁과 충돌이 잦았던 봉건 도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시에나보다 먼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을 정도로 가장 중세적인 도시다.

'불편한 여유'에서 인생을 보다

이탈리아는 국토의 약 40%가 구릉지대로서 대부분의 도시가 산 정상부에 있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습한 지중해 기후로 인해 집의 천장이 높은 형태로 되어 있다. 실내 온도의 상승을 막기 위한 것이다. 천장이 높은 집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창의성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런 이유로 그리스, 로마의 문화가 유럽의 다른 지역보다 독창적, 창조적으로 발달되지 않았을까 싶다.

르네상스 시대에 원근법을 사용한 최초의 그림인 마사초의 '성 삼위일체'
피렌체 대성당 앞의 산 조반니 세례당에 청동으로 제작된 기베르티의 '천국의 문'

여행을 하다보면 우리나라와 인프라 비교를 안 할 수 없는데, 효율과 경제적인 면에서 우리나라를 따라올 나라가 없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상대적으로 여유와 멋, 문화적 깊이가 부족함을 느낀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집들은 지은 지 수백 년이 되어서 겉모습은 낡았어도 내부로 들어가면 복도마다 그림 작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그리고 저녁 8시가 되어야 음식점 문을 여는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게을러서야 돈은 언제 벌까?'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한편 그들이 여유 있게 식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는 게 진짜 이런 거구나'라고 감탄하게 된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빨리 달려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뜻하지 않게 생긴 동행

산 지미냐노에서 피렌체로 들어가는 날 후배에게서 카톡이 왔다.

"두바이 출장을 마치고 오늘 피렌체로 들어가는데 형은 어디세요?"

"나도 지금 피렌체 가는 길인데 몇 시에 도착해?"

통화를 끝내고 생각하니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다. 그것도 사전에 미리 조율한 것도 아니고 지구상에서 장소와 날짜, 시간이 정확하게 맞아 떨어진다니...

덕분에 캠핑장에 들어가는 비용도 아끼고 5개월 만에 같이 여행할 사람도 생기고, 한국말도 할 수 있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의 두 작가가 쓴 <냉정과 열정 사이>라는 소설이 생각난다. 남자 주인공이 옛날에 헤어진 여친을 만나기 위해 피렌체 두오모 성당을 오른다. 그들이 두오모 성당 꼭대기에서 만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후배와 함께 두오모 성당을 오르며 그와 함께 했던 옛날 일들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 지난 5개월 간의 여행 이야기를 두서없이 늘어놓는다. 러시아를 떠나 조지아, 아르메니아, 튀르키예, 그리스,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들을 돌아보았다. 이들 도시들의 화려한 건축물과 유적지들의 배경에는 한결같이 그리스 로마 문명과 기독교 역사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 도시에 사는 그들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삶을 살지만, 정작 이것을 바라보는 나는 과거를 볼 수 있을 뿐이다. 즉 그들의 과거가 나에게는 현재가 되어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사실 그들의 문명이란 게 조각, 건축물, 그림, 그리고 허물어져가는 폐허뿐이다. 오랫동안 홀로 여행하면서 나 자신의 내면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더구나 지중해 기후가 딱 지금 안 좋을 때라 그런지 궂은 날씨가 도시의 어두운(?) 면만 조명한다. 겨울철에 유럽을 여행할 때는 꼭 두 명 이상 관광하는 것을 추천한다.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바라본 피렌체 두오모 성당의 야경

피렌체 티본 스테이크 강추!

유럽의 르네상스는 15세기 피렌체에서 시작되었다. '피렌체가 메디치를 낳았지만, 메디치 없이는 피렌체도 없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메디치는 르네상스 시대 대표적인 문화예술 후원의 큰 손이었다.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은 예술가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그리고 천문학자이자 수학자로도 잘 알려진 갈릴레오 갈릴레이 등이 있다. 단테, 마키아벨리, 라파엘로 같은 당대 최고의 과학자. 철학자. 작가 등을 배출한 곳이 피렌체이기도 하다.

베키오 궁전 앞의 다비드 상, 미켈란젤로가 제작한 다비드 상의 원본은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있다
우피치 미술관의 야경,우피치란 뜻은 사무실이란 의미다

이런 천재들이 같은 시기에 쏟아져 나온 피렌체는 르네상스를 이끈 본거지면서 서양 문화예술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인구는 40만 명밖에 안되지만 로마 못지않게 볼거리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두오모 성당, 조토의 종탑, 베키오 궁전, 베키오 다리, 시뇨리아 광장, 공화국 광장, 피티 궁전, 보볼리 공원, 미켈란젤로 언덕, 단테 성당, 산타 크로체 성당, 우피치 미술관, 아카데미아 미술관 등 피렌체의 속살을 맛보려면 최소 3박 4일은 잡아야 한다.

우피치 미술관에 있는 보티첼리의 '봄'
우피치 미술관에 있는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특히 우피치 미술관은 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상속녀가 예술품들이 피렌체를 떠나지 않는 조건으로 이탈리아 정부에 기증하면서 탄생한 곳이다. 보티첼리, 치마부에, 파울로 우첼로, 프라안젤리코, 래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티치아노, 라파엘로, 카라바조 등 르네상스 천재 예술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다.

피렌체에서 먹어볼 음식으로 티본 스테이크를 추천한다. 피렌체는 가죽 제품으로 유명한데, 토스카나 지역의 목초지에서 자란 소가죽의 품질이 좋기 때문이다. 따라서 티본 스테이크도 맛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시간이 허락한다면 피렌체 근처의 피사와 친퀘테레 지역을 다녀오는 것도 필수다.

피렌체 베키오 다리의 야경

정갑수

연세대산악회 OB. 악우회. 핵물리학 박사. 을지대 방사선과 교수 역임. 저서 <물리법칙으로 이루어진 세상>, <브레인 사이언스>, <세상을 움직이는 수학>, <세상을 움직이는 물리>, <방사능 시대를 살아가는 엄마들에게>,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암벽등반의 세계>, <암벽등반과 스포츠클라이밍>, <겨울산행과 빙벽등반>, <스포츠클라이밍의 거의 모든 것> 등. 히말라야 동계 에베레스트, 탈레이사가르, 트랑고타워 등반. 남미 최고봉 아콩카과(6,960m), 북미 최고봉 데날리(6,194m), 남극 최고봉 빈슨매시프(4,897m) 등정. 대한민국 체육훈장 대한체육회 연구상 수상.

다음 주에 계속

Copyright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